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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부부

도미노 부부

김상용, 안병옥 (지은이)
이지출판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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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부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도미노 부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55552629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5-08-05

책 소개

구순이 넘은 김상용, 안병옥 부부가 치열하게 살아온 전 생애를 꾸밈없이 담백하게 기록한 자전적 수필집이다. 그 시대의 환경과 문화와 사회규범 등을 엿볼 수 있으며, 그런 여러 현상들이 오늘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한 부부의 삶에서 애틋한 사랑과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낸 지혜와 미소를 짓게 하는 위트를 배울 수 있다.

목차

제1부 김상용

아버지 11
나의 형 22
나의 삶 27
나의 유학기 40
스승과 제자 49
못 말리는 할망구 60
서른 번째 이사 70
호적과 족보 82
모으다 말고 87
커닝의 말로(末路) 103
결혼식 주례 113
시간강사 122
부조(扶助) 128
지양탕 133
박사(博士) 141
실버타운 147
후회막급(後悔莫及) 152
명품(名品) 158

제2부 안병옥

독립운동가 외삼촌 167
1·4후퇴 172
빨래터 풍경 182
어머님의 경대 187
나의 시집살이 192
엄마의 지혜 206
떠나는 연습 212
천당과 극락 사이 218
꽁초가 막대기를 업기까지 232
불가리아 여행 236
실수! 실패? 246
오늘도 좋은 날이요 256
정화조 오물을 뒤집어쓰고 만난 사람 270
큰아들 해원 273
둘째 아들 규원 287
막내딸 지원 304

맺는 말 317

저자소개

김상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학사, 석사 졸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섬유고분자과학으로 박사학위 받음 헌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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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사 졸업 전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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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못 말리는 할망구

김상용

아내는 유아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로서 나와 관면 혼배를 하고 십여 년 만에 나를 신자로 만들더니, 이어서 부모님도 신자가 되시게 하였다. 60년 전 처녀 때는 초창기 ‘레지오 마리에’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외인 집에 시집 와서 겨우 주일미사나 하면서 기도 생활만 하더니, 모시고 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구역 반장을 하면서 슬슬 발동이 걸렸다.
우리 동네 우편집배원이 별안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대방동에 있는 ‘성애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위문을 다니는 동안 가족을 통해 그분이 평소에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말을 듣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재빨리 병자성사를 주고 그이의 주소지인 흑석동성당에 알리고, 이어서 돌아가시자 어려운 형편인 그 가족이 성당 연령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하였다. 그분의 남편과 두 아들도 그 후 신자가 되었으니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은퇴하고 양재동성당 구역으로 이사 온 후 2002년 아내는 대장암에 걸려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겨우 회복되더니,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데레사회’라는 데 들겠다기에 몸이 안 좋은 나는 극구 말렸다. 늙은 할망구가 무얼 하느냐고. 데레사회는 ‘마더 데레사’의 정신을 본받아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돕는 일을 한다는데, 척추관 협착증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옆에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으면 되었지, 따로 나가서 누굴 돕겠느냐는 게 내
주장이었다.
“당신이 늘 아프니 주님께 항상 낫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면 되겠수? 나도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지.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주님께서 좋아하실 일을 한다며 눈이 안 보이는 ‘근위축증’ 환자인 김젬마 자매의 집에 가끔 가서 말벗이 되어 주고, 척추 수술 후 몸져 누워 있는 벨라뎃다 할머니를 방문하는 일이 아내의 즐거움이라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파트 경비원인 ‘조계형’ 씨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단독주택에만 살다가 정년퇴직 후 이곳 아파트로 이사 와 보니 가장 좋은 일은 경비원이 아파트 둘레를 쓸어서 늘 깨끗하게 해 주고 택배 물건도 받아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면 들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조계형 씨는 가장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무슨 일인지 천주교 신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자인 입주자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면 내 아내에게 “할머니, 501호가 불을 내서 온 아파트를 힘들게 하고 사과의 말도 없어요. 그 여자가 천주교 신자라면서”라며 불평을 하면, 아내는 자기가 한 것처럼 미안해하곤 하였는데, 그 사람이 병이 난 것이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우선 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조 반장님께
저는 1동 807호 할머니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의사 말 잘 듣고 얼른 나으시길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아시지요? 우리 할아버지와 내가 천주교 성당에 다니는 걸.
그래서 우리 하느님께 조 반장님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꽤 힘들어요. 예비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하고 절차도 까다로워요. 그런데 아픈 사람은 달라요. 하느님을 믿겠다고, 병이 다 나으면 성당에 다니겠다고만 하면 외상으로 영세(세례)를 준답니다.
조 반장님, 이 기회에 천주교 신자가 되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면 우리 기도가 하느님께 더 잘 전해져서, 어떤 병이라도 꼭 나으실 거예요. 제발 얼른 나으시길 빌고 또 빌면서 드리는 말씀이니, 잘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시면 반갑겠어요.
조 반장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꼭 만나러 갈게요. 얼른 건강해지세요.
2013년 1월 31일
1동 807호 할머니 드림

