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수학 > 수학 일반
· ISBN : 9791159252679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7-07-21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여는 글_은둔자와 참여자, 그 중간 지대의 위험
로랑 슈바르츠_사회 활동을 정력적으로 수행한 당대의 지성
세기의 지성 | 양자 역학에 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다 | 식민지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노력 | 수학 대중화의 개척자
다비트 힐베르트_통찰력을 갖춘 위대한 수학자
20세기 수학의 흐름을 바꾼 대(大) 수학자 | 20세기 물리학의 토대를 만든 수학자 | 이게 신학이지 수학이란 말인가! | 세기의 수학 문제
앨런 튜링_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입증한 수학자
컴퓨터의 탄생을 촉진한 선구자 | 암호 해독의 달인 | 컴퓨터의 발명을 이끌어낸 수리논리학자 | 생명 현상의 수학적 설명
브누아 망델브로_깨진 조각으로 질서를 만들어낸 프랙탈의 대부
지적 호기심에 이끌린 수학계의 이단아 | 불규칙의 규칙성 | 자기 반복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프랙털 차원 | 컴퓨터의 도움으로 얻은 새로운 통찰
앙리 푸앵카레_수학과 물리학에 통달했던 20세기 마지막 보편주의자
나는 전설이다 | 수학과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 통달한 수학자 | 과학의 대중화에 열정을 바치다 | 필즈상을 세 개 배출한 푸앵카레 추론
에미 뇌터_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수학자
마리 퀴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다 | 늦게 피어난 꽃 | 현대 대수학의 토대를 다지다 | 현대 물리학에 기여하다 | 위대한 멘토
앤드루 와일스_350년의 난제와 8년 동안 사투를 벌이다
20세기 수학에 최고의 업적을 남기다 | 난제 해결과 수학 발전의 방식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열 살 소년의 꿈, 이루어지다 | 아마추어 수학자들에게
폴 에르되시_협력 연구의 달인, 방랑하는 자유인
20세기의 기인(奇人) 수학자 | 협력 연구의 달인 | 에르되시 수 | 방랑하는 자유인
스티븐 스메일_수학과 세상 사이, 순수와 응용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다
늦게 피어난 천재성 | 수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든 자유로움 | 세상의 문제에 대한 열린 관심
장 피에르 세르_최연소 필즈상 수상자의 기록을 62년째 유지하는 수학자
영감(靈感)과 돌파력을 가장 오래 유지한 수학자 | 수학은 정말 젊은이들만의 게임일까? | 틀린 것을 보면 몸이 아프다 | 수학자들의 비밀 결사 부르바키
히로나카 헤이스케_학문의 즐거움을 설파한 일본의 수학자
전쟁의 와중에 수학에 사로잡힌 소년 | 철학적 사유로 수학 난제를 풀다 | 학문의 즐거움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노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_영감으로 비범한 수학을 일구다
현대 수학의 이단아 | 평생을 바꾼 경험 | 어려움 속에서 귀인을 만나다 | 영감으로 얻은 비범한 결과
천싱선_20세기 기하학의 방향을 바꾼 동양의 작은 거인
중국 지성사의 자랑 | 기하학의 역사를 새로 쓰다 | 위대한 비전을 가진 리더
더 읽어보기_박형주의 色다른 수학 칼럼
수학자는 따분하다고? | 천재들의 브로맨스 | 독일軍 암호 깬 ‘생각하는 기계’… 인공지능의 시작이 되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슈바르츠는 특유의 명강의로 유명했어요. 그의 강의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곤 했습니다. 전문적인 수학 연구에 관한 강의에서도 그랬지만, 가르침의 즐거움을 설파하며 교육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슈바르츠의 대중 강연에는 수많은 청중이 운집하여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노년까지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을 이어갔던 그는 프랑스적인 지적 전통이 배출한 깨어 있는 지식인으로 여전히 존경받고 있습니다.
“수학이 무슨 효용이 있냐고요? 수학 없이는 물리학을 할 수가 없어요. 물리학 덕분에 냉장고를 만들 수 있고요. 냉장고에는 바다가재를 보관할 수 있는데, 수학자는 그걸 먹고 수학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물리학에 도움이 되고요. 덕분에 냉장고를 만들 수 있고, 그래서 바다가재….”
이 말은 여러 곳에서 인용된 그의 대중 강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수학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인류의 삶이 개선된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한 것인데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통하던 슈바르츠의 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_<로랑 슈바르츠>
거대한 꿈을 가졌던 천재 수학자 튜링은 안타깝게도 42세 생일을 목전에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먹다 만 사과와 함께 발견되었는데 사과에는 독약인 청산가리가 발라져 있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미국의 컴퓨터 회사 애플사의 로고가 튜링의 먹다 만 사과를 의미한다고도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어요.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가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혼돈과 세상의 핍박을 감당하지 못해서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요. 공식적으로는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음모론에 기반을 둔 다른 설도 있습니다. 튜링에게 화학적 거세라는 치욕을 주어 결국 그의 자살을 야기한 영국 정부는 2009년에 이것이 잘못된 결정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바 있지요.
컴퓨터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꾸면서 튜링의 업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또한 합당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튜링 어워드’라는 상이 제정된 것도 하나의 예인데요. 이는 전산 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또한 그의 이름이 붙은 도서관이나 길도 많이 생겨났어요. 그가 더 오래 살면서 대담한 꿈을 펼쳤더라면 인공지능의 문제에 큰 진전을 이루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는데요. 그랬더라면 20세기 문명의 지도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_<앨런 튜링>
뇌터의 재능이 늦게 발현된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과 연구에서 배제되던 당시 독일 사회체제의 모순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1860년대에서 1880년대를 거치면서 프랑스 ? 영국 ? 이탈리아 순으로 여성의 대학 입학이 가능해졌지만 독일 대학들은 1900년까지도 여성 불가의 원칙을 고수했거든요. 그나마 에미 뇌터는 아버지인 막스 뇌터가 에를랑겐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덕에 수학을 일찍 접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대학 입학만큼은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우선은 에를랑겐 대학과 괴팅겐 대학의 청강생 신분에 만족해야 했어요.
그러던 중 여성의 대학 입학이 허용되자 뇌터는 1904년 에를랑겐 대학에 정식으로 재입학합니다. 그리고 폴 고든의 지도하에 불변 이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7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요. 이 기간 중 이루어진 연구가 힐베르트와 클라인의 주목을 받게 되고, 1915년에 뇌터는 그들의 초청으로 괴팅겐 대학에서 연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시스템에서는 여교수의 정식 임용이 불가능했기에 뇌터는 하는 수없이 무급으로 강의와 연구를 병행했는데요. 가족의 재정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그녀는 늘 절약하며 생활했고, 그 습관이 평생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의 강사 임명을
주장했던 힐베르트는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는데요. 바로 “성별 차이로 강사 임용을 결정하다니. 이곳은 대학이지 목욕탕이 아니지 않소?”라는 따끔한 일침이었지요.
_<에미 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