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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91158791872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2-05-31
책 소개
목차
1부
1. 바닷속 빈센트 / 2. 난 언제나 네게로 / 3. 호텔에서 / 4. 동화 / 5. 올리비아
2부
6. 카운터라이프 / 7. 뱃사람이 되다 / 8. 카운터라이프 / 9. 동화
3부
10. 한배에 타다 / 11. 겨울이 닥치다 / 12. 카운터라이프 / 13. 어둠의 나라 / 14. 한배에 탔던 그들 / 15. 호텔에서 / 16. 바닷속 빈센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미디어 리뷰
리뷰
책속에서
‘나를 멸하라.’ 빈센트가 장갑 낀 떨리는 손으로 에칭 펜을 들고 학교 북쪽 유리창에 낙서를 휘갈겼다. 그녀가 열세 살 때의 일이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포트하디는 밴쿠버섬 북단에 있는 마을이었는데, 빈센트가 사는 동네보다 덜 외진 곳이었다. 폴은 고등학교 교사 모퉁이를 돌아 달려갔다. 늦게 가서 말리지는 못했지만, 빈센트가 사고를 치는 장면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빈센트, 폴, 멀리사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유리창에 적힌 글자에서 산성용액이 줄줄 흘러내리는 걸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낙서 사이로 보이는 어두워진 교실에는 텅 빈 책상과 걸상만 잔뜩 놓여 있었다.
빈센트의 삶이 지닌 문제는,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밝아도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빈센트는 자기가 썩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똑똑한 것과 인생에서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달랐다. 대학 졸업장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아는 것과 학자금 대출이라는 끔찍한 무게를 짊어지려는 의지는 별개의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곁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그녀는 대학 졸업장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 바로 그때, 조너선이 바로 걸어왔다. 한눈에도 부티가 나는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며 대놓고 관심을 보이자 그 순간 빈센트는 훨씬 안락한 삶,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삶이 열리는 모습을 목도했다. 다른 바로 옮겨서 바텐더로 일하는 게 아니라, 외국에 가서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엿본 것이다. 그 기회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한 게 양심에 찔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생활을 누리는 대가를 치르는 거야. 이 정도면 합리적이지.’ 빈센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로 하여금 돈의 왕국에 계속 살게끔 하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돈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전제조건이었다. 돈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주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돈에 쪼들려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유가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이것이 어떻게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