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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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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 : 상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발화 : 상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내 BL
· ISBN : 9791156411857
· 쪽수 : 528쪽
· 출판일 : 2022-02-11

책 소개

여섯 살 이후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열흘 넘게 이어진 고통에 정은규는 자신을 키워 준 베드로 신부를 찾아간다. ‘선일 행정사 사무소’를 찾아가라는 신부의 말에 고심 끝에 가게 된 그곳에서 며칠 전 귀신을 떼어 준 남자를 다시 만나는데….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上)

책속에서

“혹시 이력서 가져오셨습니까?”
“예.”
주섬주섬 건넨 이력서 파일을 받아든 김석호가 자리에 앉아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은 정은규는 굳게 닫힌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산. 시선의 어딜 둘러보아도 산이었다. 새된 비명이 이명처럼 울리는 듯했다. 눈꺼풀이 무겁다.
“적적한데 노래나 틀어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일 보세요.”
그때였다. 도어 록이 차례대로 풀리는 소리가 났다. 아, 오셨네요.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김석호가 몸을 일으켰다. 정은규의 고개도 반쯤 열린 중문 쪽으로 향했다. 웬 남자가 덩치에 안 맞게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뭐냐, 이건. 이딴 게 계단에 왜 있어.”
몸을 일으키자 키가 무척 컸다. 문득 그 뒷모습이 낯익었다. 일단 몸에 맞춘 듯 잘 맞는 슈트 차림부터가 그랬다. 뒷목이 드러나 깔끔하게 다듬은 헤어스타일이나, 언뜻 보이는 날렵한 턱 선까지.
어느새 정은규는 남자의 뒤에 다가가 섰다. ‘이딴 게’ 뭔가 싶었는데, 구둣발에 밟힌 것은 검게 뭉쳐져 형체만 남은 덩어리였다. 콱 밟힌 덩어리가 사정없이 꿈틀거렸다.
본 적 있다. 어릴 때 시도 때도 없이 보던 것들 중에 하나다. 어머니는 이렇게 검은 덩어리만 남은 것들은 소위 말해 ‘갈 때까지 간’ 놈들이라고 했었다. 퇴마사나 무당에게 소멸되지 못하고 떠돌다 기생충처럼 사람에게 붙어 영혼을 좀먹는 ‘악의 덩어리’라고.
그런 덩어리를 남자는 가뿐하게 지르밟았다.
“손님 오신 김에 따라 들어왔나 봐요.”
김석호는 이런 그림이 익숙한 듯 휘파람을 불며 슬리퍼를 직직 끌었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은 남자가 귀찮은 어조로 되물었다.
“손님이라니.”
“베드로 신부님이 보내셨다는데요.”
“왜 보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피우다 만 담배를 눌러 끄듯이 구두 앞코로 덩어리를 짓이기자 덩어리는 이내 연기를 피어오르며 형체 없이 사라졌다.
졸지에 손님임에도 성가신 존재가 된 정은규와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고운 얼굴과 달리 솥뚜껑 같은 손으로 귀신을 잡아 터트려 죽였던 그 생김새가 눈앞에 있었다. 이런 재회를 맞닥뜨릴 줄은 결코 몰랐다.
“구면이네요? 정신 빼놓고 다니던 의사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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