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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6171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3-10-10
책 소개
목차
제1부
동굴•13/돌탑에 대한 이분법•14/배롱나무•15/고라니의 봄•16/호박꽃과 일벌•17/암각화•18/숨비소리•19/서커스 소녀•20/열흘 후•21/비밀을 말해주세요•22/최초의 시•23/소•24/이구아수 폭포•25/떡갈나무 하느님•26/늙은 맛•27/전염•28
제2부
탑골공원•31/전태일•32/들풀거미•33/그 사내와 살래요•34/당산나무•35/탁란(托卵)•36/금강초롱꽃•37/우리처럼•38/외동서•39/꽃가루에게•40/상수리나무•41/미역할매•42/지렁이•43/땅벌•44/슬픈 희망•46/아기 멸치에게•47/신춘문예•48
제3부
가족의 변천사•51/새처럼•52/하지(夏至)•53/찔레순•54/거미와 바람•55/야생 피에로•56/바얀 작•58/치자색•59/호저(豪猪)•60/남근상•61/열락(悅樂)의 길•62/막고굴의 은유•64/지귀섬•65/모과나무 스님•66/푸레독•67/참선하는 바위•68/다람쥐의 건망증•70
제4부
산사람•73/황구렁이•74/산솜다리꽃•75/운주사 고랑•76/아무르호랑이•78/태고사 가는 길•79/조선소나무•80/천지(天池)•81/뾰족하다•82/죽을 만큼•83/푸른 시간•84/할(喝)•85/증상•86/그곳에 가면•87/파랑도•88/안테키누스•89/보여줄 수 없다•90
해설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91
저자소개
책속에서
■ 해설 엿보기
아프지 않고 좋은 시를 쓰기는 어렵다. 서럽지 않고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는 힘들다. 안현심 시인도 아프고 서러운 가운데 저 자신을 키워온 사람이다. “홀로 저녁밥을 먹으며” 자주 “소주를 마”시고는 해온 사람이 그라는 것이다. 마음속 깊이 “누구에게도 내색하고 싶지 않은 가시”(「보여줄 수 없다」)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가시는 늘 수많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때의 수많은 생각은 항용 심미적 상상력으로 승화되고는 한다. 안현심 시인은 바로 이때의 심미적 상상력을 응축하고 압축해 시로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의 시에 부연과 나열보다는 응축과 압축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생략과 배제의 언어에 기대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방법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응축과 압축의 정신은 무엇보다 거짓되지 않은 가치, 곧 올바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데서 비롯되는 듯싶다. 그렇다. 지극하고, 무구하고, 순수한 가치를 심미적 언어로 실천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그가 시에서 자신의 삶과 관련하여 “바윗덩이가 가로막아도 돌아서지 않았다/에둘러가지 않았고/폭약을 터뜨리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로부터 기인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지치지 않고 “오롯이 곧게 파고”(「동굴」)든 것이 그의 삶이라는 것이다.
바람의 소리를 빌려
게송을 외웠어요
가는 손가락으로 물을 길어 올려
묵은 때를 벗겼어요
허랑한 말
송곳 같은 말 버리고
가난한 눈을 연민했더니
멀리서도 빛났어요,
희디흰 어깨
― 「배롱나무」 전문
이 시의 화자는 ‘배롱나무’이다. 그러니만큼 이 시에는 배롱나무의 목소리가 들어 있다. 이 시가 배역의 화자를 택하고 있는 까닭, 곧 ‘배역시’가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시에서의 화자인 배롱나무는 ‘객관상관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허랑한 말/송곳 같은 말 버리고/가난한 눈을 연민”해 온 것이 실제로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줄곧 허랑하지 않은 삶, 지극한 삶, 정성스러운 삶을 추구해 온 사람이다. 이러한 삶이 최선을 다하는 삶, 곧 혼신을 기울이는 삶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따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시를 통해 그가 “일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호박꽃과 일벌」)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마음의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반성과 성찰의 감정에 집중하기 쉽다. 반성과 성찰의 감정은 뒤를 돌아다보며 미래를 전망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의 시에 “돌탑이 무너졌다/훼손당한 뼛조각이 산비탈을 뒹굴었다//누군가의 소망이/너에겐 우상(偶像)이 되었구나”(「돌탑에 대한 이분법」)와 같은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 있는 것도 얼마간은 이에서 비롯된다.
반성과 성찰의 마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저 자신의 마음을 절차탁마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가리킨다. 저 자신의 마음을 절차탁마하며 살아가는 삶은 저 자신의 마음을 수행하고 수도하며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그가 추구하는 수행하고 수도하며 살아가는 삶은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삶, 지극하고, 무구하고 순수한 삶을 견지하려는 의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학원 공부할 때
바윗덩이가 가로막아도 돌아서지 않았다
에둘러가지 않고
폭약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견고한 저 너머
맑은 숨이 반짝이고 있어,
망치질 한 번에 숨을 고르고
망치질 한 번에 땀방울 찍어내며
오롯이 곧게 파고들었다
빛을 구걸하지 않으면서
뚜벅뚜벅 길을 열어가는 동안
정(釘)을 쪼는 소리,
밤하늘에 부딪혀 쨍그랑거렸다
― 「동굴」 전문
구석기 시대 인류가
그림 일기장에서 말했어요
오늘은 바위산에서 염소를 잡았어요
다섯 명이 사냥을 나갔는데
내가 쏜 화살촉이 심장을 뚫은 것 같아요
뿔이 멋지게 휘어진 대장 수컷이었죠
닷새 후엔 세 마리쯤 더 잡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부족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까요
풍요를 빌던 오래된 기억은
집단무의식이 되어 내리흘렀죠
저길 보세요,
암각화에서 기어 나와
고비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염소와 양 떼
― 「암각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