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1151687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2-03-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찰나
정동진 등명해변
문화의거리
동천 아랫길
안풍동 수동마을 망월정
6월 21일
별량면 수덕리
죽도봉공원
광양 고등학교
10월 1일
순천만
금산마을 까막골
조제
와온
매곡아파트
처음과 끝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늘도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다. 흘러내린 눈물에 추억을 풀어 그림을 그린다. 눈물 한 덩이 손가락에 짙게 바르고 추억 속으로 푹 눌러 찍어, 투명한 도화지 위로 휘적거리듯 소녀를 그린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손가락의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투명한 도화지에서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손가락 한 마디 톡톡 털어낸다. 움직이는 손놀림에 닭살이 돋아난다. 이미 늦었다. 농도 조절에 실패한 수채화처럼 모든 것들이 흐릿하게 희미해져 간다.
- [동천 아랫길] 중에서
너와의 만남에서 오해를 하는 것도, 묵묵히 넘겨진 오해를 삼키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너는 언제나 나에게 받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했으면서도, 내가 너에게 주었던 커다란 은혜는 서둘러 망각했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 말하면서, 은혜는 굳이 돌려주지 않아도 괜찮은 빚이라 말했다.
너는 항상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늘 내 곁에 없었다. 나는 생일날 케이크에 꼽혀서 고개를 까딱거리던 인형과 함께 벤치에 홀로 앉아 거리에 찾아온 봄을 나만의 방식대로 즐겼다. 어떤 날은 길바닥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자색 꽃잎을 보며 이유 없는 눈물을 삼켰고, 어떤 날은 메리야스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노숙자처럼 벤치에 누워 봄기운에 몸을 말렸다. 또 어떤 날은 도로가 보이는 2층 창턱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 [6월 21일] 중에서
그저 오늘 밤에는 눈이 왔으면 좋겠다. 눈이 내리면, 와온의 절반이 눈에 덮인다면, 나는 염려스럽던 내 모든 근심과 걱정들을 데리고 부둣가를 산책할 것이다. 태우지 못한 편지와 버리지 못한 운동화, 현상되지 못한 사진과 가식의 마음을 데리고 떠날 것이다. 땅이 꺼질 듯 혼곤했던 심사와 눅진하게 들러붙어 있는 그리움들을 갈색 코트 속에 꽁꽁 싸매고서 길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는 방파제에 앉아 눈 내리는 세상에 스며들 것이다.
- [와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