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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60270235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7-10-10
책 소개
목차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부임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사투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분노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고투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숙적
경사 기쿠치 하루나의 동요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귀환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넓은 서장실 안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연신 몸을 꿈지럭거렸다. 오늘 아침, 시코쿠 촌구석 논밭 사이에 오도카니 자리한 작은 경찰서에 서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이 서장용 의자는 너무 푹신해서 오히려 불편하다. 이런 의자는, 오랜 세월 현장 바닥을 훑고 다니느라 요통을 얻고 정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앉아 보는…… 요컨대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의자다. 이제 30대 중반인 나 같은 놈이 앉아서 일할 의자는 못된다. 하긴 이런 지방 관할서에서 나 같은 커리어 출신은 그저 장식품 같은 존재라, 어차피 일거리도 없으니 별 상관없을지 모르겠다. 옛날엔 더 심해서 서른도 되기 전에 서장이 되었다고들 한다.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하여 경찰청에 입성한 커리어조는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초스피드로 출셋길을 달리는데, 바쁜 건 중앙에 있을 때뿐이고 지방에 내려가 있는 기간은 이른바 안식년쯤으로 여긴다. 책상 위에 손을 올려보았다. 경찰청 시절에 쓰던 책상보다 족히 두 배는 크다. 책상에는 이 현과 현경 그리고 이 시의 마스코트 캐릭터 인형들이 있다. 하나같이 귤을 모티프로 삼고 있고, ‘미캉 씨’, ‘미캉 순경’, ‘미캉 짱’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2구 보고!” 수사관 측 아시카가 경위가 목청을 높였다. 아시카가 경위는 작달막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도 그렇고, 어느 모로 보나 형사 아니면 형사에게 쫓기는 사람으로밖에 안 이는 풍모를 지니고 있다. 현경 본부에서 파견된 수사관인데, 수사를 지휘하는 니노미야 임수사관이 이미 침몰 직전인 터라 실질적으로 수사관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시카가 경위에게 지명받은 관할서 소속 수사관이 일어섰다. “2구, 목격자 없음. 족적 관련 정보 없음.” 그 말에 아시카가 경위가 버럭 성질을 냈다. “멍청아! 범인이 그런 꼴로 떡하니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니들은 대체 뭘 묻고 다니는 거야!” “몇 번을 다니든, 2구에 없다면 없는 거라고!” 관할서 수사관이 지지 않고 아시카가 경위를 노려보았다. 수면 부족과 혈압 상승으로 인해 둘 다 눈이 시뻘겋다. 오전에 모리 부서장에게 듣자 하니, 범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에는 꽤 뚜렷한 특징이 있었다. 그 신발 밑창의 방사형 무늬로 보아, 범인은 웨이더라는 것을 착용하고 있었음이 판명되었다. 웨이더란 장화와 작업복이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통 낚시꾼이나 어업 종사자들이 착용한다. 아마도 범인은 범행 시 몸에 피가 튈 것에 대비해 그런 옷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주택가를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남들 눈에 띄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목격자도 없을뿐더러 편의점 등지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았다. “없다면 없는 거라고? 그러고서 잘났다고 기어들어왔냐!? 무슨 자율 방범대원이야!?” “뭐야!?” 관할서 수사관이 아시카가 경위의 책상에 메모지를 내던졌다. 아시카가 경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가나가와 현경에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가나가와에서 일어난 사건의 수사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 출장 갔던 수사관들인 듯하다. “선물은?” 힐끗 쏘아보며 묻는 아시카가 경위에게 수사관은 대답 대신 히죽 웃어 보였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미소다. 나이에 안 어울리게 입술 사이로 비어져 나온 뾰족한 덧니가 무시무시하다. “선물 보따리는 여기. 그쪽 수사 자료, 눈에 띄는 것들은 모조리 복사해 왔슴다.” 수사관이 보스턴 가방에서 파일 철을 차례차례 꺼냈다. “그리고 복사할 수 없는 건, 빼왔죠.” 그 말에 나는 놀란 숨을 삼켰다. 뭐? 설마…… 설마, 그 오래된 파일 철은 수사 자료 원본? ‘빼왔다’니…… 그 말인 즉…… 당신들, 그걸 저쪽 허락 없이 가지고 왔다는……. “좋았어!” 아시카가 경위가 기쁨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모여 있던 수사관들이 우와아아! 하고 환성을 지르며 파일 더미에 달라붙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가 ‘좋았어!’라는 거야? 이 사람들은 들개가 아니야. 미친개야! “분담해서 정리해!” 아시카가 경위가 고함치듯 명령하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저는 모릅니다.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시선에 대답했다. 아시카가 경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히죽 웃었다. 현기증이 이는 것 같다. 그 ‘끄덕이면서 히죽’은 대관절 무슨 의미입니까? 설마 내가 ‘묵인’했다고 여기는 겁니까? 제발 무슨 말이든 해달라는 심정으로 좌우를 봤지만, 모리 부서장도 니노미야 주임수사관도 자리에 없다. 당황하여 회의실을 둘러봤더니, 있었다. 두 사람 다 파일 더미에서 빼낸 서류를 읽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그랬지. 이 사람들은 들개들의 우두머리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