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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55425572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16-10-15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장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
이성계의 복수심,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다
한글을 금지한 연산군, 주색에 빠져 사람의 도리를 잊다
조상의 무덤을 도굴당한 선조, 거짓으로 복수하다
기록 문화의 지평을 넓힌 정조, 역사 기록을 왜곡하다
제2장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
태조 이성계의 사리 수집, 아들과 손자에게 부정되다
세종의 막내아들 편애, 비극을 부르다
전쟁 포로가 된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
인조, 소현세자를 병들어 죽게 하다
영조의 금주령,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다
제3장 권력이 만들어낸 왕실의 비극
조선 시대 최고의 바보 왕자, 제안대군
공포심에 찌든 중종, 강제로 이혼당하다
조카 인조의 왕권에 도전한 삼촌 흥안군
효종의 남다른 우애, 세 형제의 비극을 불러오다
왕이 되고 싶었던 고종의 이복형, 이재선
제4장 궁중 여인들의 기막힌 일생
정희대비와 인수대비의 자비심, 여종을 권력 실세로 만들다
사랑과 관심에 목말랐던 폐비 윤씨, 성종에게 이혼당하다
인목대비 김씨, 재물을 탐하다
광해군의 왕비 유씨와 세자빈 박씨, 굶어 죽다
제5장 외세 앞에 무기력했던 지도자들
결단력이 부족한 고종황제, 역술가에게 빠져들다
명성황후, 무당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기울게 하다
개화기의 친일 혁명가 박영효, 그는 누구인가
박영효, 김옥균과 함께 쿠데타를 모의하다
박영효, 암살단을 조직해 갑신정변을 일으키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정조는 만약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손에서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면서까지 《승정원일기》의 임오년 처분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런 요청을 받은 조는 결국 《승정원일기》 임오년 처분 기사를 삭제하도록 했다. 만약에 정조가 《승정원일기》 기록 자체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다면 삭제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 조는 《승정원일기》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승정원의 업무와 관련된 기록이므로 정치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단에서 《승정원일기》의 임오년 기사는 정치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유용하기 보다는 혼란만 부추기므로 삭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승정원일기》를 개작하고 말살한 정조는 짧게 보면 승자라고 할 수 있으나 길게 보면 역사의 죄인이자 패배자라 할 수 있다.
- 제1장 /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인 군주들 중에서
정조가 지은 《행록行錄 》에 의하면 영조는 길을 걷다 개미들이 있으면 밟지 않고 피해 갈 정도로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영조는 감정이 복받치면 펑펑 울기도 했으며, 감정대로 행동하다 나중에 한없이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조는 마음이 여린 반면 체면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런 영조인지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이 같은 여린 마음과 체면 중시를 빼놓고 영조의 치세 50여 년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을 생각해보자. 조선 500년 동안 왕실에서는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뒤주 사건은 조선 왕실 최대의 비극이며 스캔들이라 할만하다.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일 수 있었는지, 그것도 무더운 여름날 8일이나 굶겨서 죽일 수 있었는지 도무지 놀라울 뿐이다. 이런 놀라운 스캔들 이면에는 영조의 여린 마음과 체면 중시가 있었다.
- 제2장 / 왕과 세자, 그 지독한 부자의 악연 중에서
1479년(성종 10년) 6월 1일, 이날은 폐비 윤씨의 생일이었다. 정상적인 부부 사이다면 성종은 폐비 윤씨의 생일을 챙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성종은 그러지 않았다. 바로 그날 밤 성종은 폐비 윤씨 대신 다른 후궁을 찾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폐비 윤씨는 한밤중에 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남편 성종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윤씨는 폐위되었다. 돌아보면 성종과 폐비 윤씨는 처음엔 서로 사랑했고 둘 사이에 자 식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미움이 되었고, 그 미움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에는 이혼하게 되었다. 그들의 미움은 둘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연산군에게 이어져 나라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연의》의 ‘극명준덕克明峻德’이라는 구절을 인용해볼 수 있겠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기 마음의 덕부터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이고 자기 마음의 덕을 먼저 밝히지 못하면 그것이 자신의 비극은 물론 가정의 비극 나아가 나라의 비극이 된다는 교훈이 바로 ‘극명준덕’이다.
- 제4장 / 궁중 여인들의 기막힌 일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