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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0201710
· 쪽수 : 444쪽
· 출판일 : 2022-03-03
책 소개
목차
엮은이의 말
1부 본동에 내리는 비
2부 금강에서
3부 靑山을 부른다
4부 고향 길
유고 시
미발표 시
해설_비非근대인의 시론_임우기
시집 『고향 길』 발문_김종철
윤중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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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절박한 시대의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윤중호의 시는 한 의미심장한 방향을 가리키는 매우 소중한 시적 좌표이다. 시는 근본적으로 언어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면, 시인 윤중호는 생전에 그 자신 ‘비근대적 삶’을 실천했듯이 타고난 성정과 재능대로의 ‘생래적인 시’ 쓰기에 투철하였고, 마침내 자신의 ‘비근대인의 시’를 우리 현대시사 속에서 높고도 특별한 반열에 올려놓았다.”
—해설 「비非근대인의 시론」에서, 임우기(문학평론가)
나는 비탈에 산다.
아침저녁,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다니는 산동네지만
장마질 때는, 제일한강교로
슬슬, 물구경 다니는 맛도 있고
이틀에 한 번씩은, 옆방 아저씨의
쌈구경하는 맛도 있다.
나는 비탈에 산다.
천 원짜리 미술 준비를 못 한 옆집 주희가
울면서 학교를 가는 동네지만, 비탈에서도
깔깔대면서, 나무는 하늘로 곧게 자라고
푸짐한 이파리를 피워
시원한 그늘도 만들 줄 안다.
나는 비탈에 산다.
사철 응달인 비탈이라, 봄은 더디 오지만
겨울 소식은 언제나 일등으로 오고,
몰랐지? 먹어봐야 입만 아리지만
여기서는 돼지감자꽃도 핀다.
나는 비탈에 산다.
부자 동네의 육십 몇 층짜리 빌딩보다도
더 높은 곳에 사신다.
종일 물 받기에 바쁘고 연탄값도
아래 동네보다 10원씩 더 비싸지만, 박 씨 아저씨는
10원씩 더 비싼 연탄값 때문에
술값이라도 생긴다.
새까맣게 종일 일해야
삼천 원 벌이지만, 그게 어디냐고
높은 데 사시는 분답게 매사에 열심이시다.
열심히 술 먹고
열심히 교회도 다니고
열심히 싸워, 심심찮게 코피도 터지지만,
산동네를 철거할 땐 두고 보자고
연판장도 돌리고
연일 술추렴이 벌어지는
부럽지?
나는 비탈에 산다.
—1부 「본동일기・열」 전문
언덕은, 올라가도
올라가도 숨이 차지 않았다.
까치발을 선 채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했지만
눈을 감고도 보는 법을 배운 것은
여기, 이 언덕을 다 올라오고서부터이다.
다락골 날맹이, 다락 같은 운동장에 모여
잔바람에도 흔들렸지만
안장검, 의점, 발화지, 노루땅, 쪽다락골, 감나무골
고대도가 보이고
흔들릴 때마다
풋보리 피는 소리에
얼굴이 까맣게 타서, 우린
손을 잡고 웃었다.
기차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예쁜 수염을 휘날릴 줄 아는 강냉이에 싸여, 우린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
하늘을 보는 법을 배운다.
배운다, 무심한 듯이
온몸을 떨어 소리 내는 보리호뜨기처럼
온몸을, 온몸을
내어 보이는 것들을.
—1부 「언덕의 얘기들」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