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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형언하는 몸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324539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5-09-25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4324539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5-09-25
책 소개
읽는 몸, 듣는 몸, 보는 몸, 쓰는 몸으로 나누어 네 가지 감각이 예술 작품과 만나 수행하는 새로운 실천 가능성을 밀도 높은 언어로 모색한다. 예술은 어떤 대상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사유할 수 있도록 풍족한 질문들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몸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파편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몸의 감각으로
삶과 예술을 다시 쓰는 교차비평 에세이
아침달에서 새로운 형태로 선보이는 교차비평 에세이 『형언하는 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같은 대학원에서 만나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세 저자가 공적이자 사적 공간인 ‘몸’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각자 떠올렸던 생각과 질문을 쓰면서 삶과 예술에 어떻게 연결되고 다른 의미를 구축하는지 비평적 언어로 탐구한 에세이다. 모든 생물에게 부여된 몸이라는 정체성은 대상과 접촉하거나 분리되면서 매번 발생하는 즉각적인 감각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산한다. 어떠한 상태에서든 몸은 세계와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고 자기 정체성을 설명할 의미를 얻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몸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변화를 느끼려면 우선 몸에 대해 말할 언어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 책은 몸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실천을 통해 삶과 예술을 다시 쓰고자 하는 연유에서 쓰였다. 최근 자기 고유한 체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우리 자신의 몸을 다층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언어들을 체득하기 위함일 것이다.
『형언하는 몸』은 읽는 몸, 듣는 몸, 보는 몸, 쓰는 몸이라는 네 가지 수행적 주체를 제시한다. 몸이 나열된 순서는 이 책의 성격을 보여주기에 제법 의미심장한 구조를 띤다. 그러니까 우선 자기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타인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고, 평소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말들을 잘 들어야 하고, 나와 다른 대상을 유심히 바라봐야만, 비로소 자신의 일부를 겨우 쓸 수 있다. 이처럼 읽기, 듣기, 보기, 쓰기는 몸을 사유하는 데 결정적인 실천 방식이 된다. 각자 쓴 글은 행위와 실천에 따라 덩어리처럼 뭉쳐져 있다. 이는 다양한 예술과 타자와 접촉하면서 이합집산적으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몸의 의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교차성은 단순하게 세 저자가 각자의 글을 정한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전장에서”(「몸이라는 전장에서 / 다원의 몸으로부터」) 우리 삶의 의미가 얼마든지 유동할 수 있으며 몸의 감각이 얽히는 것, 즉 듣는 몸이 보는 몸이 될 수 있고 읽는 몸이 쓰는 몸이 될 수 있는 등 서로의 정체를 간섭할 수 있다는 근원적 성질을 보여준다.
읽기, 듣기, 보기, 쓰기가 말하는 몸의 의미
공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예술
이 책은 몸에 관한 담론에 이해를 돕기 위해 「미학이라는 불가능한 시도」라는 글로 먼저 안내한다. 여기서는 크게 현상학, 몸미학, 정동 이론, 미학 등 네 가지 이론을 두고 이 책이 어떠한 사유를 바탕에 두고 몸을 이야기할지 그 토대를 제공한다. 특히 몸미학은 몸이라는 개념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유기체라는 점을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끔 마련해주고, 정동 이론은 “매번 다른 신체를 출현시킬 수 있는 역능”을 실천하도록 한다.
이 책은 예술 장르 중 음악과 영화를 중점적으로 비평하면서 몸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에는 비단 김호경이 음악을 공부했고, 이하림과 한송희가 시각문화를 공부했다는 점만이 해당하지는 않는다. 음악이 만드는 가장 깊숙한 청각적 체험을 통해 ‘듣기’는 새로운 수행 작업을 터득한다. 마치 존 케이지의 침묵이나 아르보 패르트의 틴티나불리처럼, 이제 우리의 청각은 원래 듣던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자리까지도 읽을 수 있는 성부 중 하나가 된다. 영화는 우리 삶의 굴곡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로 몸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가령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이 보여주는 시 쓰는 삶이 어떤 동력의 리듬을 운반하는지 ‘읽을’ 수 있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와 유나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들리지 않는 말을 ‘들을’ 수 있고, 〈피닉스〉에서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얼굴들이 모여 단 하나의 얼굴만을 ‘볼’ 수 있으며, 〈거리측정〉에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 가로막힌 장벽의 존재가 거리감을 유발하여 끝내 우리는 글을 ‘쓴’다. 음악과 영화 이외에도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문학 작품 등을 활용하여 몸이 수행하는 감각의 층위를 펼친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바뀌어버린 일상 리듬이나 의자를 벗어나 산책하고 다시 책상 앞에 돌아오면서 느끼는 시위 현장과 연구 현장의 차이 같은 일상이 몸의 사유와 겹치면서 이야기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계엄까지 격변하고 반복되는 시대의 흐름은 외부에 시시때때로 영향받는 몸과 자연스럽게 유비된다.
