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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1703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4-04-22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아버지란 집안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와 네 형, 누나를 지켜내지 못했단다. 한순간의 방심에 그만……. 너라도 지키기 위해 오늘이 오기를 이 아버지는 손꼽아 기다렸단다.”
내가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어느 날, 아버지는 정원 한구석에 나를 붙잡아놓고 비장하게 말씀하셨다.
“설탕은 해로운 존재란다. 설탕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서 피부를 노화시키고, 체중 증가에 기분을 변덕스럽게 한단다. 거기다 제일 무서운 건 면역체계를 방해해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오기 쉽게 만든단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어려워 나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멀뚱히 보기만 하자 아버지는 안 되겠는지 깊게 한숨을 쉬기며 고개를 숙이셨다.
“아빠, 은후랑 뭐해요?”
그때 바깥으로 놀러나갔던 두 살 터울의 누나가 돌아왔다. 아버지는 누나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드셨다.
“남자 대 남자로서 중요한 이야기다. 그러니 너는 어머니한테 가 있어라.”
“……저도 들으면 안 돼요?”
“남자 대 남자라고 하지 않았니.”
“……네.”
누나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 후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돌려 뛰어갔다. 그렇잖아도 막내인 나한테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누나인데 이걸로 더 기분이 상해겠지만, 상관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누나와 형을 제치고 아버지가 자신에게만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눈이 반짝였다.
“누나를 봐. 누나가 다 저렇게 된 건 설탕이 들어간 과자나 빵 때문이란다.”
유치원에 갓 들어간 누나는 많이 통통했다. 아니, 뚱뚱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누나 기분도 자주 변하지?”
기분에 따라 잘해주다가도 괴롭히는 누나를 생각하며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너도 설탕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알겠지?”
“……엄마랑 형은 괜찮잖아요?”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요새 먹기 시작한 요구르트의 단맛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아버지는 눈썹 사이로 두껍게 세로로 주름을 만드셨다. 꿈틀거리는 게 꼭 지렁이를 닮았다.
“휴. 그건 네가 모르기 때문, 아니, 너한테 숨겼기 때문이란다.”
“숨겨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 형과 어머니는 항체에 문제가…….”
“꺅!”
그때 집안 쪽에서 누나의 비명이 울렸다. 아버지와 난 깜짝 놀라 집 쪽을 쳐다보았다.
“우아왕! 엄마앗!”
어머니를 부르는 누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집 쪽으로 뛰셨다. 나도 아버지를 뒤뚱거리며 쫓아갔다. 어머니와 누나는 부엌에 있었다.
식탁에는 둘이 먹던 케이크와 접시가 흩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빨간 물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여보! 왜 그래? 괜찮아?”
아버지가 어머니를 끌어안고 살피며 소리를 지르셨다. 누나는 옆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단순히 코피가 난 거뿐이에요.”
어머니가 고개를 드시며 웃으셨다. 아버지의 품에 가려 있다 나온 어머니의 얼굴을 본 나는 엄청난 충격에 몸을 굳혔다. 어머니의 코밑이 피범벅이었다. 줄줄이 흐르는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
나는 울먹거리며 부모님에게로 다가갔다. 그때 ‘그러게 내가 단 음식 좀 그만 먹으라고 했지!’라며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그제야 나는 어머니가 왜 코피를 흘리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왜 비장하게 설탕에 대해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 나 설탕 안 먹을래.”
난 그날 굳은 결심을 했다. 아버지는 형과 누나가 아닌 나를 택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 옆에서 묘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어린 난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