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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0201901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3-09-20
책 소개
목차
D-12
증명할 수 없는 세계
로마의 자비
언제나처럼 완벽하게
꿈과 신화
D-11
영웅과 후예들
신뢰로 보답하는
무가치한 사냥
떠나야 할 때
D-10
채찍의 행보
분홍빛 인생
만만찮은 대결
D-9
홀로 누워 자는 사람들
엄마라는 사람
폐허의 잔상
머르기트 섬의 산책
D-8
달의 친구, 별의 연인
너는 너다
나만 생각할 거야, 나만
용감하고 뻔뻔한 선택
D-7
구야쉬 수프
눈썹뼈를 지켜내는 시간
라이크스 미술관에서
D-6
편두
감춰진 시간
두통
삶에 대한 예의
D-5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
무당의 집
뒤늦게 알게 되는
생존의 방식
D-4
들끓는 자들
메꾸지 못할 구멍
진짜 여행자처럼
아름답고 푸른 두나강
D-3
단조로운 노래, 단순한 춤
끊어버리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쉽지 않은 만남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D-2
귀한 부패
혼란
단순하지 않은 가출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
D-1
지우개 가루 눈물
이게 아닌데
나는 나다
D-0
두 세상의 힘겨루기
‘혼자’를 추슬러
해설 고종석
투란의 추억, 또는 움직이는 영혼을 위한 송가
작가의 말
내 마음에 드는 ‘나’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들은 생에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배려심이 깊지도 않은 채찍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떤 종류의 채찍이냐 하는 것뿐. 아홉 가닥 채찍이라 해서 덜 아픈 게 아니고 서른아홉 가닥 채찍이라 해서 더 아픈 게 아니었다. (…) 채찍의 끝에 날카로운 뼛조각이 달렸든 가시, 쇳조각, 쇠구슬이 달렸든, 임계점을 벗어난 고통의 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는 지나치게 건조해 보였다. 어설프게 살아 있느니 차라리 바싹 말라 죽어버리고 말겠다며 꼿꼿하게 수분을 빼고 있는 드라이플라워 같았다. 효령은 사진을 들고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치매가 오고서도 엄마는 속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니, 치매가 왔으니 더 어찌할 수가 없는 건가. 효령이 사진 속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엄마는 딴청을 피웠다. 마치 징그러운 그리마라도 본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다가 곧 건강할 때처럼 푸닥거리라도 할 태세로 자신의 방울을 찾아 헤맸다. 효령이 부르짖었다. “날 위해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뭔가를 할 수 없어? 제발 딱 한 번만이라도…….” 하지만 엄마는 눈을 꼭 감은 채, 여전히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찾지 못할 방울을 맹렬히 흔들어댔을 뿐이다.
아이의 인생이 펜의 분홍색처럼 곱게 빛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 해도 대신 그 이해로 인해 무언가를 잃는 일 없이, 그저 주어지는 것은 기꺼이 누리되 가질 수 없는 것은 조금만 애태우면서, 가만히 살아가면 좋겠다. 자기를 파괴하고 주변을 망치고서야 이르게 되는 헤아림이 있다면, 그 헤아림이 어떤 경지든 효령은 윤지가 그것을 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무모하게 도전하기보다 안전하게 포기하게 할 것이다. 실쌈스레 타협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지가 부득이 생의 채찍을 맞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효령은 기꺼이 몸을 던져 대신 채찍을 맞을 것이다. 좌절의 채찍이든 배신의 채찍이든 실연의 채찍이든, 그 어떤 채찍이라 해도 아이의 무고한 피부에 상처 내지 못하게 하리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