부록 「인덱스 단어」는 책을 읽으면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다. 세 저자가 자신이 쓴 글이 아닌 다른 글에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부분에 핵심적인 사유를 압축하는 단어와 짧은 글을 보탰다. 글 순서대로 읽어나가도 좋고 따로 떼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모인 인덱스 단어들은 서로 다른 글들을 간섭하면서 교차비평 에세이의 성격을 강화해준다. 책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편집자의 말 「공터에 서 있는 여정」은 책을 덮은 후 우리의 몸이 당도할 곳이 공터였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여기서 말하는 공터는 무의미해져버린 폐허가 아니라 텅 빈 기표로서의 몸, 무한한 가능성으로 연결되고 결합될 수 있는 영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세상이 정한 규칙과 해석에 짓눌려 무엇 하나 제대로 차마 ‘형언하지 못하는 몸’이었던 우리는 이제 ‘형언하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 이전과는 다른 시선과 사유를 갖추고 놓친 삶의 감각을 용기 내어 쓴다. 『형언하는 몸』은 나 자신을 말하기 어려워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삶과 예술을 다시 쓰는 교차비평 에세이
아침달에서 새로운 형태로 선보이는 교차비평 에세이 『형언하는 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같은 대학원에서 만나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온 세 저자가 공적이자 사적 공간인 ‘몸’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각자 떠올렸던 생각과 질문을 쓰면서 삶과 예술에 어떻게 연결되고 다른 의미를 구축하는지 비평적 언어로 탐구한 에세이다. 모든 생물에게 부여된 몸이라는 정체성은 대상과 접촉하거나 분리되면서 매번 발생하는 즉각적인 감각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산한다. 어떠한 상태에서든 몸은 세계와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고 자기 정체성을 설명할 의미를 얻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몸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변화를 느끼려면 우선 몸에 대해 말할 언어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 책은 몸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실천을 통해 삶과 예술을 다시 쓰고자 하는 연유에서 쓰였다. 최근 자기 고유한 체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우리 자신의 몸을 다층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언어들을 체득하기 위함일 것이다.
『형언하는 몸』은 읽는 몸, 듣는 몸, 보는 몸, 쓰는 몸이라는 네 가지 수행적 주체를 제시한다. 몸이 나열된 순서는 이 책의 성격을 보여주기에 제법 의미심장한 구조를 띤다. 그러니까 우선 자기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타인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고, 평소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말들을 잘 들어야 하고, 나와 다른 대상을 유심히 바라봐야만, 비로소 자신의 일부를 겨우 쓸 수 있다. 이처럼 읽기, 듣기, 보기, 쓰기는 몸을 사유하는 데 결정적인 실천 방식이 된다. 각자 쓴 글은 행위와 실천에 따라 덩어리처럼 뭉쳐져 있다. 이는 다양한 예술과 타자와 접촉하면서 이합집산적으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몸의 의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교차성은 단순하게 세 저자가 각자의 글을 정한 순서에 따라 배치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전장에서”(「몸이라는 전장에서 / 다원의 몸으로부터」) 우리 삶의 의미가 얼마든지 유동할 수 있으며 몸의 감각이 얽히는 것, 즉 듣는 몸이 보는 몸이 될 수 있고 읽는 몸이 쓰는 몸이 될 수 있는 등 서로의 정체를 간섭할 수 있다는 근원적 성질을 보여준다.
