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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64052547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24-06-07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과학
Nullius in verba
2. 아는 것이 힘이다: 교육
Knowledge is power
3. 펜은 칼보다 강하다: 문자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4.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법
Justice is blind
5. 민중에게 권력을: 민주주의
Power to the people
6. 시간은 돈이다: 시간
Time is money
7. 국가는 당신을 원한다: 국민
Your country needs you
8. 예술을 위한 예술: 예술
Art for art’s sake
9.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죽음
Death is the great equalizer
10. 우리는 한배를 타고 있다: 공동선
We’re all in this together
나오는 말
감사의 말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서양 문명이 의미를 띠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서양 문명과 연관 짓는 관행과 가치들(몇 가지만 언급해 보자면, 민주주의, 정의, 과학의 합리성 등이다)은 점점 커져가는 유럽 제국의 야망과 권력에 발맞춰 나타났다. 어디가, 또 무엇이 문명화되었는가를 결정한 것은 바로 식민지 통치자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신들만의 프레임 속에서 문명을 규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더 강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나머지 지역보다 더욱 발전한 곳들이라 주장한다. (…) 서양 문명이란 여러모로 보건대(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적어도 열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현실을 누르고 브랜딩이 성공한 사례라는 얘기에 가깝다. ‘서양’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양 문명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화라는 사명’은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들의 비전이자 변명이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단순히 자기들 것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문명이라는 틀을 이용해 완전히 재구성했다. (…) 나는 단순히 이런 관념 뒤에 자리 잡은 거짓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기보다는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관념들이 사실이라고 제풀에 속아 넘어갔는가를 이해해보려 한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말들이 사실은 어떤 의미이고, 또 그런 용어 속에 함축되어 있는 주장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들어가는 말’
프레이저의 저서는 문화적 발전, 진보, 문명에 관한 기존의 사상을 확고하게 굳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사상의 초기 버전은 인종이라는 과학적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분류학과 지구상의 생명체를 구분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외양의 관찰은 지능이나 행동과 같은 보다 추상적인 자질들과 계속해서 밀접하게 연관이 되었다. 19세기 가장 중요한 영국의 민속학자였던 제임스 카울스 프리처드는 유럽인의 하얀 피부, 그리고 더 훌륭한 지능은 그보다 어두운 피부를 지닌 사람들이 아직 겪지 못한 문명화 과정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믿었다. 앙리 드 생-시몽은 문명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관해 이보다 덜 긍정적인 견해를 품고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 백인과 같이 높은 지능에 이를 수는 없다고 말하며 프랑스가 노예 제도를 다시금 제도화한 행동을 정당화했다. 인류학자 프레더릭 파라도 여기에 동조했다. 파라는 1866년, ‘인종의 적(Aptitude of Races)’이라는 강의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야만인 집단, 반쯤 문명화된 집단, 문명화된 집단이었다. 그는 자신이 야만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만회할 수도 없고”, 손을 쓸 도리가 없이, 마치 “살아 있는 화석”처럼 시간 속에 얼어붙은 채로 있다고 설명했다. (…)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프레임이 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 인류는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토론 질문을 계속 던질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청하는 문명적인 사람들은 설 자리가 생겼다. (…) 과학, 인종, 문명이 강력하게 결합한 결과, 비서구인들은 단순히 이해하기 힘든,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읽혔을’ 뿐인지도 모르는 때조차도, 과학적으로 봤을 때 뼛속부터 글러먹었다는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인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 특정한 방식으로만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 그 자체의 방법을 통해서만 말이다. 비서구 지역 출신인 사람들, 특히 인종적으로 백인으로 취급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인간이라고 얘기한다면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리 없다. 그 사람들을 믿을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인종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그 연장선상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일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종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끔 만들 것이며, 과학이 이들의 알리바이다. 과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게 해준다.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라는 말은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더 광범위한 역사적 맥락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면 과학의 기반, 특히 인종 과학의 기반이 더욱 깊은 목적에 복무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백인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화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강력해진다는 뜻이 된다.
1장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영국에서 ‘고전’이 부유한 젊은이들이 고대 작가들을 연구한다는 의미로 자리를 잡은 것은 1684년 무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칭 “해턴 가든에서 교육을 받은 몇몇 젊은이들”이라는 집단이 로마의 건국 역사를 쓴 4세기의 공직자 에우트로피오의 작품을 자체적으로 번역해서 출판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1666년 런던 대화재의 잿더미 속에서 런던이 마치 제국의 정신을 품은 불사조처럼 부상하고 있던 때였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의 표현처럼,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해턴 가든의 선생님이었던 루이스 메이드웰은 이 책의 서문에서 영국인들이 교육에 조금 더 진지해진다면, “영국의 잠자고 있는 재능이 스스로 눈을 뜰 것”이라고 썼다. 교육은 단순히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교육은 대영제국의 지평을 넓히고 권력을 확고히 다지는 데에도 핵심 역할을 할 도구였다. (…)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무렵, 몇몇 문서가 연달아 유출되며 영국 교육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저열한 모방품을 폭로했다. 이 가운데 하나는 ‘헤링게이 종합 중등 학교’(1969년)라는 보고서로, 저자의 이름을 따서 일반적으로는 덜튼 보고서라고 부른다. 이 보고서는 북부 런던의 흑인 지역 공동체에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서인도 제도 출신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는 교육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백인 영국 학생들보다 IQ가 훨씬 낮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후속 보고서인 ‘통합 교육 관련 교육 위원회 보고서’는 헤링게이 의회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에 따라 자치구 내의 학교들을 구분할 것을 권고했다. (…)
이 시점은 프랜시스 골턴이 세상을 뜬 지 48년 뒤이긴 하지만, 이런 조치를 그가 찬성했을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우생학적 원칙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국가라는 골턴의 비전에서는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자손을 낳는 것은 지원하고 장려해야 하는 반면, 지능이 제일 떨어지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찰스 스피어만이나 시릴 버트 같은 심리학자들은 지능을 표준화한다는 생각을 품고, 표준화된 지능 시험을 설계하고 개발하면서 골턴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었다. 현재 우리가 지능의 유전학이라고 생각하는, 지능이 유전되는 것인가에 관한 버트의 연구는 11+ 시험을 도입시켜 영국의 정규 교육 시스템의 근본을 형성했다. 11+는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이었다. 높은 점수를 받아 지능이 높다고 여겨지면, 명문 그래머 스쿨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문법(grammar)이란 당연히 라틴어였으며, 그래머 스쿨에서 교육을 받는 일은 그 뒤로도 학업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상당히 호언장담할 수 있는 길이었다.
2장 ‘아는 것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