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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5120733
· 쪽수 : 238쪽
· 출판일 : 2023-02-11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로서의 상상력을 | 유한근 · 5
책을 펴내며 | 나에게 보내는 끝나지 않는 질문 · 11
제1부 악마를 만난 이후로
너의 이름은··19 | 술이 좋을 뿐··23 | 인생공부··27
어느 봄날의 오후··32 | 악마를 만난 이후로··36 | 비밀통장··40
홀로 떠나는 여행··44 | 어른이 되고 싶다··47
제2부 너도 효진이
봉정사 가는 길··53 | 칠성파가 돌아왔다··58 | 우연과 인연··63
너도 효진이··67 | 자연의 참맛··71 | 작가와 도둑··76
내 친구 미선이··81 | 그 사람··86 | 북성로 연탄불고기··91
제3부 그에게로 가는 길
그에게로 가는 길··97 | 망가진 부츠··102 | 양구 맨해튼을 아시나요··107
‘둘만가족’으로 산다는 것··112 | 북카페와 라이더 ··116 | 끝까지 간다··121
우리 집··125 | 사랑은 ‘보라돌이’를 타고··129 | 엄마가 될 뻔했지··134
제4부 무지개 그녀
400만 원의 이자··141 | 택시 좀 태워주세요··146 | 무지개 그녀··150
가족이니까요··155 | 아빠와 닭곱창··160 | 회춘한 ‘오케이맨’··165
그의 아버지라서 ··169 | 그날의 장미··174
제5부 참 닮았다
볼 수 있어요?··179 | 참 닮았다··184 | 외계인 주스··188
세렌디피티··193 | 개인의 취향··198 | 비 오는 날 나는 그 집에 간다··202
우리는 모른다··206 | 힘 빼세요··210 | 마당 넓은 집··215
발문 | 언어는 삶의 길이다 | 한복용 · 219
저자소개
책속에서
토끼풀처럼 살고 싶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다섯 자매 중 막내인 나는 센 언니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비굴함을 택했다. 어떻게 하면 칭찬받고 예쁨받는지를 경험으로 터득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조금만 숨기면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조금 내려놓고 내 것을 덜 챙기는 쪽을 택했다. 낙오자가 되는 것보다 어떻게든 버티는 쪽이 현명하다는 생각이었다. 잡초처럼 산다는 말은 나에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잡초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일에 차츰 적응이 되면서 골칫거리였던 토끼풀이 점점 친근하게 느껴졌다. 시설장에게는 잔디밭 토끼풀이 애물단지였겠으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풀이란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정원을 정리하면서 여유롭게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낸 시집 갈피에 네잎클로버 하나를 펼쳐 끼운다. 말렸다가 누구에게 줄 것은 아니다. 행운을 기대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로 단단하게 만들어준 토끼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가끔 감정이 흔들릴 때 토끼풀처럼 살고 싶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나 스스로 선택한 일에 끝까지 믿음을 가질 것이다. 힘든 일이 눈앞에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참이다. 내가 결정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싶다. 가끔 후회로 아쉬움이 남겠지만 나의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 「너의 이름은」 부분
그의 소식이 끊긴 지 20년이 흘렀다. 그와 헤어지고 단 한 번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이따금 그가 생각났고, 잘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때마다 찾아볼까 마음이 흔들렸다. 얼마 전 지인한테 그가 봉정사에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멀리서라도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런 기대를 안고 무턱대고 출발한 거였다.
자동차 룸미러로 카페 뒷마당 끝에 이층집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이지 싶었다. 차 밖으로 나온 나는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발짝 걷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가로등 밑으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를 만나다니. 그는 나를 보며 카페가 예쁘냐고 물었다. 나는 황급히 등을 돌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자기가 직접 꾸민 카페라며, 묻지도 않았는데 카페에 대해 이것저것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걸걸한 목소리, 친절한 말투, 세월이 지났어도 넉살 좋은 건 여전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뭉클함이 치고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그를 향해 돌아서서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살면서 내 생각 한 번쯤은 해봤냐고 묻고 싶었다. 가슴이 터질 듯 심장은 요동치는데 목소리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서만 두서없이 떠돌다 엉켜버렸다.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용기는 어디로 가고 바보 같은 여자가 가로등 그늘아래 숨어 쿵쾅대는 가슴을 끌어안고 있었다.
― 「봉정사 가는 길」 부분
갑자기 허기가 졌다. 이삿날에는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배달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다. 먼저 살던 임당리에는 어떤 음식도 배달이 되지 않았다. 읍내에 산다는 것은 곧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제 나에게도 소소한 행복이 시작되고 있었다.
짜장면을 배달시키고 창밖으로 양구읍내를 내려다봤다.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밖은 대낮처럼 환했다. 낮에 보았던 읍내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낮보다 활력이 넘쳤다. 추위에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생기가 넘쳐났다. 먼 산 중턱에 반짝이는 가로등과 양구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다는 강변 다리에는 각양각색의 불빛이 화려함을 더 했다. 가게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터미널 버스에는 군인들이 오르내렸다. 군부대 옆에서 살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군인이 이곳에서는 눈을 두는 곳마다 나타났다.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한눈에 다 보이는 것조차 신기했다. 거실 불을 꺼 두었는데도 전혀 어둠이 느껴지지 않았다. 빈집에 혼자 있다는 것도 잊었다. 한참 동안 시내를 내려다보던 나는, 대도시에 살 때도 느끼지 못했던 빛의 아름다움에 놀라 양구읍내 야경을 감탄하며 즐기고 있었다.
‘양구읍내의 밤은 맨해튼의 밤보다 아름답다.’ 나도 모르게 입안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미국에 가본 적이 없다. 그저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맨해튼 밤거리의 화려함에 반하곤 했다. 그곳은 누구나 인정할 화려함을 갖춘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맨해튼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우리 집 거실 창으로 보이는 양구 밤거리의 작은 불빛과 네온만으로 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 「양구 맨해튼을 아시나요」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