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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55854914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5-03-05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_04
서문_07
1부
달빛 서늘한 흰 치맛자락 섬진강 매화_14
밤하늘에 매달린 노란 이름 하나 구례 산수유_30
조그만 입술로 부르는 순결한 사랑 노래 유달산 개나리_44
하염없이 심사가 붉어진 까닭 영덕 복사꽃_60
2부
설산을 타고 넘는 방울소리 히말라야 찔레꽃_76
붉지도, 서럽지도 않게 히말라야 꽃기린_90
지상으로 내려온 소녀들의 합창 평사리 자운영_104
순정은 해마다 붉어진다 백령도 해당화_116
3부
간지럽다, 못 견디게 축령산 작약_132
저녁 어스름에 일렁이다 남해도 치자꽃_144
영원으로 떠난 신부의 옷자락 전주 석류꽃_158
피 터지는 사랑 없이는 백두산 야생화_174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묘향산 도라지_192
4부
백 일의 사랑, 백 일의 절망 명옥헌 배롱나무_208
가끔 꿈속에서 너를 만난다 선운사 상사화_226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 영평사 구절초_240
꿈은 남쪽바다로만 걷는다 거제·마량 동백꽃_256
전문 인용 출처_27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봄은 기쁨이 아니다. 이 찬란한 빛깔의 바다에서도 그는 죽음을 떠올린다. 꽃을 피우기 전에, 이파리도 하나 내놓기 전에, 봄은 그의 누이를 소리 없이 꺾어갔으므로. 그에게 봄은 아프고 어둡지만 세상 사람들은 봄을 새로움, 어린 생명, 환한 것의 이미지들로 덧없이 채색한다. 봄과 죽음을 나란히 놓는다 한들 그들에게는 오히려 생명의 후광만 더 화려하게 부각될 뿐이다. 그러나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훌쩍 세상을 버린 기형도에게 봄은 죽음의 이미지가 압도했다. 어디를 가나 요란하게 봄 나팔을 불어대는 개나리는 그에게 철없고 속절없는 어린 것일 뿐이었다.
대부분 자기 안에서 북받치는 설움 때문에 울겠지만, 자기 외의 사람이나 사물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해서 자주 우는 이도 있다. 히말라야에 왔던 여인 하나는 겉으로는 명랑해보였지만 유독 잘 울었다.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 울보일 것이다. 울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무장해제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눈치보고 체면을 차리다 보면 울기도 쉽지 않다. 혼자 있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 우는 울음은 더욱 그렇다.
활짝 열어젖힌 작약의 몸에 벌 한 마리 날아와 간질이고 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당신이다. 당신을 위해 지난겨울 내내 차가운 흙 속에서 어둠을 견디었고 딱딱한 대지를 뚫고 솟아나 이제 겨우 꽃을 피웠다. 내 옆의 옆, 내 위의 위, 사방에서 당신을 유혹하는데도 세상 하나뿐인 ‘나’에게 찾아와줘 고맙다. 당신은 금방 내 품을 떠나 날아갈 테지만, 당신이 내 몸을 간질이는 이 순간 새 생명이 잉태되고 있다. 당신, 내가 왜 이리 붉은지 아는가. 해당화라는 내 벗은 당신을 유혹할 적들이 많지 않은 바닷가에서 피어나 나처럼 더 붉지 않아도 당신들을 초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