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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91159257384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22-06-2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왜 언니는 중매결혼을 하려 할까?
카미즈의 화려한 색감과 옷감 바스락거리는 소리, 연필 두드리는 소리, 향수와 강황 냄새가 감각을 자극했다. 목적이 분명해졌다. ‘영국엔 이곳 사우스홀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잖아. 한번 바꿔보자고.’ 분개하여 눈에 불을 밝힌 여성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집필할 것이다. 온 세상이 읽을 바로 그런 이야기를.
또 이렇게 부딪치다니. 가족을 욕보인 딸내미로 사느니 차라리 법에 따라 기소된 범죄자로 사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다. 범죄자는 딱 정해진 만큼만 형을 살면 되지만, 이 죄책감의 여정은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한다구요.” 만지트가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외로운 밤을 가십으로 채울 거라 생각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얘기만 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훨씬 재미있거든요.”
‘다들 틀렸어.’ 스니타는 생각했다. ‘세상을 내 방식대로 바라본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아.’
“하지만 섹스와 쾌락은 본능적인 거잖아요? 만족스러운 섹스는 오감을 자극하죠.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당신과 나, 우리는 섹스를 그저 발달된 발명품처럼 여기죠. 읽기, 쓰기, 컴퓨터 사용법 같은 다른 기본적인 것들을 익힌 후에 섹스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에요. 그분들은 그런 것들을 익히기 전에 섹스를 경험했죠.”
아주 오래전, 희미하게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무엇을, 왜 하는지 처음 알게 되었을 때였다. 젊은 시절의 그 흥분을 까맣게 잊은 채 살아왔지만, 한때 그녀는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다른 인간과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생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어제를 회상하니 다시금 몸에 전율이 일었지만, 이내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근데 내가 왜?”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뱉은 질문이 방 안을 감싼 침묵을 깼다. 왜 그녀가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여자, 특히 자기처럼 나이 깨나 먹은 여자는 간밤에 느낀 것과 같은 종류의 쾌락을 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엄마, 나는 사우스홀에서 단순히 나쁜 짓을 시작한 게 아니야. 그 일을 그만둘 생각도 없어요. 우리 수업은 여자들에게 그들도 받아들여지고 지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난생처음으로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었고,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난 그들이 그 사실을 발견하게 도와준 거고, 나 또한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 여자들은 불의를 봐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었어요. 간섭하거나 경찰을 찾아가는 건 부적절하다고 배웠으니까. 그런 그들이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스스로 위험 속에 발을 들였어. 싸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이딴 이야기들이 우리 공동체를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 아십니까? 내가 복사본을 만들어주면 더 많은 집에 퍼뜨릴 게 아니냐고요.” 아카시가 씩씩거렸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쿨빈더는 말했다. 진실이 밝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망치는 건 너랑 너같이 편협한 생각을 가진 패거리들이지.” 형제회는 이런 식으로 추종자들을 모으는구나. 쿨빈더는 새삼 생각했다.
쿨빈더는 팔 아래에 서류철을 낀 채로 다시 집을 나와 안셀 로드를 걸어갔다. 줄지어 선 집들을 지나가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저 집에 사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읽었을까? 그들의 인생도 바뀌었을까? 조용히 내리는 안개비가 쿨빈더의 머리카락에 마치 보석처럼 잔뜩 붙어 있었다.
왜 언니는 중매결혼을 하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