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340423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14-07-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_ 6
1. 엎어까기 _ 8
2. 바우 _ 42
3. 화(火) _ 70
4. 그 여름의 잔해 _ 112
5. 동지섣달 꽃 본 듯이 _ 148
6. 바람 불어 좋은 날 _ 176
7. 어떤 해후 _ 202
8. 만복 씨의 화려한 외출 _ 226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씨끄러워. 사돈이구 뭐시기구 식전참에 방아골 못자리 가래질부터 해 치워야겠어. 버들골 어딜 뒤져봐도 못자리 안한 집은 우리 집 뿐이더군 제기랄. 이장 싸모님 어떻게 지아비와 고통 분담 좀 안될까? 방아골 가서.”
“고통 분담 좋아 하네. 이 양반아 그런 말은 높으신 어르신들 특허품이라구. 서 이장니 임- 나도 오늘은 치마 속 고쟁이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도록 바쁘다오. 낼이 말날(牛日)이래요. 낼은 천하없어도 장을 담궈야 허는구먼요.”
“이런 제기랄! 장이야 아무 날 담그면 어때. 장맛이야 거기서거기지.”
“나 원! 모르면 국으로 처박혀 중간이나 갈 일이지. 아, 장을 아무 때나 무시로 담그는 줄 알아? 장 담그는 날은 따로 정해져 있다구 이 양반아.”
“알았어. 어련하실려구. 내 불알에 종소리가 나도록 혼자서 후딱 해치우고 올 테니 읍내 갈 채비나 잘 챙겨 주드라구. 오늘도 자그만치 다섯 군데야. 고지서 돌릴 데가.”
그야말로 담배 한 대 못 피우고 연실 논두렁을 싸 발랐는데도 만복 씨가 가래질을 끝낸 것은 아홉시가 거의 다 되서였다.
읍내 가는 버스는 9시 30분.
후다닥 면도하고 머리감고 나니 버스 탈시간 10분전.
바쁘다 바뻐.
“아무리 바빠도 요기는 하고 가야죠? 빈속에 어떻게 나들이 갈려 그래요. 그래 내 뭐래. 미리미리 챙기라 귓구멍에 못이 박히도록 일렀구먼. 그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난리를 처대니 원.”
“일절만 하슈. 아 내가 동네일 보느라 그러지 게을러터져 그러나. 잔말 말고 양말이나 찾아 놔. 저번처럼 빵구 난 거 신고 갔다 개망신 당하게 하지 말고.”
“자, 여기 봉투 다섯 개요. 양짓말 이장님 네는 다섯 장 넣고 나머지는 세 장씩 넣었어요.”
“알았어. 그만함 되지 뭐. 그나저나 이거 부줏돈 때문에 무슨 사단 나겠어, 엠병 할!”
“아빠, 오늘은 꼭이에요. 멜로디언. 저번처럼 또 까먹으시면 안돼요. 손바닥에 써 드려요?”
일요일이면 해가 똥구멍에 걸려야 일어나곤 하던 만복 씨의막내아들이 아버지의 건망증을 오늘도 못 미더워 하며 못을 박았다.
“알았어, 인마.”
그럴 만도 했다. 벌써 막내 멜로디언 사다 준다고 하고 공수표 뗀 게 이번이 세 번째니 말이다.
“여보, 갔다 올 때 장 담글 때 쓸 조청 한 통 사다 줘요. 읍내 시장 안 부식 가게 가면 있어요. 고추장 담글 때 쓸 조청 달라면 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조청은 꼭 사와야 돼요. 그래야 낼 장을 담근단 말이에요. 애 말따나 또 까먹겠으면 손바닥에라도 써 가고.”
“알았어. 제기랄. 이거 완전히 노망 든 할망구 취급하는구먼. 나 참. 내 오늘도 일 잘 못되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 으이구.”
전엔 안 그랬는데 마누라 말마따나 요즘은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노냥 까먹기를 밥 먹듯 해 만복 씨 자신이 생각해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도 마누라가 장거리에서 생강을 한 봉지 사 오라고 했는데, 그놈의 고스톱 귀신에 붙잡혀 노닥거리다 뜬금없이 후추를 한 봉지 사 가지고 들어가 마누라한테 한 파수 내내 핀퉁아리를 들어야 했었다.
급기야 만복 씨는 농협에서 이장들에게 나눠 준 수첩에다 심부름 목록을 죽 적어 나갔다.
‘멜로디옹, 조청- 고추장 담글 것(시장 안 부식 가게), 볍씨 소독 약’
-‘만복 씨의 화려한 외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