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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6820604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14-04-09
책 소개
목차
Prologue
01. 어긋난 관계
02. 계산
03. 오류
04. 타협
05. 의문
06. 창녀, 혹은 성녀 上
07. 창녀, 혹은 성녀 下
08. 달콤한 꿈 上
09. 달콤한 꿈 下
10. La traviata
11. What matters most 上
12. What matters most 下
13. 유다의 날
14. Kingmaker
15. 그들이 사는 세상
Epilogue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널 거절하면 어떻게 되지?”
“다른 아이가 올 거예요.”
“너는?”
“다른 분을 만날 때까지 대기하고 교육받겠죠.”
수혁은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여기가 고급 클럽이라고 해도, 상대하는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몸을 파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돈을 발라 고급스럽게 꾸며놓고 근사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책을 읽게 하고 음악을 가르쳐 꾸며놓아도 창녀다. 좋은 말로 해서 정부(情婦), 결혼하지는 않고 가까이 둔 채 정을 주고받는 사이라 해도 남자를 위해 다리를 벌리고 그들의 정욕을 풀어주는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여자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몇몇 정신 못 차리는 여자들처럼 상류층을 상대한다는 자부심도 없고,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울상을 짓지도 않았다. 그냥, 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그냥 안다.
이건 또……. 수혁은 턱을 쓸고는 그대로 팔을 괴고 여자를 뜯어보았다.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다. 키는 168센티미터 정도로 큰 편이지만 얼굴도 작고 어깨도 좁아 자그마하게 보였다. 얼굴은 예쁘다기보다 매력적으로 생겼다. 조그만 얼굴에는 과하게 커 보이는 눈, 조그마하게 동그란 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매……, 어떻게 보면 눈매가 짙은 색기 있는 얼굴이었다.
“제가 싫으세요?”
뜯어보는 시간이 길었는지 여자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다시 한 번 헛웃음을 지은 수혁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 아이를 믿을 수 있을까?’
수혁은 여자의 까맣게 색이 없는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어떤 것도 그녀가 그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증거는 되지 않았다. 그가 여기서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노친네들은 긴장할 테고 일을 망칠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할까?
“일어나.”
수혁의 말이 떨어지자 여자가 일어섰다.
“잘 몰라서 묻는 건데…… 내가 여기서 하는 말을 위에다 보고해야 하나?”
“1년까지는요.”
“1년?”
“한 번만 찾고 다시는 안 찾는 분들도 있으시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 분들도 있으세요. 1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관계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터치하지 않아요. 그 전에는 보호 차원에서 보고하도록 되어 있어요.”
역시.
“내가 널 믿어도 되나?”
수혁의 물음에 여자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눈빛을 했다.
“아니요.”
이윽고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지금 아무도 책임질 수 없어요. 어떤 믿음에도 응답해드릴 자신이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만약 여자가 믿어도 좋다고 했으면 수혁은 좀 더 머리가 복잡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믿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수혁의 어깨에서 짐을 벗겨냈다.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 여자는 자신을 믿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수혁의 신뢰를 얻었다.
“이리 와.”
잠깐 머뭇거리던 여자가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한 손에 휘어잡아 침대에 눕힌 수혁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 속에서 희미하게 동요가 일었다.
“처음이면 아플 거다.”
경고한 수혁이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혀와 혀가 닿는 순간 희미한 풀 향이 느껴졌다. 짓이겨진 풀이 지르는 마지막 비명처럼 씁쓸하면서도 어딘지 달콤해 마음이 아린 그런 향이었다.
“하나만 말하지.”
“네?”
눈을 감은 채 경직되어 있던 여자가 겨우겨우 눈을 떴다.
“나에게 너의 아픈 과거나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사연 따위는 말하지 마. 관심 없으니까.”
“네.”
느린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울지도 마. 징징대는 건 딱 질색이야.”
수혁이 단호하게 입술을 눌렀다.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여자가 눈을 감았다. 눈꼬리에서 또르르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