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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129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0-02-29
책 소개
목차
1부 나는 가끔 풍경이 되었다
환승 · 13
팥꽃여관 · 14
이별유감 · 15
돌 한 송이 · 16
겨울 이력서 · 18
신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 20
몸살 · 22
재정비 · 24
나뭇잎 부엌 · 26
메리어트 15번가 · 28
낮게 내려앉는 작은 것이 저녁이면 밀기울처럼 젖어갔다 · 30
의자, 뒤 · 31
권태 · 32
독감 · 34
내가 가끔 풍경이 될게요 · 36
2부 아름다운 오류
한번도 없었던 식탁 · 41
다수의 의견에 대하여 · 42
우리는 안으면 왜 울 것 같습니까 · 44
안갖춘꽃 · 45
K6 가끔은 J7 · 46
달아난 말 · 48
물고기 행성 · 50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 51
도시 비행 · 52
이웃 · 54
태양공업사 · 56
초대받지 않은 식탁 · 58
문득 사라지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 60
아름다운 오류 · 62
다정의 호칭 · 63
3부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었다
정돈 · 67
신광 · 68
담배꽃 · 69
건너가다 · 70
철로에 떨어진 돌은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 · 72
태양은 음계를 놓치고 · 74
밑그림 · 76
하얀 · 77
빈집이 자란다 · 78
거대한 모서리 · 79
Hontanas camino · 80
맑음주의보 · 82
안녕 Iceland · 84
화답 · 87
같은 달을 보고 떠나지만 다른 별을 안고 온다 · 88
4부 다음 정류장은 바다입니다
밤수지맨드라미 책방 · 93
동백 약도 · 94
발자국 전보 · 96
봄 실종 · 97
식물의 방 · 98
그럴 리 없겠지만요 나는 어두워져요 · 99
뿔소라 삶는 밤 · 100
고래는 우리를 잊었고 · 102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 104
바람의 섬 · 106
다음 정류장은 바다입니다 · 107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파도 · 108
수선화 전입 · 110
멀다 · 112
물의 하닥 · 114
해설 지구라는 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 서설 / 우대식 · 115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름다운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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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에 새 하나 사는 상상을 하지 너무 아름다워 쉽게 등을 보여주지 않을 거야 지하의 늙은 개는 카나리아가 되고 싶어했지 태어난 적 없는 새가 되어 다시 태어나고 싶어했지 날개 대신 어깻죽지 그 아래 숨겨둔 동굴의 비루를 먹고 살았지 등이란 내 손이 닿지 않는 미로의 판 그래서 나에겐 등이 너무 많아 가려운 곳을 찾아 더듬으면 언제나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복판이 되지 내 말이 너무 짧아, 보이지도 않아, 볼 수가 없어, 거울로도 눈으로도 어떤 성분으로도
내 등에 사는 새 한 마리는 핀 적이 없어 지지도 않아 태어난 적 없어 울지도 않아 한사코 날게 해달라고 할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 날개가 꿈틀거릴 때마다 내 손은 없어지고 말은 짧아지고 밤마다 문을 열고 걸어나오는 지옥의 운율 새에 깃든 창공은 날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난다는 건 비단 날개가 있다고 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늙은 개는 날개를 가져본 적 없는 세계지 아름다운 오류를 먹고 사는 어떤 세계는 등을 가져 본 적도 없을 테지 뒤를 보지 말고 앞을 봐 줄래야 줄 수 없는 내 등을 너에게만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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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tanas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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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서 한번 가보겠나, 나처럼 우주복을 갖춰 입을 건 없고 편하게 따라나서면 되네. 신발끈만 잘 묶게나, 조이든지 느슨하게 하든 아침에 눈 떴을 때 몸을 살피고 알아서 하게나, 컴컴하니 뭐 보이는 것이 있겠냐마는 난 늘 이 시간에 길을 나서네. 잠깐 보이다만 달을 보니 그믐인가 보군. 그믐달도 내일이면 삭을 지나 차고 다시 이지러지겠군. 무작정 걷다보면 나도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는 달 같다는 생각이 든다네. 이제 제 무덤에 들어가려고 꾸물거리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나, 세상을 통틀어 저보다 보기 드문 빛이 또 있을라구, 오늘은 바람이 아주 세차군. 떠내려가지 않게 조심하게. 아마도 끝까지 역방향으로 불어올 작정인가봐, 그렇다고 맞서려고 하지 말게. 가끔은 파도를 타는 구명줄처럼 흐느끼며 걷게나, 그래야 마음이 부러지지 않지. 오르막이 나오면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면 안 되네. 오르막은 마지막까지 찍고 나서야 꺾이지. 중간에 가다가 멈추면 더는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네. 한 걸음도 더는 내딛기 힘들 때는 한 걸음을 더 옮기는 게 넘어서는 길일세. 왜,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이나, 짐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접게나, 짐은 덜어서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네. 오히려 짐을 떠안기는 꼴밖에 안 되는 거야, 내가 무거우면 내가 버리면 돼. 내가 무거운 걸 남에게까지 짊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길에서 바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방편이었다네. 그렇다고 저 답답한 문제를 계속 떠안고 가느냐, 웬걸, 언젠가는 불태워야겠지. 그게 다 가지는 방법이니. 어때, 걸을 만한가, 신발끈은 좀 더 안 조여도 되겠나, 조금만 힘을 내. 나무 그늘 없는 12㎞ 밀밭을 걸어가야 하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투덜대지 말게. 저 밀밭을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라 생각하며 걷게. 그래야 사이와 사이를 이해할 수 있다네. 조금만 더 가면 모래로 뒤덮인 마을이 나올 거네, 그때부터 내리막이네. 이제 다 와 간다네.
* 산티아고 길.
** 데이비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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