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017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5-08-06
책 소개
목차
제1부
태초의 말씀•13/오찬의 순서•14/별빛에 관해서•16/적멸(寂滅)•17/마네킹의 유혹•18/사랑에 관하여•20/섬의 노래•22/달밤•23/나무, 날다•24/고독의 얼굴•26/절경(絶景)•28/달빛 동행•30/별•31/다시 어머니 앞에서•32/신•35/저곳에서 이곳을 보다•36/그림자•38/낙타, 길 위의 고백•40/정상에서•42/詩•44
제2부
알•47/최후의 말씀•48/가을, 밤송이의 연가•50/고독의 몸•52/이름을 버리는 시간•54/지나가는 풍경•56/사막의 詩•57/모래시계의 정각•58/얼음 조각가의 첫 고백•60/내 안의 허공•62/가을, 바람이었다•64/마술•66/고독, 지평선을 긋다•67/바람의 詩•68/바람으로 서다•70/허기를 먹다•72/이정표•74/일상•75/허공에서 허공을 보다•76/그림자의 시간•78
제3부
고독나무•81/겨울나무•82/풍선인형의 詩•84/고독 읽기•86/러닝머신•88/천년의 힘•89/구름의 詩•90/슬픈 영화•92/덧칠•94/바닷가 횟집 수족관 앞에서•96/서귀포•98/그대의 침묵•99/석촌호수의 봄을 거닐다•100/고독을 주제로 하는 담화•102/이름 없는 꽃에게•104/노을•105/마지막 종합뉴스•106/침묵의 말씀•108
해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109
저자소개
책속에서
[해설 엿보기]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어야 하나. 단지 살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긁어모으려 하나.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끌어들여야 마음이 놓이는 세상에서 어떡하면 하나라도 더 버릴까,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더 떼어낼지를 고민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반(反)문법, 반(反)체제, 반(反)문화, 반(反)상식이라 부를 것이다. 공리나 사회적 통념에 대한 의심과 거부가 예술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라면, 모든 예술은 사실 반문법적이고, 반체제적이며, 반문화적이다. 김수영이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했을 때의 “문화”, “민족”, “인류”는 권력이 만든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그것들을 지칭한다. 이런 점에서 구석본 시인은, 구석본의 이 시집은 대단히 반통념적이며, 반체제적이고, 반문화적이다. 그는 소유와 축적이라는 욕망의 언어와 정반대의 고독과 허공의 언어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는 자아의 성을 쌓는 일보다 허무는 일에 더 집중하고, 지식과 정보의 아카이브를 만드는 일보다 해체하는 일에 몰두하며, 관계와 집단의 울타리보다 외로운 단독자가 되기를 더 추구한다.
가을의 말씀에는 은유가 없다
은유의 꽃이 사라지고
은유의 잎이 떨어지고
은유의 뿌리였던
허기와 향기가 지워지고 나면
원색의 하늘만 남아, 침묵의 하늘만 남아
태초의 말씀,
허공 가득한 바람의 의태어로
그대의 한 생을 증언하고 있다.
― 「태초의 말씀」 전문
이 시집의 맨 앞에 배치된 이 작품은 구석본이 지향하는 언어의 고원(高原)이, 예술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놀랍게도 은유의 고향인 시의 고원에서조차 은유를 거부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구석본의 가장 심한 래디컬리즘(radicalism)이다. 그가 볼 땐, 시의 ‘문법’인 은유조차 그 뿌리는 “허기와 향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결핍에서 나오는 욕망의 언어이며, 악취를 가리는 위장의 언어이다. “가을의 말씀”은 그 모든 욕망과 위장의 이파리를 다 버린 언어, 그래서 “원색의 하늘”, “침묵의 하늘”만 남은 언어이며, “태초의 말씀”이고, 그런 점에서 출발의 언어 혹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다. 그는 물을 거부하며 수면 밖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상징계에서 상징계를 거부하며 실재계로 몸을 던진다. “허공 가득한 바람”은 이렇게 은유의 옷을 다 벗어버린 자만이 순간적으로 만날 수 있는 태초의 언어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별빛,
그 무엇도 밝히지 않는,
스스로만 빛나는,
어둠이 밝히는,
어둠 속에서만 빛나는 빛이다.
우주의 어둠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고독의 빛이다.
― 「별빛에 관하여」 전문
고슴도치 한 마리,
동그랗게 몸을 말아 허공에 걸려 있다
지상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고독이
우주의 중심으로 솟아
노랗게 독이 오른 가시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급소를 찌르고 있다.
― 「달밤」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