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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부터 사흘 밤낮

당신으로부터 사흘 밤낮

이인 (지은이)
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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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부터 사흘 밤낮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당신으로부터 사흘 밤낮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5006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0-12-28

책 소개

시인동네 시인선 142권. 2013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인 시인의 첫 시집. 삶의 애환으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읽을 때 그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시집은, 슬픔마저도 은유로 승화시키는 언어의 변주를 확인할 수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칠점사 • 13
동박, 동백꽃 • 14
파킨슨 씨의 저녁 • 16
집이 운다 • 18
낮달 • 20
한식 • 21
빈집의 여백 • 22
모란장 • 24
못다 쓴 문장 • 26
흙 위에 쓰는 시 • 28
봉인 • 29
가장 가벼운 의식 • 30
양장의 날개 • 32
백련 • 34

제2부

상강 • 37
장미 정원 • 38
산당화 • 40
사흘 밤낮 • 42
기몽 • 44
부르다 만 노래 • 45
버드나무 미용실 • 46
오색딱따구리의 무덤 • 48
이마가 흰 기러기 • 50
연못이 평화로운 이유 • 52
담쟁이 기도문 • 53
천궁 • 54
곡선의 기억 • 56
암각화를 그린 여우 • 58

제3부

허물 • 61
부드러운 독 • 62
복사꽃 평전 • 64
물총새의 저녁 • 65
뱀딸기 • 66
낮달 2 • 68
한밤중 • 69
일일 • 70
나문재 • 72
올빼미 • 73
옥상 • 74
항아리 거울 • 76
제비꽃 • 77
아주 심기 • 78
꽃들의 행진 • 80

제4부

산벚나무 • 83
환지통 • 84
수문 밖 풍경 • 86
월담 • 87
장다리꽃 • 88
싸리나무가 있는 방 • 90
박꽃 • 92
자웅동주 • 93
옥녀개각혈 • 94
애기똥풀꽃 • 96
꽃사태 • 98
산책 • 99
튤립은 피고 • 100
물방울의 기원 • 102
저녁의 입술 • 104

해설
탈주하는 은유의 힘/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 105

저자소개

이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2013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 시인의 산문

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마디가 밤새 또 한 뼘 키를 늘렸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에 대처하는 방식은 못갖춘마디에 음표를 다는 것, 나는 오선지 위에 여린 마디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는 음표는 영영 그리지 못할 당신의 탄식과도 같아서 끝마디에 가닿지 못할 것을 안다. 빗방울 마디와 눈송이 마디가 꽃잎의 마디로 피어오를 때까지 오래오래 오선지 위를 나는 배회할 테지만……,

당신이 부르다 만 노래의 첫마디가 오래 귓속에 머무를 것 같다.


머리에 일곱 개의 별을 단 뱀을
노인은 산 채로 유리병에 넣고 술을 붓는다

뱀의 익사를 본다
별의 익사를 본다

죽음을 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좀처럼 자세가 취해지지 않는다

제가 뿜은 독(毒)에 취해
일곱 개의 별을 뱉어낸다

유리병 속에
북두칠성이 떴다
― 「칠점사」 전문

늙은 감나무 빈집을 내려다보고 있다

흙벽 떨어져 나간 토방 앞
들고양이 배 깔고 자울자울 졸고
댓돌 위 다 해진 검정 고무신 한 짝 누워 있다

문턱이 다 닳도록 드나들던 안방 방문 위
윗대서부터 내려왔다는 가훈이
비딱하게 걸려 있다

여름 한철 국수를 밀던 밀대는
부뚜막을 굴러다니고
녹슨 가마솥에는 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다

빈손으로 허공만 더듬거리던 바람
마당귀, 저 홀로 피어 만삭이 된
봉숭아꽃 씨방을 만지작거리고
나비는 문 열린 빈집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붉은 굴뚝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
그늘 넓히느라 하루가 짧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집
불쑥 대문을 밀고 들어올 것 같은 사람이 그리워
집이 운다

땡감 매달고 있는 감나무 가지 끝
귀 닮은 낮달이 걸려 있다
― 「집이 운다」 전문

내 손바닥 위에 조약돌을 쥐여 주고 떠났다
돌을 움켜쥐고 크게 한번 흔들었다
썰물이 빠져나간 조약돌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화인처럼 내게 남겨진 조약돌

너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지구의 자전이 몇 번 있고서야 알았다

백중 때가 되면 손 안에서
잔물결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한낮에도 달은 뜨고
물결은 차오른다

어둠은 어쩌다가 달을 놓쳤을까?
― 「낮달」 전문

월간지로 나온 살구나무 책을 펼쳐든다 물관을 타고 오르는 활자들이 뿌리의 안부를 묻는다 아지랑이 토해내는 나무의 목록을 누가 흙 속에 새겨두었던 걸까 적산가옥 그 연혁이 펼쳐진 봄, 굴뚝은 제 붉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연기만 자꾸 피워 올린다 그때 눈이 가려운 살구나무들이 꽃빛을 피운다 이따금 부리에 침을 바른 새떼들이 봄빛을 몰고 와 책장을 넘긴다 몇 년 전 타지로 나간 주인집 아들이 유골함으로 돌아왔다 봄비에 젖은 나무는 온종일 몸을 뒤척였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수피 속으로 가두었다 비에 젖은 파란 대문이 붉은빛으로 글썽이고 꽃숭어리가 빗소리에 다 털릴 즈음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봄밤이 늘어지지 말라고 솔잎 시침핀으로 지붕을 눌러놓았다

봄이란 책장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 「흙 위에 쓰는 시」 전문

목련은 기러기 날아간 곳으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운다

북국(北國)을 향해 눈뜨는 꽃망울
어둠 찢고 나오는 풋잠

가지 끝,
저 먼 슬픔을 향해 손을 내밀어본다

얼굴만 가물거리는 사람
꽃으로 흘러갈 사람

한 숨결이
한 숨결을 먼발치에 묻고

당신으로부터 사흘 밤낮
돌아선 뒤의 일이었다
― 「상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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