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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2008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19-05-31
책 소개
목차
1부
1. 철창 사이로
2. 관계의 정의
3. 투기
4. 소문의 시작
5. 나쁜 짓
6. 본질
7. 신의 날
리카엘 외전
8. 낙원의 이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노란 동공이 맹수의 것처럼 가늘어졌다. 이윽고 카르텔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제정신인가?”
그는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굴었다. 당연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 틀림없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또박또박. 어린 짐승을 훈련이라도 하듯이.
“나는 너와 결혼할 거야.”
그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의 눈길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실험을 계속할 거야. 언젠가 네 정신은 바닥날 테고.”
그리곤 쾅! 하고 폭발하겠지. 앞으로 일 년 후에 벌어질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늦출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계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실험을 중단할 정도로 중요하고도 매력적인 관계가 말이다.
(중략)
“대신.”
역시나. 그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동시에 내 머리도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무엇을 요구하려는 걸까. 그에게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텐데. 그렇게 그가 내세울 조건을 예상하던 때였다.
“어?”
아주 잠시 정신을 팔았을 뿐이다. 그는 어느새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조각 같은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는 썩 부드러운 태도로 내 뺨을 감싸 쥐었다.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
어째서일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끼쳤다. 피부에 닿은 촉감이 이렇게도 뜨겁건만, 체온이라도 빼앗긴 것처럼 목덜미가 오싹했다.
“대답해야지, 착하게.”
“…….”
천적이 덮쳐 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초식동물이 이러할까. 나는 맹수의 눈동자에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잡아 놓은 먹이를 가늠하는 듯 느릿하게 볼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잡힌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 낸 일이었다. 그러니 주도권도 나에게 있었다. 진짜 여자 주인공이 나타날 때까지 말이다. 나는 풀어졌던 표정을 여유롭게 고쳤다.
“너야말로.”
내 말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웃거나 무표정인 것 외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것을 기회로 삼아 그를 밀어붙이며 사슬을 잡았다.
“그러니 대답해. 착하게 말이야.”
나는 그가 흘린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하.”
그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사슬을 잡아당긴 건 너무 갔나 싶었는데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플로리아, 겁 없는 꽃.”
그에게서 처음으로 불린 내 이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추었다.
“아!”
그가 사슬의 여유 부분을 잡아당겼다. 놓을 순간도 없이 나는 그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계약은 성립되었어.”
낮게 가라앉은 웃음소리. 그는 내 머리칼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뜨거운 열기가 몸속 깊숙이 퍼졌다가 느릿하게 사라졌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불씨에 스스로 뛰어든 불나방이 이러할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