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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국내창작동화
· ISBN : 9791156752264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8-10-30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 4 / 외톨이 공주 • 9 / 머리 꼭대기가 나무에 닿은 날 • 22 / 바다에서 건져 온 아이 • 37 / 모루비깍 마을 • 56 / 한밤에 나타난 고방개 • 70 / 아주 오래된 비밀 • 86 / 교묘한 저울질 • 98 / 목숨과 맞바꾼 목숨 • 109 / 누구를 위한 거짓말인가? • 124 / 내일은 지지 않겠다! • 132 / 맨몸으로 밤바다를 건너다 • 146 / 최후의 방어선, 요새 전투 • 156 / 활과 불 • 170 / 작가의 말 • 190 / 동화로 역사 읽기_ 숨어 있는 한국사, 탐라를 만나다 • 193
리뷰
책속에서
머리 꼭대기가 나무에 닿은 날
밖에서 보면 절벽으로 빙 둘러싸인 돌섬이지만, 사발처럼 바닥이 움푹 패어 있어 완벽한 은신처가 되어 주는 해적의 요새. 이곳은 귀또에게 세상의 전부다. 도적질에 영 서툰 여덟 명의 해적과, 새벽부터 일어나 점을 치고 틈만 나면 비자 열매를 주우러 다니는 큰할망, 가난한 살림살이를 살뜰히 돌보는 막막 어멍과 어린 동생 뎅뎅이까지 열두 식구가 복작복작 어울려 살고 있다. 해적 아방들과 막막 어멍은 고아인 귀또를 ‘공주’라고 부르며 친딸처럼 위해 주고, 큰할망은 탐라 땅의 역사와 신화를 들려주며 귀또가 훗날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가지만 딱 한 가지, 간절한 소원이 있다. 요새 밖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죽어 가던 고구려 아이 우사기가 해적 요새에 와 살게 된다. 우사기는 귀또가 난생 처음 보는 또래 아이로, 속 깊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왠지 모를 비밀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인다.
우사기가 먼저 말했다.
“너는 여기서만 살았니? 저 밖으론 한 번도 안 나가 봤어?”
‘저 밖’이란 요새 밖 세상을 말하는 것이겠지? 귀또는 고개만 끄덕였다.
“너도 언젠간 그곳에 가게 될 거야.”
우사기가 하는 말은 꽤나 어른스럽게 들렸다. 귀또는 며칠 전 요새 건너편 고방개네 초소까지 다녀왔다는 얘길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두목이 이제부턴 망루까지는 가도 된댔어.”
우사기가 바짝 다가와 귀또 얼굴을 찬찬히 보며 말했다.
“바보, 그런 일쯤은 네가 결정할 나이야.”
그 말에 귀또는 몸이 쩌릿해 왔다. 여태 내 스스로 뭘 결정했던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사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놀랍고 부러웠다. 자신보다 키가 큰 만큼 생각도 남달라 보였다.
“넌 눈이 참 깊구나? 그 안에 바람이랑 바다도 보여.”
우사기가 속삭이듯 하는 말이 봄바람처럼 귓속으로 간질간질 파고들었다. 귀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약 뎅뎅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귀또는 부끄러워서 당장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뎅뎅이는 마치 친형이라도 만난 듯, “언니!” 하고 우사기 손을 잡아채서 숲으로 들어갔다. 귀또는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따라 달음질쳤다.
교묘한 저울질
해적의 적수인 줄만 알았던 고방개는 탐라국 여장군으로, 조카 귀또를 납치해 왕위에 세울 준비를 한다. 6년 전 탐라국 장수였던 부마기가 해적으로 위장한 채 귀또를 요새 섬에 데려갈 때, 왕실 신당 마고와 유모 막막 아기를 딸려 보낸 것은 사실 고방개의 뜻이었다. 신라를 잘 달래 탐라국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귀또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낱낱이 알지 못하는 부마기는 고방개가 신라에게 빌붙어 탐라를 망칠 생각이라고 여긴다.
한편 고방개의 생각을 읽은 신라 도독은 당나라 장수와 함께 고방개를 찾아와, 대뜸 무시무시한 제안을 한다. 당나라 장수는 포로 수송선에서 탈출한 고구려 왕자 우사기를 찾고 있으며, 그 아이를 해적들이 데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해적들은 탐라 공주 귀또를 내놓으라 하니, 두 아이를 맞바꾸면 어떻겠냐고. 탐라국의 주권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난 6년간 신라 왕의 비위를 맞추며 온갖 보물을 보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온 고방개에게는 날벼락 같은 얘기다. 신라 왕실뿐 아니라 이제는 신라 도독까지 나서서 탐라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 고방개는 한락궁에서 또다시 아주 불편한 손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신라 도독이 이번에는 당나라 장수를 직접 데리고 나타났다. 여우가 범을 끼고 오다니, 뭔가 일이 단단히 꼬여 가는 기분이었다.
당나라 장수 이각은 구 척이나 되는 큰 키였다. 작은 눈은 찢어졌고 기다란 눈꼬리는 위로 치켜 올라갔는데, 검붉은 얼굴에 그을린 살갗과 단단해 뵈는 몸집은 영락없이 전쟁에 이골이 난 장수였다.
이각 옆에서 도독 김유는 한껏 기세등등했다.
“오늘 아침 심부름꾼 하나가 찾아왔소. (중략) 그자는 자신을 해적이라고 했소.”
“뭐라고? 해적!”
고방개는 자신의 예감이 맞아 들어가는 걸 느꼈다.
“놀라운 건 그자들이 우리가 찾고 있는 왕자를 데리고 있다는 얘기였소. 고구려 왕자 우사기! 내일 우사기를 잡아서 데려오겠다고 하더군.”
김유가 하는 말은 이각의 말과 다름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었소.”
“조건이라니?”
고방개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귀또라는 아이 말이오. 탐라국 공주라던가? 공주를 데려가겠다고 하더군. 해적들이 말이야. (중략) 나도 귀가 있으니 공주 소문은 진작 들었소. 해적 소굴에 있다는 얘기도. 모른 척했을 뿐! 굳이 일을 번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 하나 공주가 지금 궁궐에 와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아주 시끌벅적하게 공주를 궁으로 모셨더군.”
공주가 한락궁에 있다는 소식을 김유가 안다는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고방개도 그쯤은 충분히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일에 고방개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김유가 누구인가? 탐라 왕을 세우는 걸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이였다. 고방개는 눈앞에서 김유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저자는 대체 무슨 속셈일까? 그러고 보면 신라 도독과 탐라 방개의 줄다리기가 육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중이었다.
도독 김유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이 일을 서라벌궁에 알려야 하오. 왕자와 공주를 맞바꾸면, 모든 일은 제자리가 되지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