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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4353293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19-05-17
책 소개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모두들 죽음을 흔들어 깨워 보고 싶은 충동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죽은 자들이 남겼을 마지막 외마디 비명을 산자들의 애곡이 결코 깨우질 못 했다. 산자들의 날 선 기도와 죽어가는 자들의 목숨을 건 사투도 여지없이 빗나갔음이 드러났다. 전능은 무능으로, 희망은 절망으로, 기다림은 탄식으로, 오직 죽음만 구출됐을 뿐이다. 이제 산자들이 죽은 자들을 거두고 죽은 자들을 아프게 기억할 뿐이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긴다는 사랑의 무능을 탓하며.
일렬로 누워 있는 홍 박사와 청년들의 시신 위로 일찍 찾아온 가을 철새 몇 마리가 슬픈 듯 낮게 선회했고 강변 억새들마저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몸을 낮추어 애도를 하는 듯했다.
밤새 눈이 내렸다. 폭설이었다. 하늘도 어이없이 무너질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한겨울의 강원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집과 집 사이, 가득 채우고도 넘칠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미움은 너무도 아득하여서 누군가가 한쪽이 먼저 무너져야만 메워지는 게 사람의 일인 것만 같았다. 세상 틈이란 틈을 모두 메우고도 넘칠 만큼 풍성한 눈이 내렸지만, 왠지 모르게 최 신부의 무너져 내린 마음 한 구석은 채워지질 않았다. 시호를 사랑했는데, 뜨겁게 사랑했는데,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다. 큰 죄를 지었다는 자괴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춥고 긴 겨울밤이었지만 최 신부는 생애 가장 짧은 밤을 보냈다. 둘이 아닌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