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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작가의 하녀 1

그 후작가의 하녀 1

문시티 (지은이)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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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작가의 하녀 1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그 후작가의 하녀 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5993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2-08-19

책 소개

향락과 퇴폐로 유명한 에르하르트 후작가에 하녀로 들어온 레나 크루거. 「맨 처음부터 에르하르트 후작 눈에 띄지는 마. 처음부터 거슬리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니까.」 가문을 잘 타고난 망나니 새끼라는 평을 가진 후작, 카론 에르하르트의 눈에 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목차

1. 그 하녀
2. 그 후작
3. 정원사
4. 시중 하녀
외전 1. 로제마리
5. 왕세자
6. 귀공녀
7. 귀공자 ⑴

저자소개

문시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 로맨스를 씁니다.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안전주의자.” 트위터 : https://twitter.com/mooncity_ 이메일 : mooncity01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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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전쟁 중에는 미친 광경을 하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인지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좋았다. 그러다 종전을 하니 아무리 자극적인 모습을 봐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세간에서 수군거리는 대로 광기를 앓는 집안 내력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의 머릿속이 오래전부터 고장이 나서 그런지도 몰랐다.
죽이고 싶을 만큼 자극적이면서도, 당장 죽이지는 못할 만큼 흥미로우면 좋을 텐데. 머리에 아무런 생각이 안 들 만큼.
그만한 가치를 지닌 인간에게는 기꺼이 목을 내줄 수 있었다. 술이나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낸 지는 오래되었으니까. 반복되는 잔상을 지울 수 있다면, 밤마다 그를 옭아매는 고통을 지울 수만 있다면, 인정할 수 있는 죽음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는 새로 들어온 장난감에게 제 나름의 응원을 보내며 방문을 열었다. 침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는 바로 들어서지 않고 문턱에 머물렀다.
침대 위에 하얀 슈미즈만 입은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저 여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레나 크루거였나.”
여자가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푸른 달빛이 여자의 얼굴에 절반 정도 걸쳐져 있었다.
무표정을 가장하지만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란.
자신이 여자의 이름을 기억했다는 의아함보다도, 이상할 정도로 공허한 감정이 위화감을 건드렸다. 그 흔하지 않은 감정의 원인을 저도 모르게 더듬어 보려던 찰나에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셨네요, 후작님.”
마치 저를 기다렸다는 투였다. 그러자 그의 입술이 곧장 호선을 그렸다.
“내 방이니까.”
카론은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했다. 곧게 마주한 눈동자가 달빛을 받으니 별처럼 반짝였다. 지난밤과 다른 반응이었다.
“왜, 적극적으로 기다릴 마음이 생겼나 보지?”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신지요.”
“맞춰 봐. 무슨 이유일지.”
카론이 눈을 접어 가며 웃어 보였다. 비웃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 여자가 선사해 줄 신선한 재미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역시도 진부한 것들 중 하나일까, 아니면 색다른 재미를 줄 만한 인간일까.
카론은 어제 여자가 ‘환상의 와인’을 마신 뒤에 보인 반응을 떠올렸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누군가의 형상을 보았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더듬는 손길이 애처로웠다.
와인으로 달아오른 얼굴이 붉었다. 평소에는 앙칼진 고양이 같다고 여겼던 푸른 눈매가 고이 휘어지도록 웃으니 못내 사랑스러웠다. 카론은 그녀가 애정 어린 것을 바라볼 때 뺨에 볼우물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고 싶었어, 많이.’
그건 대체 누구에게 했던 말이었을까. 누구한테 그런 얼굴로 웃어 주는 거지.
그답지 않은 호기심은 와락 품에 안기는 레나로 인해 멈추었다. 카론은 정말이지 처음으로, 정확하게는 그가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안긴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시침 하녀로 온 첩자 대부분이 가시를 품은 꽃이란 걸 알면서도.
개중에 후작의 소문을 듣고 접근해 오는 금발 여자가 없었을까. 죽은 루시아의 눈물점 위치까지 베껴 그린 그들은 자신이 약혼자를 잃은 상처를 품어 주겠다는 싸구려 공감 방식으로 그를 공략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저택에서 볼품없이 치워졌다.
카론은 저에게 접근해 오는 상대의 수법을 보길 좋아했기 때문에 시침 하녀를 꾸준히 뽑고 꾸준히 내쳐 왔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시침 하녀는 ‘시침’을 목적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과연 저를 보며 부들부들 떨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는 여자는 무슨 말을 해 줄까. 여기에 남게 될까, 그녀 또한 사라질까. 카론의 기대 속에서 마침내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후작님이 잃어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건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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