읽기, 듣기, 보기, 쓰기가 말하는 몸의 의미
공터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예술
이 책은 몸에 관한 담론에 이해를 돕기 위해 「미학이라는 불가능한 시도」라는 글로 먼저 안내한다. 여기서는 크게 현상학, 몸미학, 정동 이론, 미학 등 네 가지 이론을 두고 이 책이 어떠한 사유를 바탕에 두고 몸을 이야기할지 그 토대를 제공한다. 특히 몸미학은 몸이라는 개념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유기체라는 점을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끔 마련해주고, 정동 이론은 “매번 다른 신체를 출현시킬 수 있는 역능”을 실천하도록 한다.
이 책은 예술 장르 중 음악과 영화를 중점적으로 비평하면서 몸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에는 비단 김호경이 음악을 공부했고, 이하림과 한송희가 시각문화를 공부했다는 점만이 해당하지는 않는다. 음악이 만드는 가장 깊숙한 청각적 체험을 통해 ‘듣기’는 새로운 수행 작업을 터득한다. 마치 존 케이지의 침묵이나 아르보 패르트의 틴티나불리처럼, 이제 우리의 청각은 원래 듣던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자리까지도 읽을 수 있는 성부 중 하나가 된다. 영화는 우리 삶의 굴곡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로 몸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가령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이 보여주는 시 쓰는 삶이 어떤 동력의 리듬을 운반하는지 ‘읽을’ 수 있고,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와 유나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들리지 않는 말을 ‘들을’ 수 있고, 〈피닉스〉에서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얼굴들이 모여 단 하나의 얼굴만을 ‘볼’ 수 있으며, 〈거리측정〉에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 가로막힌 장벽의 존재가 거리감을 유발하여 끝내 우리는 글을 ‘쓴’다. 음악과 영화 이외에도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문학 작품 등을 활용하여 몸이 수행하는 감각의 층위를 펼친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바뀌어버린 일상 리듬이나 의자를 벗어나 산책하고 다시 책상 앞에 돌아오면서 느끼는 시위 현장과 연구 현장의 차이 같은 일상이 몸의 사유와 겹치면서 이야기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계엄까지 격변하고 반복되는 시대의 흐름은 외부에 시시때때로 영향받는 몸과 자연스럽게 유비된다.
부록 「인덱스 단어」는 책을 읽으면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다. 세 저자가 자신이 쓴 글이 아닌 다른 글에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부분에 핵심적인 사유를 압축하는 단어와 짧은 글을 보탰다. 글 순서대로 읽어나가도 좋고 따로 떼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모인 인덱스 단어들은 서로 다른 글들을 간섭하면서 교차비평 에세이의 성격을 강화해준다. 책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편집자의 말 「공터에 서 있는 여정」은 책을 덮은 후 우리의 몸이 당도할 곳이 공터였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여기서 말하는 공터는 무의미해져버린 폐허가 아니라 텅 빈 기표로서의 몸, 무한한 가능성으로 연결되고 결합될 수 있는 영토 그 자체를 의미한다. 세상이 정한 규칙과 해석에 짓눌려 무엇 하나 제대로 차마 ‘형언하지 못하는 몸’이었던 우리는 이제 ‘형언하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 이전과는 다른 시선과 사유를 갖추고 놓친 삶의 감각을 용기 내어 쓴다. 『형언하는 몸』은 나 자신을 말하기 어려워했던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이 책을 읽기 전에]
몸이라는 전장에서 / 다원의 몸으로부터
[몸에 관한 이론적 이해]
미학이라는 불가능한 시도
리듬 인지
어쩌면 영원할 미룸
어떤 죽음과 탄생
음악 아닌/없는 음악 듣기
말 바깥에서
침묵 안팎의 집
도망으로부터
맨얼굴 앞에서
조용한 희망들
현기증의 편지
[부록]
인덱스 단어
[편집자의 말]
공터에 서 있는 여정
참고문헌
책속에서
때로는 보거나 들음으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특히 읽는 행위가 삶의 리듬을 시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반복되는 장면들로부터 기쁨의 재료가 되는 요소들을 찾는다. 이를테면 아이와 개의 몸짓들, 나의 몸과 관계하는 즐거운 순간들로 활기를 얻는다.
―「리듬 인지」 중에서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쓰고 읽는다고 할지라도 그 글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삶이 지닌 시간성을 소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글을 넘어 나아간다. 글보다 더 길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서. 글보다 오래 지속된다. 길을 걷는다.
―「어쩌면 영원할 미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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