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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580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22-01-26
책 소개
목차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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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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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저자소개
책속에서
깊은 밤의 바닷가 호텔.
객실에 도착하자마자, 정원이 발코니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더니만 방 안에 있는 승주에게 손짓을 했다.
“잠깐만. 사진 한 장만 찍을게. 이리 와 봐요.”
“사진을 왜?”
“영주가 사진 찍어서 보내래. 친구가 이상한 남자랑 같이 여행 갔는데 걱정된다고. 보험용으로 증거 사진 보내래.”
“이상한 남자?”
어쩐지 마음이 상해서 승주가 인상을 쓰자 정원이 깔깔 웃었다.
“그럼 이상한 남자 맞지. 공식적으로 나랑 연애하면서 다른 여자랑 선을 보질 않나. 그 선 자리에서 한 시간 만에 도망쳐서 갑자기 제주도로 날 데려오질 않나. 이거 봐요, 우리 모습. 이게 정상적인 커플 여행 맞아?”
아닌 게 아니라, 휴대 전화 카메라 안의 둘의 모습은 영 이상하긴 했다. 뭘로 보나 아귀가 맞지 않고 불균형이었다.
정원은 행사를 끝내고 사무실에서 바로 나왔던지라 아직도 올댓파티 로고가 박힌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다. 말쑥한 슈트 차림으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선 자리에 나갔다 온 승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같이 여행을 왔으니 커플 같긴 한데, 이 둘의 진짜 관계는 대체 무엇인가 고뇌하게 만들 만한 모습이긴 했다.
정원이 침대에 다가와 앉자 승주가 정원의 허벅지에 슬그머니 머리를 올렸다. 어린애가 나 좀 위로해 줘, 하고 엄마에게 칭얼대듯이 그녀의 향기 안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얼굴을 묻고 눈을 감고 있으려니,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복잡한 서울에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승주 인생 전반에 걸쳐 해 본 적 없는 일탈. 이런 식으로 사전 계획도 없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충동 그대로 훌쩍 떠나 버렸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거짓말 같았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가던 길만 가는 매일매일. 어느 날 갑자기 이유 모를 충동에 이끌려 차 타고 가던 중간에 낯선 동네에 내려 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이런대도 세상이 망하지 않는구나.’
승주에게 정말 놀라운 일은 이렇게 잠시의 일탈을 한다 해도 달라지는 게 딱히 없다는 사실. 지구가 자전을 멈춘 것도 아니고 세상이 뒤집어진 것도 아니었다.
‘난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왔던 걸까?’
목적도 이유도 없이, 엔지니어가 입력한 값 그대로, 정해진 레일만을 오가는 멍청한 기차 같았다. 자신의 지나간 인생이란.
머리칼에 뭔가 다정한 감촉이 느껴졌다. 정원이 승주의 머릿결을 손가락 끝으로 사르르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난 자기 머리 만지는 게 좋아.”
“좋아?”
“응.”
“왜?”
“자기 머리, 엄청 숱도 많고 부드럽고 그래. 남자가 머릿결까지 예쁘면 어떡해? 진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멋지면 어떡하잔 거야? 존재만으로 여자를 울리는 나쁜 남자. 마성의 이승주 씨 같으니라고.”
호들갑스럽게 칭송하는 정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승주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흘렀다.
종알종알 그사이 있었던 상황 변화들을 말하고 있는 정원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승주가 불쑥 말했다.
“내 쪽으로 이사 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