그리더니 아내는 칠십이 훨씬 넘은 몸을 이끌고 분당에 있는 ‘차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가두선교회’의 천주교 선교 책자와 간단한 선물을 들고. 조계형 씨는 반가워하기는 하였으나 입교할 의향은 없는 것 같다고 실망스러워했지만, 아내는 그 못 말리는 끈질긴 정신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파트에서는 조 반장을 돕자는 의견이 나와서 모금 내용을 각 동 엘리베이터에 고지하고 한 달 동안 모금을 하여, 15층짜리 다섯 개 동만 있는 오래된 아파트이고 주민이 많지 않아도 400여 만 원이 걷혔다.
나는 그만하면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부족하다고 애가 타서 또 한 번 일을 벌였으니, 우리 아파트에 사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각 반 반장들을 통해 새로운 모금 협조문을 보낸 것이다.
(중간 생략)
이 모금 부탁 편지를 세 반장들이 각 신자 가정에 전하고 이어서 모은 성금이 200만 원이 넘었다. 아내는 반장 두 명과 같이 다시 분당 차병원을 방문하여 성금을 전하니 조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는 것이었다. 성금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잊지 않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조 반장은 나에게도 전화를 주어 누누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내가 전한 천주교 가두선교회의 작은 책자를 무균실에 들어갈 때도 지니고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나 조씨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우리의 마음이 아슬아슬한 가운데 드디어 그는 대세를 받겠다고 하였다. 그는 마침내 조요한이 되어 6월 어느 날 주님의 아들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내는 양재동성당 빈첸시오회 회장과 데레사회 회장과 같이 빈소에 가서 연도를 하고 왔다. 우리 본당 신자도 아니었는데 선선히 조의금까지 가지고 아내와 데레사회 회장을 직접 운전하여 성남까지 가 주신 빈첸시오회 회장이 너무 고마웠다.
빈소에는 외아들과 그의 친구 두 명만 쓸쓸히 지키고 있었으나, 태평동성당 교우들의 정성스런 연도로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조요한 씨가 아내에게 웃으며 이 말을 전하더란다. “조계형 요한 씨의 아들이 태평동성당에서 신입 교우를 위한 교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못 말리는 할망구가 또 한 건 한 것이다.

아내는 매일 묵주 9일 기도 외에 103위 순교성인 호칭 기도를 하기에 “그 기도는 왜 하느냐?”고 내가 물으니 그 대답이 웃겼다. 저쪽 동네에 가기 전에 거기 계실 것이 확실한 성인들과 친해 놓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죽어서 저쪽 동네에 갔을 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러니까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착하게 살면서 한편으로는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게 못 말리는 우리 할망구의 지론이다. 죽음학(Thanatology)을 연구하는 사람에 의하면 조금 옳은 듯하기도 하고 아리송한 이론이지만 아내는 확고했다.
나는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아내는 대장암도 다 나았고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는 좀 아프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던 중 큰 일이 터졌다. 아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반찬이 잘 안 보인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하여 안과에 예약을 하고 올해 4월에 가서 보니 왼쪽 눈의 시력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이다. 그 놀라움이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황반변성’이라는 병이란다. 수술도 할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할망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보다 더 낙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병원에도 가 보고 사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눈에 ‘루센티스’라는 주사를 맞아 보기는 하되 불치병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더욱 겁나는 것은 오른쪽 눈도 결국 안 보이게 될 확률이 많다는 소견이었다. 딱 하루 동안 아내는 낙담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안절부절하더니. 이튿날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76년 동안 잘 보게 해 주셨으니 그것만도 감사해야지.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별로 대단한 일은 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언가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 한다고 애는 썼는데, 그래도 좀 했다는 일이 지나고 보니 모두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더라구요.”
맨 먼저 학교 선생이었던 처녀 시절에는 (1960년대)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맹학교 아이들이 점자를 쓸 때 필요한 두꺼운 종이가 모자란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과 함께 큰 벽걸이 달력 종이 같은 두꺼운 종이를 모아서 인천 근처 주안에 있는 맹학교에 계속 보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집살이 하면서 도저히 다른 일은 할 수 없어서 ‘가톨릭 맹인선교회’에서 낭독 봉사하는 일을 했으나 시어머님 병환으로 그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늙어서는 다행히 ‘데레사회’에 입회하여 봉사를 했는데 하필이면 눈이 안 보이는 김젬마를 맡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주님이 언젠가는 눈이 안 보이게 하시려고 준비를 시키셨나 보다며 쓸쓸히 웃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마누라에게 이제 우리 성당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김젬마에게 전화나 해 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양재동성당에서 빈첸시오회와 겹친다며 데레사회를 없앴기에 아내는 이제 성당 단체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그 김젬마와는 계속 전화로라도 인연을 이어 오던 중이었으니 아내는 즉시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그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김젬마와의 대화 이후 아내는 편안해지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행복한 것같이 보였다. 내가 이상해서 물으니 내용은 이렇다. 젬마 자매는 젊어서 매우 가난하여 남의 지하 셋방에서 어렵게 살다가 무서운 ‘근위축증’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그때 아들의 나이가 세 살이었단다. 아마 삼 년을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들이 서른 살이 되도록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온몸이 굳어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눈도 안 보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젬마 자매가 큰 병에 걸리면서부터 남편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래도 집칸이라도 지니고 살 뿐 아니라, 엄마의 보살핌도 못 받은 아들이 너무나 잘 성장해서 대기업 사원이 되고 결혼도 해서 착한 며느리까지 얻었다며, 하느님은 결
코 불행만 주시지 않는다고 하더란다.
우리 할망구의 눈이 보이지 않게 하셨으니, 우리 집에 무슨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을 하였다. 아내는 요즘 오히려 은근한 희망에 들떠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다 늙어 꼬부라졌으니, 아마 우리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희망!
‘우리 전능하신 주님이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시려나?’ 하는 기대에 차 있는 할망구를 보노라면 측은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말려도 기어코 찾아 다니던 젬마에게서 그런 좋은 위안을 얻다니! 별안간 눈에 이상이 생기니 집 안에서도 여기저기 부딪혀 멍이 들 뿐 아니라, 부엌에서도 자주 실수를 하건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다.
어제는 뭇국을 끓여 내놓으며 한다는 말이, “이 뭇국은 쇠고기에다가 사람 고기도 조금 넣어서 끓였으니 더 맛있을 거요. 다 끓여 놓고 보니 손가락을 좀 베어 피가 나는구려. 아마 무를 썰 때 손가락도 조금 썬 것 같아요. 하하하.”
못 말리는 할망구 같으니라고! 주님, 저 못 말리는 할망구의 믿음을 보시어 부디부디 보살펴 주소서. 아멘!


