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계절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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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외전 1
외전 2

“좀 이야기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 봤어.”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주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화려한 서울 시내가 발아래 아득하게 깔릴 정도로 높은 호텔 라운지. 연주로서는 이렇게 고급스럽고 값비싼 곳은 익숙지 않았지만, 사람 하나 없는 내부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신재현. 그가 오늘 하루 이곳을 통째로 빌렸다는 것도.
연주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재현은 그런 놀라움이 하찮기라도 하다는 듯 비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보통 이럴 때의 그는 거드름을 피우곤 했지만, 이번에는 순순히 그녀의 앞으로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판에서 조금 더 멀리 시선을 주자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두어 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보였다. 명목은 잘나신 둘째 도련님의 경호겠지만 사실 연주가 도망갈까 감시하고 겁을 주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주제 파악’을 도와주는 용도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 번만 편했다가는 날 네 방에 가둬 놓기라도 하겠다.”
“그것도 괜찮은데.”
일부러 쏘아 대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입 끝이 묘하게 올라갔다. 오히려 정말 좋은 생각이라는 듯 작위적이고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비릿함을 머금은 표정에 알 수 없는 흥분이 배어 들어갔다. 그 표정이 익숙하면서도, 익숙함 이면으로 느껴지는 묘한 위압감에 그녀가 입술을 물었다.
재현의 이유 있는 여유로움이, 타인을 내려다보는 특유의 오만함이 그녀를 종종 초라하게 만들었다.
“못 도망가게 전부 벗겨 놓고 가둬야겠네. 벗길 때마다 매번 부끄럽다고 버둥거리는 너랑 입씨름할 일도 없고, 보자마자 빨 수도 있고. 일석이조네.”
어때?
좋은 제안이라도 건네듯 넌지시 묻는 목소리에 왠지 아찔해졌다.
“나 더 할 말 없고, 그런 말 들을 이유 없어. 그러니까 그만 돌아갈게.”
연주가 불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무런 미련 없는 척 등을 돌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야, 한연주. 내가 만만해?”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그의 시선이 순식간에 꽂혀 들었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뚫어질 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칠게 울리는 목소리, 낮게 가라앉은 눈빛, 그런 것들이 그녀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전해 주었다.
연주는 애써 무시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겼다. 문 앞, 커다란 경호원이 자신을 가로막으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녀를 멈춰 세운 건 그의 한마디였다.
“내가 씹, 돈도 바치고, 동정도 바치고, 마음까지 갖다 바치니까 만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