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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5120320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1-07-22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 탄천을 산책하며 떠오른 생각들 · 4
제1장 오후 세 시
오후 세 시 · 13
도서관에 간다 · 17
우리는 비굴해졌다 · 22
모든 아름다움은 슬픔에 잇닿아 있다 · 27
카잔차키스와 조르바 · 31
내 어린 시절의 좁은 문 · 35
봄비와 친구와 음악과 · 39
꿈속의 여행길 · 43
봄날 황혼의 유쾌한 실수 · 47
산책로의 네 식구 · 52
제2장 화살촉
화살촉 · 59
어머니, 이제 편안한가요 · 63
한 마리 나비 되어 · 68
인생 ‘폼생폼사’라지만 · 72
채옥이가 있는 풍경 · 76
하모니카 소리를 따라가면 · 80
통영, 예술가의 초상 · 84
그리스, 젊은날의 꿈 · 88
은호산의 사랑 이야기 · 93
사막에서 · 98
제3장 나는 아마추어다
나는 아마추어다 · 105
나의 성장기 · 109
그 친구 찔레꽃이 되었을까 · 114
꿈처럼 지나가기를 · 119
음악은 요술피리처럼 · 123
그에게 반했다 · 128
별을 헤던 사람 · 132
워즈워스와 피아노 치는 할아버지 · 135
폭풍의 언덕을 가다 · 138
먹는다는 것 · 142
제4장 나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 149
알 수 없는 그리움 · 153
음악, 그 소중한 유산 · 156
아이들의 꿈은 높이 날아오르고 · 161
탄천의 느티나무 · 165
그 남자 · 170
꽃잎은 시들어도 · 174
에스프레소와 크루즈 · 177
도스토예프스키와 파스테르나크 · 181
황금지붕 성당과 바실리 성당 · 185
제5장 가을, 이 충만한 계절은
가을, 이 충만한 계절은 · 191
풍경으로 남은 사람 · 195
마지막 머물 집은 어디일까 · 199
집 팔며 그 남자와 · 204
어디를 향해 걷고 있었을까 · 209
탄천에서 세월을 낚는다 · 216
베이징 이야기 · 220
베이징 그림 여행 · 225
송원이 · 229
엄마의 가장 소중한 선물 · 233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꼭 기량의 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그 행위를 직업으로 하느냐, 놀이로서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만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프로들은 아직도 우리 현실에선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에 목숨을 건다.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가슴 설레는 작업이고 내적 충족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을 무엇보다 사랑한다.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마음에 촉촉한 감성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 그림을 그리며 선과 색에 빠져 떠나온 풍경을 생각하고, 글을 쓰며 지나간 추억을 불러들인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 끝없이 솟아나는 감성의 파동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음악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물인 듯하다.
작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자신의 책에서 말한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다고. “마약을 하듯이 책을 읽는 셈이지요.” 나도 그녀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미친 듯 몰두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몰두 속에 혼자서도 충만할 수 있기에.
헤르만 헤세는 글을 업으로 삼았지만 음악과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드물게 장수하며, 늙어가는 마음의 변화를 섬세한 글로 남겼다. 어려운 시대적 환경 속에서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지만 그를 구원한 것은 예술이 아니었을까.
― 「나는 아마추어다」 중에서
친구들이 사랑해주었듯, 나를 모르는 누군가도 내 책을 즐겨 읽었으면 좋겠다. 읽고 문득 그곳으로 여행하고픈 충동을 느낀다면 좋겠다. 또 내 그림을 보며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더 바라기는, 책에 담긴 내 영혼의 고백을 들으며, 그의 인생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래, 내가 쓴 책이 어느 집 책꽂이에 셰익스피어나 사르트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내가 기증한 책이 도서관의 고풍스런 서가에서 독자를 기다리며 점잖게 침묵하고 있다는 생각도 즐겁지 않은가.
사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글을 써보았을까.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삶의 문학적 성찰들이니 나의 이웃과 그 의미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서점을 벗어나 다시 탄천길을 걸었다. 책은 잠시 서점에 꽂혀 있다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여행하며 걸었던 길을 끊임없이 되새김하여 책 한 권으로 펴내고, 내 그림까지 담아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 「나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중에서
“살갈퀴, 네 이름이 살갈퀴란다.”
비로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의미 있는 꽃이 되었다. 꽃은 바람에 몸을 흔들며 즐거워했다. 길쭉한 작은 잎이 서로 어긋나게 쌍으로 예닐곱 개 달리며, 여린 가지 끝은 세 갈래로 갈라져 덩굴손이 되었다. 덩굴손이 갈퀴처럼 주변 식물을 죽이며 번져서 살갈퀴란 이름을 얻었을까. 꽃도 덩굴손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데…. 사람들은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바꾸기도 하는데 이름을 바꿔주고 싶었다. 우리 전래의 잡초들 이름은 예쁘지 않은 게 많다. 개망초도 며느리밑씻개도. 초봄부터 피어난 귀여운 봄까치꽃도 원래 큰개불알풀이라 불리었다.
살갈퀴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보아주지 않아도 그 싱싱한 잎을 쑥쑥 키우며 홍자줏빛 꽃을 피워냈다. 작고 밝고 맑은 꽃은 잎과 줄기 사이 겨드랑이에 피어나 수줍어 보였다. 다른 꽃들은 머리를 들고 제일 돋보이는 곳에 왕관처럼 피어나는데, 살갈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려고 옆구리에 꽃을 감추었을까. 아무리 감추어도 드러나는 향기. 나에게도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존재만으로 숨길 수 없는 향기를 지녔던 적이.
― 「그에게 반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