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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59604089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6-05-1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에필로그
작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재욱의 눈에 회사 건물 앞 광장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아니, 그 여자와 얘기 중인 김 이사가 먼저 보였다고 해야 되나?
김 이사가 처음 보는 젊은 여자에게 저리 친근하게 웃는 걸 보니 호기심이 생겼고, 무엇보다 분명 처음 보는 여자인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는다는 게 더욱 궁금증을 자극했다.
백팩을 메고 헐렁한 흰색 셔츠에 연푸른 데님 스키니를 입은 여자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인 게 20대 초반의 대학생처럼 보였다. 최근에 만난 여자 중 대학생은 없는데 대체 어디에서 본 건지 기억을 더듬을 때였다.
그녀가 종이봉투 하나를 김 이사에게 건네고 꾸벅 인사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재욱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던 그녀와 그쪽으로 다가가던 재욱의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그녀를 어디에서 봤는지가 떠올랐다.
170센티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그리고 저리 생긋 웃는 표정 위로 한 여자가 오버랩 되었다.
2주 전쯤이던가? 집안의 왕래가 잦아 어렸을 때부터 형제처럼 지내다시피 한 절친, 진하와 함께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리버스 호텔에 잠시 들렀을 때 로비에서 봤던 여자.
위험부담 어쩌고 하면서 당당히 돈을 요구하고,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굴던 그 여자였다. 그땐 화사한 화장과 드레시한 차림으로 우아한 숙녀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영락없이 순수한 여대생이었다.
재욱이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보자 그녀는 잠깐 멈칫하며 아는 사람인가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그대로 그를 지나쳐 가 버렸다.
대체 저 여자가 김 이사와는 무슨……?
“어, 전무님. 이제 오십니까?”
그녀의 뒷모습을 찌푸린 눈으로 좇는데 김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욱은 김 이사를 돌아보며 잠시 그를 살피듯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넉넉한 풍채에 고급 슈트를 갖춰 입은 김 이사는 딱 봐도 부유해 보이는 신사였다. 혹시나 저 여자가 김 이사를 타겟으로 삼아 상큼한 여대생 코스프레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업무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유능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선 굉장히 유한 편이라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못 지나친다는 걸 알기에 더 그랬다.
“전무님?”
재욱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김 이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라도……?”
“방금 함께 있던…… 그건 뭡니까?”
대놓고 저 여자 누구냐고 묻기보단 둘 사이에 주고받은 물건이 뭔지부터 아는 게 나을 듯해서 김 이사가 들고 있는 종이봉투를 가리켰다.
“아, 이거요. 오늘 저녁 동창 모임 때 필요한 건데 집에 놓고 와서요.”
집에 놓고 온 걸 그 여자가 가져왔다고?
“그럼 방금 같이 있던 그 여잔…….”
“이 선생님이요? 민지 과외 선생님인데 마침 이 근처 나올 일이 있대서 집사람이 부탁했나 봐요.”
“과외 선생님? 아까 그 여자가 민지 과외 선생님이라고요?”
“예, 그런데 왜…… 우리 선생님 아세요?”
우리 선생님? 그녀를 친근하게 부르는 김 이사의 어투에 재욱의 눈살이 또 찌푸려졌다.
“그 여자가 민지 과외한 지는 얼마나 됐죠?”
“중 1때부터니까 3년째인데, 왜 그러십니까?”
“3년? 최근 시작한 게 아니고?”
“예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지……?”
“아뇨,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재욱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여자에 대한 궁금증과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그 여자에 대해 묻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김 이사에게 봉투를 전달하고 돌아서 나올 때 마주친 남자를 떠올리며 세영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 조각 미남과 안면을 터 본 적이 없는데 그 남자가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본 게 이상했던 것이다. 언제 만난 적이 있었던 사람인지 기억을 헤집어 봤지만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
청회색 슈트를 입고 한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살짝 삐딱하게 선 그 남자의 비주얼은 런웨이의 대미를 장식하는 모델처럼 근사했다.
‘날 아나? 설마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쉽게 잊힐 얼굴이 아닌데…….’
왜 그리 쳐다보는지, 혹시 날 아는지 물어볼걸 그랬나 싶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의 눈빛엔 호의라기 보단 못마땅함이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다.
암만 비주얼이 훌륭하더라도 성질 더럽고 무책임한 남자는 질색인지라 세영은 머릿속에서 그를 지워 냈다. 무책임한 건 모르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것만 봐도 심사가 고운 남자는 아닐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