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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5120061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0-05-28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5
제1장 말하고 싶은 눈
산마을의 저녁연기 14
말하고 싶은 눈 19
그대 뒷모습 24
낙엽주 특강 27
등나무집 형님 31
포옹 36
타박네로 간다 41
안개의 행보(行步) 45
잉태의 바람 49
바람이 켜는 노래 53
설원에 서면 57
냉장고도 노크하고 여니? 60
제2장 사과꽃 필 때
해토머리 66
이슬의 집 71
쑥 뜯는 날의 행복 75
꽃차를 우리며 79
빛나지 않는 빛 83
이쁘지도 않은 것이 88
세탁 삼매(三昧) 91
혼(魂)으로 쓰는 글 96
사과꽃 필 때 101
고독한 날갯짓 105
해체의 현장에서 110
유월 114
제3장 열쇠 없는 집
루노 이야기 120
열쇠 없는 집 124
유리방의 고독 129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132
홀로, 함께 137
가슴으로 오는 소리 141
외롭게 한 죄 146
다시 고요 150
겨울 포장마차 155
남자의 성(城) 159
노모의 독서법 163
기차 칸을 세며 166
같은 온도 170
뿌리의 봄 175
달빛과 목신(木神) 이야기 178
제4장 겨울 섬진강
고도(孤島)에서 184
마로니에 189
오월여행 192
탁발 197
야스나야 폴랴나의 풀무덤 201
산다무키 205
겨울 섬진강 209
바라보기 213
제5장 손이 전하는 말
꽃잠 218
나의 서재 222
손 226
손이 전하는 말 230
불빛 234
나무가슴 238
숨은 사랑 244
가시 없는 선인장 249
밟아라 252
자동열쇠 이야기 255
스스로 내는 벌금 258
외딴곳 261
엄마의 추석 264
묵시의 새벽 267
당신의 봄 271
미루지 않는 사랑 275
저자소개
책속에서
「빛나지 않는 빛」 중에서
거실 벽에 액자가 걸려 있다.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작품에 어떤 예술 작품 못지않은 의미를 둔다.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액자에 있는 글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가 있다. 아마도 글의 뜻이 매우 깊고 오묘해서 쉽게 이해하지를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액자에는 하얀 여백에 眞光不煇(진광불휘)라는 글씨가 두 줄 종으로 쓰여 있고 줄을 바꿔 賀 上梓(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상재를 축하하며)라는 글씨가 역시 두 줄로 있다. 다음은 여백을 넉넉히 두고 대나무를 그렸고, 아래는 1986년 처서절이라 쓰여 있다. 처음과 끝 부분에 낙관을 찍었다.
15년 전의 이야기다. 첫 수필집을 출간하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았다. 특히 출판을 맡아주신 출판사 사장님의 뜨거운 관심과 격려는 수필가로 살아가는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철없는 아이 모양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아온 이야기를 썼다. 썼다기보다는 가슴에 차고 넘쳐서 어쩔 줄 모르다가 수필이라는 분화구를 만나 용암처럼 뿜어올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쑥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노래를 잘하나, 솜씨가 좋은가, 맘씨 맵시가 좋아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는가, 건강도 좋지 않아 주눅이 들어 살아왔다. 더구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올라간 처지라 나의 촌스러움은 수필가로서 어색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끔씩 세미나나 모임에 참석해보면 수필문단의 여러 선생님을 뵙는다는 기쁨 뒤에는 자신이 위축되어 후회가 따랐다. 그런 나에게 고졸한 그림과 글씨로 축하를 보내주신 분이 계시니 원로이신 Y선생이시다. 그 황감한 선물을 받고 한동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한 기쁨을 혼자 누렸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올 때는 보물상자를 안고 오는 마음으로 왔다. 아파트 벽에 액자를 걸었다.
어느 날이었다. 도장을 받아야 할 우편물을 가지고 온 우편집배원이 현관에 선 채로 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였다. 영문을 몰라서 섰으려니 “진, 광, 불, 휘, 차암 좋네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우체부가 돌아가고 나서 그 뜻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뜻을 풀이하면 ‘참된 빛은 찬란하지 않다’로 되겠는데 빛이 빛나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거나 다름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슨 뜻으로 나에게 이런 글귀를 손수 써주셨을까. 그 뒤로는 액자 앞에 서면 그냥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고 기뻤다 부끄러웠다 뒤범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