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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051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4-12-15
책 소개
목차
발간사 아팠던 평택의 역사를 시로 느끼길 · 4
술래의 노래/ 제1시집 1976년 · 15
방화(放火)/ 제2시집 1983년 · 113
쑥고개/ 제3시집 1987년 · 233
저자소개
책속에서
[대표시]
술래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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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곱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살 이후의 도시는 대패날이 되어
나를 문지르고 있었다.
-
귓속을 웅웅대는 우수(憂愁)의 빛깔을 끌어내
내가 완전한 자유를 깁고 있을 때,
내 생애는 난(蘭)이와 눈맞추고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무궁화꽃이…
찾는다 —
-
유각(幻覺)의 다리(橋)에 물구나무선 나의 일곱살,
호주머니에서 쏟아지는 천진한 기침을
숨었던 이마들은 변명하고
나는 자꾸 목이 말랐다.
-
2
갈증을 뜯는 기억의 바다.
발음 안 되는 스무살을 소리치다가 치다가
찢어진 냄새여, 숨찬 야도여.
-
빌딩 사이에 서서 방황하는
내계(內界)의 노오란 잠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밤바람을 만난다.
만나는 손바닥
악수의 안에서 눈 뜨는
가롯 유다의 야도소리.
-
스무살 진한 내 감성의 바다를
햇살처럼 헤엄쳐가는
수만 물고기의 혼(魂)이여,
시야(視野)에서 흔들리는 노래여,
-
3
눈물만 한 거리에서
이슬 터지는 신비를 캐다가
아린 눈을 감으면,
유년시절 연(鳶)쌈에서 끊긴
하늘 땅땅만 한 꿈의 길이 보인다.
-
아픈 별처럼 기침 데불고
G선(線)의 자락을 타고오는 어둠,
우유빛 빈 호주머니를 흔드는 바람,
나의 계약자들이여!
-
심실(心室)에 불을 켜면,
순수(純粹)의 살점 흩어지는가
구겨진 그림자 무리.
-
아아, 머리칼이 보인다
꼭꼭 숨어라.
-
4
나를 외면한 배경 속에서
누군가가 둥 둥 둥
끈적 끈적한 울음을 친다.
-
고이는 소리를
—내 안에서 자꾸 꺼내도
잡히지 않는 인식(認識)의 무게.
-
신경(神經)의 가지 끝에서
묵은 잠의 껍질을 벗기면,
피 흐르는 나날.
-
졸음처럼 닫히는
내
오만의 귀.
-
빛을 가려 두른 암실(暗室_에서
이제 나는 일기처럼
젖은 옷을 벗는다.
-
5
야도가 비상하는 울음 가운데서 뽑은
옭매듭진 스무살의 잠이여,
핏줄을 타고 흐르는
야도의 녹슨 음성ㆍ바람이여,
자기를 감금하는 누에의 작업이여,
-
일곱 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 살 이후의 도시는 대패날이 되어
나를 문지르고 있었다.
--
연무동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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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객지로만 떠돌았지.
너를 찾아 수천 개의
불면의 밤을 온통 뒤졌어. 간혹
끼니를 거르고 잠들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불호령은 떨어지고
나는 영산물을 뜨러 2킬로미터의 새벽
산길을 오르내렸지.
꽃이 수줍게 잠깨는 소리랑
잎 푸른 나무 사이를 달음질하는
새벽 종소리를 데불고
나는 혼자의 산길을 오르내렸지.
노인들의 졸리움도 번개처럼 깨지던
그 차거운 영산물에 어리던 내 영혼.
그리고 오후엔 방화수류정 연못가에서
난(蘭)이에게 서로 용잠자리를 잡아주기 위해
‘용잠자리 보배
파리 보배’를 외치며 목젖을 찢던
우리들의 변성기를 보냈던 연무동.
그러나 스무 살 이후에 찾아간
그 마을엔
눈을 찌르는 매움만 살아 남고
내게 생존의 의미를 갖게 하던 너는
어디에도, 정말 어디에도 없었어.
시멘트로 바꿔버린 전신주에서
손톱으로 벗겨낸 석고처럼
음성 몇 갈래와
가물 가물 잊혀진 노래.
내 시선이 가닿는
모든 사물은 빗장을 걸고
나는 뿌연 시야를 손등으로 비벼대며
조용히 연무동을 걸어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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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을 위하여
― 쑥고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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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우리의 가슴에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기 위하여
-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미군들의 털부숭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누이야.
-
네 몸과 바꾼 15불의 화대로도
애비들의 눈은
띄어지지 않는다.
-
아름다운 연꽃은
끝끝내
피어나지 않는다.
-
내의 껴 입을수록 더 추워지는
이 겨울을
맨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
눈 부릅뜰수록 더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좀 더 바로보기 위하여
-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에 던져진
우리들 마지막 기다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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