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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4380008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9-04-10
책 소개
목차
글을 시작하며・004
1부 왜 바이칼 호수의 정령은 나에게 죽음을 맛보여주려고 했을까?
자다가 불이 난 통나무 호텔・014
죽지 않고 살았구나・020
럭키 가이! 하늘이 도왔습니다・035
비워라. 비우니 채워진다・041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044
나에겐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다・046
러시아 천사의 가지 말라는 눈빛・050
봄을 실어오는 새의 노래・054
일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삼십 분의 병문안・058
울지 않는 러시아 남자, 계속 우는 한국 남자・060
내 심장은 부끄럽지 않습니다・062
입만 멀쩡한 뼈 부러진 환자들・068
안경 없어도 세상이 잘 보여요・071
하늘로 불타올라 가버린 칠백칠십만 원・074
벗고 날아오르는 거야・084
2부 지루한 멈춤의 여행이 시작되다
드디어 가족의 품으로・094
낮잠 자고 있는 철없는 아들・097
너무 친절했던 러시아 의사・101
요양병원에서의 생활・105
오 킬로미터에 칠만오천 원 앰뷸런스・114
오두막 여행을 시작하다・119
멈춤 여행의 첫걸음을 떼다・123
하늘로 치솟는 부끄러움・130
물고기 대신 커튼을 낚시하다・133
맛없는 병원 밥은 병원의 경영철학・141
수증기에 감춰진 눈물의 첫 샤워・145
아픔을 몰아내는 바쁨・151
연못에 웃음의 물결을 주는 조약돌・160
흔들리는 버스보다 편안한 요양병원 침대・165
3부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희망을 말하며, 아픈 오늘 하루를 이기다・174
병원에서 생긴 ‘소리’라는 친구・179
흉터는 남자를 장식해, 흉터를 지우지 마・183
37.5도와 36.5도, 1도의 차이・185
봄소풍 나온 양념 닭다리・187
요양병원에 또 불이 나다・191
배 속의 거지가 된 오억 마리 유산균・196
사탕 한 알, 몸 안으로 떠나는 여행・200
벌떡 선 경추에 금이 간 오진 환자, 나도?・203
4부 아픈 오늘 하루를 잘 이기고 건강한 날이 가까워지다
가장 느린 운동이 가장 빠른 재활 운동이 되다・214
칭찬에 빨대 꽂기・220
자, 출석하러 갑시다・224
가까이 있는 선경험자가 진정한 스승이다・226
희망의 연고, 부부의 애끓는 사랑・229
휠체어로 떠난 편의점 관광・233
얼리어댑터 환자・237
병원비 15퍼센트를 할인 받은 제안서・243
신생아가 된 30대 노총각・246
첫사랑은 오지 않는 병문안・249
앉아 있던 환자를 걷게 만든 명의・253
퇴원 다음 날의 헬스장 결제・258
트라우마 극복 1・264
트라우마 극복 2・267
고수를 만나야 하는 이유・270
상담?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274
태어났으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라 그래・278
글을 마치며・28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생존했다는 건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루, 이틀, 삼 일. 누워 있는 자리에서 일 센티미터도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마비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으니 점점 근심의 무게가 쌓여 간다. 걱정이 스트레스가 되어서 소화도 안 되나 보다. 강한진통제 효과로 큰 통증은 없다. 하지만 부러진 꼬리뼈에 짓눌려져 배출되지 않는, 대장에 쌓여 가는 대변의 무게감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 일째 되는 날, 더 이상 대변을 보지 않으면 위험하니까 항문에 관을 끼워서 관장할 거라고 한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나는 “나 관장 안 해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전신마취라도 시켜주세요”라고 말도 안 되는 떼를 썼다.
사고 후 삼 주 만에 처음으로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샤워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 그동안 딱딱한 철판 위에서 천천히 좌우로 몸을 굴려 커다란 병원복 상의 속 팔을 빼본다. 아버지가 그사이에 오셔서는 샤워장 문을 닫고 혼자 벗을 수 없는 바지를 빼내 주신다. 아버지와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입을 떼면 뜨거운 수증기가 점점 차오르듯 눈물방울이 곧 흘러내리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아버지가 샤워기로 적셔주었다. 온몸에 비누칠을 해주었다. 타월로 때를 벗겨주었다. 물로 헹구어주었다. 장의사가 시체를 닦듯이.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가만히 온몸을 아버지께 맡기고 있어야만 된다. 침대에만 누워 있었기에 감을 잃고 잘 몰랐던 거였다.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아주 크게 다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말이다. (……) 솜이불 때도 느껴보지 못한, 시리도록 저릿한 통증이 뜨거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보다 묵직하게 닿아왔다. 엄살 없이 잘 지내왔는데 더욱 좋은 것을 찾으려고 시작한 샤워다. 샤워가 전해준 상쾌함과 더불어 내가 진짜 많이 다쳤다는 서글픔이 샤워 방울처럼 눈가에 흘러내렸다. 샤워기를 얼굴에 대고 아버지께 향하는 죄송함을 감춰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멈춤은 아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짧을 줄 알았던 육 개월 후면 서는 연습도 할 수 있다. 다시 또 육 개월을 재활하면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절망이 아닌 복됨이 가슴에 사무친다. 내 몸을 가눌 수 있다는 행복. 그 작은 행복이 참으로 감사한 삶이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음별이 되어 창밖의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시베리아의 새벽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