정화조 오물을 뒤집어쓰고 만난 사람

안병옥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든 때였던가 한다.
시아버님께서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시고, 시어머님도 노환 중이신 데다가 대학생, 고등학생인 삼남매에게 한창 돈이 들어가니까 나는 자연히 한 푼 한 푼에 발발 떠는 짠순이 주부가 되어 있었다.
골목 안 조그만 단독주택에 살던 우리는 식구가 많다 보니 변소 오물도 쉽게 모여 정화조 청소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전화로 정화조 청소를 신청해서 날을 받고, 정한 날에 그 커다란 탱크를 실은 청소차가 골목을 비집고 들어와서 굵고 시퍼런 호스를 집 안 정화조까지 밀어 넣어 오물을 빨아들이면 온 동네 냄새가 진동할 뿐 아니라, 오물 탱크에 처박혔던 호스가 마당을 가로질러 마당과 대문을 더럽히니 뒷청소도 만만치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빡빡한 살림에 비용도 꽤 들었다.
그러자니 나같이 돈 쓰는 데 안달을 부리는 여편네들은 혹시나 정화조 청소원이 딴소리나 하지 않을까 해서, 오물을 담기 전의 계량기를 확인하고 또 오물을 다 빨아들인 다음 계량기를 확인하려고 청소차 뒤로 다가갔는데, 별안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오물을 잔뜩 머금은 호스가 확 풀리면서 호스 끝에서 똥물이 무서운 기세로 뻗쳤다.
가슴으로 그 오물 줄기를 맞은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몸이 건너편 집 담벼락까지 날아간 후였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가슴을 가린 덕에 두 손등에선 피가 터져 나오고, 마침 겨울철이어서 껴입었던 두꺼운 스웨터 덕분에 죽지는 않았지만 내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수를 한 청소원 아저씨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택시를 부르러 간 사이에 나는 욕실에 가서 우선 찬물을 끼얹어 오물 덩어리들을 털어내고 덜덜 떨면서 겉옷만 하나 걸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세상은 정말 비정했다. 개인 병원마다 나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하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으나,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는 오물 냄새를 풍기며 피가 철철 흐르는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해서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당신이 의사요? 의사가 환자를 거절하다니?”
내 고함에 그는 “제대로 진찰권을 끊고 오던지 응급실로 가요, 가!” 하고 맞받아 소리를 질렀다.
“응급실에는 피부과가 없대서 이리 왔습니다. 제발 좀 봐 주세요.”
청소원 아저씨가 애원을 하는 사이에 나는 오기가 펄펄 나서, 이 병원 원장실이 어디냐고 간호사를 다그쳤다.
나도 한때는 잘나가던 엘리트였는데,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었는데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약이 바짝 오른 나는 다 때려 부수기라도 할 듯이 오물 투성이 몸을 끌고 쏜살같이 원장실을 향해 돌진했다.
“가만 안 둘 거야. 원장에게 가서 따질 거야.”
원장 비서가 고즈넉이 앉아 있다가 후다닥 채 일어서기도 전에 원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악이 받치니 못할 일이 없었다. 점잖게 앉아 있던 원장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동시에 내 미친 듯한 걸음도 멈췄다.
“아니, 이럴 수가!”
그는 내 친구 피아니스트 서계숙의 남편 김재호 박사였다. 언제 저 양반이 이 병원 원장이 되셨나? 너무나 망신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그분 덕분에 피부과 의사는 오히려 호통을 듣고, 나는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무안하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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