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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5117071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16-10-14
책 소개
목차
1. 봄이, 살포시 7
2. 고요하지만 진한 위로 23
3. 돌아갈 수 있을 때, 돌아가자 47
4. 가늠할 수 없는 간격 68
5. 온몸이 녹아내리는 키스 83
6. 사랑이, 성큼 109
7. 샴페인 같은 여자 139
8. 달콤한 휴가 174
9. 네가 없으면 공허해 213
10. 키스, 키스, 키스 243
11. 바다가, 밀려오다 256
12. 너의 곁이라서 285
13. 회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325
14. 다정한 온기 363
15. 피칠갑 된 상처 393
16. 내가 지켜야 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431
에필로그-숭고한 사랑 470
저자소개
책속에서
“왜 웃어?”
“귀여워서.”
“설마, 내가 귀엽다는 건 아니지?”
이안이 의문을 던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두운 밤이긴 했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공원으로 나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귀엽다는 건 분명 그들 중 한 사람일 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을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 좀 질투가 나는데.
“내 눈에 당신밖에 안 보이는데?”
“뭐?”
“내 눈에 보이는 건 당신뿐이니, 귀여운 것도 당신이겠지. 안 그래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달콤한 가루가 심장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진애린.”
“응?”
“안 본 사이 사람 설레게 하는 솜씨가 업그레이드됐는데?”
“그래요?”
“그동안 누굴 만나고 다닌 거지?”
이안은 우뚝 멈춰선 채 팔짱을 끼고 의심의 눈초리를 날카롭게 찔러 왔다. 애린은 동요하지 않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야, 당신 지금 나 의심하는 거예요?”
“그럼 어디서 배워 왔어?”
“뭘요?”
“사람 설레게 하는 법.”
“나한테 설ㅤㄹㅔㅆ어요?”
“그래. 설ㅤㄹㅔㅆ어.”
“설레라고 그런 건 아닌데 혹시 설ㅤㄹㅔㅆ다면 미안해요.”
다분히 의도하고 뱉은 게 분명한 말에는 웃음기가 베여 있었다. 이안은 애린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이 했던 말임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냈다.
“이안 씨 말이 맞았어요.”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마음이란 건 이성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말.”
“…….”
“이성이 제어하기도 전에, 이안 씨에게 흔들려 버렸어요.”
“진애린.”
“한 번 흔들리고 나니까 걷잡을 수가 없더군요.”
밤공기가 무척 달콤했다. 문득 한여름 밤의 꿀이라는 노래 제목이 떠오른다. 달콤한 공기에 취할 것만 같다.
“진애린, 자꾸 나 설레게 할래?”
“또 설ㅤㄹㅔㅆ어요?”
“감당 못 할 정도로 설레서 심장 터질 것 같다고.”
“어? 그 정도예요?”
“아무것도 몰랐다는 얼굴, 깜찍하긴 하지만 너 지금은 설레라고 작정하고 한 말이잖아. 아니야?”
정확히 속을 꿰뚫렸지만 애린은 동의하지 않은 채 등을 보이며 말없이 걸어갔다.
“진애린.”
불러도 애린의 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이안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랑해!”
분수대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이안의 외침이 섞였지만 분명히 애린의 귀에 꽂혔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았다. 그녀뿐 아니라 공원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이 이안에게로 집중됐다.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엔 오로지 한 여자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한 여자밖에 안 보였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이 말을 안 했더라고.”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하지만 이안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그래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은 마음에 애린은 조금씩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사랑해, 진애린.”
간격을 좁혀 오는 애린의 발걸음이 조금씩 속도를 높여 갔다. 코앞에 다가온 그녀가 이안에게 와락 안겼다. 몸이 흔들린 만큼 심장도 덜컹 요동쳤다.
“애린아.”
“이안 씨.”
이안이 애린을 살며시 떼어 내고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는 매우 깊고 뜨거웠다.
“우리 오늘부터 1일 할까?”
“그럼 어제까지는 뭐였어요?”
“요즘 말로 썸이랄까.”
“우리 되게 되바라진 남녀네요. 사귀기도 전에 할 거 다했잖아요.”
이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네. 되바라졌다, 우리.”
애린이 다시 이안에게 안겼다. 그가 애린의 등을 차분히 쓸었다. 그는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재원이 볼 면목이 없다.”
“당신이 왜요. 면목 없는 건 나죠.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한테 의사도 묻지 않고 연애나 하고. 나 진짜 이기적인 엄마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미안한데.”
“당신이 왜 미안해요?”
“내가 당신 꾀었잖아.”
애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러더니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들 보는데 고백하는 거 창피하지 않았어요?”
“창피할 겨를이 없던데.”
왜 창피할 겨를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애린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에 이안을 담았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고백해야겠다는 마음에 정신이 없었어.”
“뭐야. 내일 해도 되잖아요.”
“내일로 미루고 싶지 않았어. 그러다가 놓치면 어떡해.”
내일 고백한다고 해서 애린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당장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음먹은 고백을 내일로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나 못 믿어요? 나 아무한테나 마음 주고 그러지 않는데.”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남자들을 못 믿는 거야. 남자들은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애린이 불만스런 얼굴로 입술을 씰룩였다.
“남자들이라면, 당신도 그렇다는 말? 당신도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거예요?”
“나도 남자니까 해당되는 말이겠지. 그래서 너한테 사족을 못 쓰잖아.”
예쁘다는 말을 이렇게 하다니. 애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진애린, 뭐 믿고 이렇게 예뻐.”
이안은 어루만지던 뺨에 살며시 입술을 부딪쳤다. 보드라운 볼에 다정한 입맞춤을 남기고 입술을 뗐다. 한여름 밤의 꿀 같은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