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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91156754312
· 쪽수 : 31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푸구이.”
아버지는 내 이름을 한 번 부르시고는 침대의 가장자리를 툭툭 치며 말씀하셨지.
“앉아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곁에 앉으니, 아버지가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그 손이 얼음장같이 차서 내 마음도 함께 얼어붙었다네. 아버지는 가볍게 말씀하셨어.
“푸구이, 노름빚도 빚은 빚이다. 예부터 빚은 갚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우리 땅 100여 묘와 이 집을 모두 저당 잡혔으니 내일 사람들이 동전을 가져올 거다. 나는 늙어서 짊어질 힘이 없으니 네가 지고 가서 빚을 갚고 오너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또 길게 한숨을 쉬셨네. 그 말씀을 들으니눈이 시큰시큰하더라구. 나는 아버지가 나와 사생결단을 내실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지. 하지만 아버지 말씀은 마치 무딘 칼로 목을 베이고도 머리가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날 고통스럽게 했다네. 아버지가 내 손을 탁탁 치면서 말씀하셨지.
“가서 자라.”
자전이 돌아와 우리 집은 완전해졌다네. 내 일을 도울 조수도 생긴 셈이고.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 여자를 아끼기 시작했지. 이런 점은 자전이 나한테 슬쩍 알려준 건데, 사실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네. 나는 자전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
“당신은 밭둑에 가서 좀 쉬어.”
자전은 성안에서 자란 아가씨라고 하지 않았나. 가녀린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팠지. 자전은 쉬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어.
“힘들지 않아요.”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이라 하셨지. 자전은 치파오를 벗고 나처럼 무명옷 차림으로 온종일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힘들게 일하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네. 펑샤도 좋은 아이였지.
펑샤는 듣지 못했는지, 뜻밖에도 유칭이 몸을 돌려 나를 보더군. 그 아이는 펑샤 손에 이끌려 계속 걸어가면서도 머리는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지. 나는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네.
“펑샤! 유칭!”
유칭이 제 누이를 잡아끌자 펑샤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지. 나는 얼른 애들 앞으로 뛰어가 무릎을 굽히고 펑샤에게 물었어.
“펑샤, 나를 알아보겠니?”
펑샤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술을 움직였어.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거야. 내가 펑샤에게 말했지.
“내가 네 아빠다.”
그러자 펑샤가 웃음을 터뜨리더군. 그런데 입을 쫙쫙 벌리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