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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7322039
· 쪽수 : 319쪽
· 출판일 : 2018-02-06
책 소개
목차
01 신입식_9
02 아침이면 일어나는 새_36
03 여자 죽이기_62
04 유전무죄 무전유죄_96
05 삶에의 도전_150
06 또 다른 불안_261
저자소개
책속에서
각 방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재소자들의 마음속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마음의 답답함을 번호를 외칠 때마다 토해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재판이란 것도 돈 놓고 돈 먹기인 것이다. 돈만 제대로 판사에게 들어갔다면 나가는 것은 뻔했다. 썩고 썩은 게 법조계의 비리 아닌가. 변호사와 판사의 돈거래는 탄로도 나지 않았다. 워낙 막강한 권위에 있는지라 누가 감히 그들의 뒤를 파헤치겠는가 말이다. 섣불리 잘못 파헤쳤다간 법에 정통한 그들에 의해 역공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하기 일쑤일 것이다. 법의 신성함. 그 신성함을 무기로 서민의 피를 빨아대는 그들은 성역의 보호를 받는 무리들이다.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단지 돈의 힘겨루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무전유죄 유전무죄. 그것은 비단 이곳에서만 쓰여지는 말이 아니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곳의 그들은 하여튼 범죄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척하면 쿵인지 딱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담당의 눈빛만 봐도 그들은 벌써 담당의 낌새를 눈치 챘다. 삶이란 이렇게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이 바로 구치소였다. 밖에서 생각하기로는 창살 안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고 그저 코로만 쉬고 있을 것 같으나 실상 이 안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곳이었다.
“희자. 희자.”
그는 뛰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건 파도소리뿐이었다. 파도가 바윗돌에 부딪치는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지만 뒤돌아보면 파도소리라는 걸 알고는 맥이 빠졌다.
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와 같이 자주 거닐던 바닷가를 달리면서 섬뜩한 예감 같은 게 드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힘껏 내달렸다. 어서 빨리 그녀를 찾아야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희자! 희자! 어디 있어!”
그는 새벽 시간의 바닷가에서 소리쳐 부른다는 것이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시간에 마구 내달리면서 소리지른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초소에서나 해안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이 봤다면 냉큼 총알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종태는 강릉에서 돌아온 그날로부터 편하게 잠을 잤다. 좀 서먹하긴 했지만 집엔 아직도 희자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그녀가 널어놓은 빨래가 아직 그대로 걸려있었고 옷장에는 그녀의 옷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도 고스란히 정돈돼 있었다.
“…….”
그는 누운 채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슬픔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옷장속의 맨 아래칸 서랍에 깊숙이 들어 있던 한영일이라는 명찰이 기억났다. 붉은 사인펜으로 계급이 표시돼 있었고 그 옆에 고딕체의 이름이 선명하게 씌어져 있었던 게 기억났다.
그는 잠시 생각에 골몰해졌다. 그 명찰의 주인이 누구일까.
어떤 일로 해서 희자의 옷이 들어 있는 그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종태는 희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짚어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희자가 죽기 전에 어떠한 이상한 점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꾸만 세상에 대한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어서 마음만 심란해질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들이 다 깡그리 무너질 것만 같은 절박함으로 마음이 더 초조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최종적으로 마음을 결정지었다.
‘이제는 들어가는 거다.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는 거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한결 마음이 놓여졌다. 대개 감방엘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감방에 들어가기 전이 망설여지는 것이지 일단 마음을 굳히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종태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범죄자들은 다 그랬다. 바깥에 있는 것은 단순한 몸이었을 뿐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감방 안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뼁끼통이란 얼마나 편한 곳이었던가. 재소자들은 가끔 울적할 때마다 뼁끼통으로 들어와서 앉아 있곤 했다. 딱히 대변이나 소변이 마렵지 않더라도 일단 뼁끼통에 걸터앉아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 없었다. 면회를 온 여자가 이만 헤어지자 던지고 가면 그들은 슬그머니 뼁끼통 안으로 들어가서 혼자 울었고 혼자 분을 삭이곤 했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고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의 자궁을 원망하기도 했으며 돈이 없어 그럴 듯한 변호사 한 번 사보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듯이 울다가 쇠창살에다 수건을 감고서 자신의 목을 매다는 곳도 바로 뼁끼통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