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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6310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23-02-21
책 소개
목차
8
9
10
11
12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언제나 그렇듯 봄은 또 찾아왔다. 다만 아직 끝을 내지 못한 겨울의 잔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집을 나서자마자 불어오는 찬 바람에 노곤했던 몸에 확 긴장감이 들었다. 늦겠다, 하진은 졸린 눈을 비비며 잰걸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하진아, 어서 와!”
활기찬 목소리는 괜히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지서는 봄 신상으로 나온 제철 과일 음료가 마음에 든다며 벌써 한 잔 제조해 마시고 있었다. 하진에게도 하나 만들어 주려 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오늘은 그래도 꽤 한가한 편이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여유로운 적은 없어서, 하진은 끝 쪽 테이블 빼고는 텅 빈 매장을 한 번 신기하게 둘러보았다. 지서와 나란히 앉아 있다가 괜히 허리가 뻐근한 느낌에 속으로 한석을 원망했다.
‘한 번만 한다고 해 놓고서는.’
물론 제가 먼저 괜찮다고 한 거니까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무언의 약속같이 평일에는 삽입 섹스를 자제하는 둘이었다. 한석의 나름의 배려였으나 요즘은 그게 잘 안 되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한석을 탓할 게 아니라 저를 탓해야 했다. 몇 달 전만 해도 정말 소위 손만 잡고 자는 게 당연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갑자기 어젯밤 한석과 했던 온갖 행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오늘도 끝나고 남친 만나?”
“아…… 네.”
물어보는 지서에 하진이 움찔했다. 한석과 몇 번 봐서 안면이 있는 지서는 한석을 ‘무서운데 잘생겼다’라고 평했다. 처음 봤을 때 했던 말은 ‘엄청 크다’였고. 하진과 동갑이라는 말에는 ‘나보다 어리다고?’ 그런 말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서가 다시 물었다.
“만나면 뭐 해?”
“…….”
별다를 거 없는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사실 만난다기보다는 같이 살고 있어서 모든 걸 함께 하니까. 지서는 하진이 집안 사정상 서울에서 내려와 친척 집에 얹혀살며 다시 수능 볼 준비를 한다,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남친을 어떻게 만났냐는 말에 무심코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더니, 그럼 남친도 서울에서 내려온 거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하진이 어쩌다 그렇게 됐다고 하자 더는 캐묻지 않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사실 좀 더 뭉뚱그려 얘기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쏟아지는 지서의 질문에 대답하고 집에 돌아가며 났다.
동창이라고 하지 말걸…….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았던 하진은 조금 고민하다 답했다.
“그냥, 밥 먹고 영화도 보고 가끔 바다도 보러 가고 그래요.”
무난한 대답에 지서가 흐음, 말꼬리를 늘였다.
“좋겠다. 그래도 매일 보지?”
“네. 언니는 안 그래요?”
“나야 뭐. 매일은 못 보지. 걔도 복학했고 사는 데도 좀 떨어져 있고……. 아. 만나려고 하면 다 만나긴 하니까 핑계긴 한데.”
“…….”
“내가 걜 더 좋아하는 거 알고 시작했는데 요즘은 좀 짜증 나. 내가 먼저 연락 안 하면 연락도 없다니까.”
지서가 가끔 애인 얘기를 하긴 해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 건 처음이었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하진이 눈만 깜빡이는데 지서가 멋쩍게 웃더니 화제를 돌렸다.
“참, 하진아. 언제 한번 우리 밖에서 같이 밥 먹자. 매번 말만 하고 못 먹었잖아.”
“아, 네.”
“언제가 좋아? 알바 끝나고가 편하긴 하지?”
아니면 주말? 금세 눈을 빛내는 지서 앞 하진은 잠시 고민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일단 제가 집을 비우면 한석이 혼자 밥을 먹을 텐데…….
애도 아니고 어떻냐 싶다가도 혼자 있을 저를 생각해 그 흔한 술 약속 하나 안 잡고 꼬박꼬박 집에 오는 한석을 알아 마음이 좀 그랬다. 그렇다고 못 간다고 하기에도 애매해 고민하는데 마침 손님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따 얘기하자, 지서가 조그맣게 덧붙이기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 * *
한가하던 오전과는 달리 점심을 먹고서는 꽤 바빴다.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던 하진이 잠깐 한숨 돌리던 찰나, 지서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아까부터 저 차 뭐야?”
“왜요?”
“아니, 계속 여기에 있네. 한 두 시간은 있었던 것 같은데.”
시동도 계속 켜져 있다며 직전 옆 건물에 배달을 다녀온 지서가 종알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커다란 통창 문 너머 길가에 계속 대 있는 외제 차가 눈에 띄기는 했다. 잠깐 뺏겼던 시선은 이내 다시 밀려드는 주문에 다시 거두어졌다. 별다를 것 없는 오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