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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63894810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어떤 양아치의 죽음
제2장 어떤 어머니의 죽음
제3장 어떤 의사의 죽음
종장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키리코 선생님, 설마 여기에요? 여기가 우리의 새 직장이에요?”
“맞아.”
진구지는 이끄는 대로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풍경한 방이다. 회색 벽에 회색 바닥에 회색 천장, 형광등 두 개. 가스버너와 싱크대. 끄트머리가 찌그러진 철제 책상이 하나, 녹슨 의자가 두 개. 책상에는 필통 하나와 현미경 하나가 놓여 있었다.
“너무 휑뎅그렁하지 않아요? 전자 차트는요? 컴퓨터는요? 복합기는 어디 있어요?”
키리코는 어리둥절했다.
“그런 것까지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사무는 다 종이로 볼 거야. 글자는 깨끗하게 써 줘.”
“처치용 기구며 멸균기도 없는 것 같은데요?”
“최소한의 도구는 그 필통 안에 들어 있어. 멸균은 버너와 압력솥으로 하자.”
“하다못해 방이 두 개는 더 있어야죠. 여기가 진료실이라고 치고, 대기실, 처치실…….”
“모조지를 걸어서 칸을 나누면 되잖아?”
머리가 어찔했다. 무사시노 시치주지 병원에서는 로봇이 약제를 운반했는데, 마치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했다. 역시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진구지의 속도 모르고 키리코는 태평하게 말했다.
“멋대로 굴다 병원에서 쫓겨난 몸이잖아.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지.”
“나, HIV 양성이래.”
오른손을 들어 올린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뭐?”
약 포장지를 종이봉투에 다시 넣고 가방에 넣으며 미호가 빠르게 말했다.
“틀림없이 슌타도 감염됐을 거야. 그러니까 병원에 가 보는 게 나아. 일단 그것만 알려 주려고. 숨기긴 싫으니까.”
슌타의 머릿속에서 온갖 말들이 어지럽게 오갔다.
“혹시……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완치되는 건가요?”
“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6개월 이상 검출한계 이하를 유지하면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더라도 감염 리스크는 제로라고 봅니다. 평범한 사람과 똑같다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거의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오래 살 수도 있고요. 수명에 큰 영향이 없다는 연구 데이터도 있거든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평범하게 아기도 낳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어요. 아, 그래도 모유는 좀 위험하니까 아기한테는 분유를 먹여야 하지만요.”
미호의 얼굴에 빛이 비쳤다. 굳어 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 정도가…… 다예요?”
“말씀 드렸잖아요? 무서운 병이 아니라고요.”
“놀랐어요. 끔찍한 이야기만 들었거든요. 미지의 병원체라 대처법도 없다든가, 원래는 원숭이한테서 감염된 병으로 인류에게는 치명적이라든가…….”
“멋대로 퍼져 나간 유언비어는 물론이고, 의학의 진보로 시대에 뒤떨어진 정보도 많거든요. 어중간한 지식이 가장 위험해요.
편견이나 차별로 이어지거든요. 실제로 게이들이 걸리는 병이라든가, 마약중독자들이 걸리는 병이라든가, 제대로 된 통계도 보지 않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아직 적지 않아요. 하지만 올바른 지식을 익히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면 싸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