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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808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5-06-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미치는 날에 만나요
시오름의 봄 · 13
청문회 · 14
계엄령 · 15
나비 · 16
패션시대 · 18
이계의 존재 · 19
싱크홀 · 20
술잔 속 세상 · 22
워프 · 24
시간의 바다 · 26
세상의 끝에는 요정들이 살고 있을까 · 28
밤의 사막 · 30
어둠의 장막 · 32
소주비가 내리면 · 34
미치는 날에 만나요 · 36
2부 귓속의 이야기
섬의 새벽 · 39
귓속의 이야기 · 40
트롤의 노래 · 41
손가락 · 42
전망대 · 44
바닷가 그 집 · 46
어둑시니 · 48
과거에 묻힌 이름 · 49
금능바다를 바라보아요 · 50
바퀴 없는 자전거 · 52
박성내의 밤 · 54
여우물 아가씨 · 56
그슨새 · 58
환마(幻魔) · 59
즐거운 제삿날 · 60
3부 사라진 마을 남겨진 사람들
땅속 아이 · 65
늘 봄 · 66
오래된 유물 · 68
구멍 난 다리 · 70
대살 · 72
허벅 장단 · 74
좁은 돌집에 우리 모여 살았지 · 75
검은 겨울의 꿈 · 76
귀가 · 78
너산밧 · 80
자리왓 돌담 · 82
숨은 아이를 찾으러 숲으로 간다 · 84
섬의 고리 · 86
까마귀 마을 · 88
동백(冬魄) · 90
4부 기억 속에 살아나는
오동도 동백꽃 · 95
동백의 꿈 · 96
손가락총 · 98
골령골 사람들 · 100
흑백사진 · 102
흑백사진 속 아이들 · 104
오륙도 등대 · 106
터진목의 귀향자들 · 108
잠든 아이를 업고 가네 · 109
부활하는 아이들 · 110
영도 등대 · 112
궤 · 114
장두의 길 · 116
사라진 사람들이 돌아온다 · 118
구술 · 120
해설 기억을 위한 끝없는 이야기 / 현택훈 · 122
저자소개
책속에서
[표제시]
귓속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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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낫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짙은 어둠을 타고 틈새로 들어오는 그는 낫 가진 이야기꾼 자는 어른들의 귀를 댕강댕강 잘라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자른 귀를 모아 이야기를 만들지 그의 이야기는 귓속에 남은 부서진 섬과 산의 파편들 잘린 귀들이 쏟아내는 파편들이 뭉쳐 만든 이야기 목 없어 말 못하는 산사람들 귀 없어 듣지 못하는 섬사람들 낫을 휘두르며 꺼내는 이야기에 아이들은 자지러지는데 어른들은 두 귀를 막고 숨이 넘어가지 머리빗을 빗어내듯 낫 끝을 귓바퀴 위에 얹으면 어른들은 두 눈을 꼭 감고 이불 속에 숨어 떠는데 아이들은 간지러워 깔깔대며 옛이야기에 빠져들다 잠이 들지 오늘도 불 꺼진 방구석마다 문 닫힌 벽장 속마다 놓아둔 귓속에서 이야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는데 그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이들이 웃다 잠드는 머리맡에 앉아 상상하며 으스스 웃는 귀 없는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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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환마(幻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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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이 찾아온 날 침대에 누워 연신 오돌오돌 떨다 눈을 뜨자 거대한 절벽에 서 있었지 아래에 돌풍이 치고 올라와 휘말려 빙글빙글 돌다 어느 꽃밭에 떨어졌지 만발한 꽃들을 넋놓고 보는데 꽃감관이 나타나 서천꽃밭을 침입한 이유를 물었지 돌풍에 휘말려왔다고 하자 꽃감관이 이르길 섬의 아이가 항쟁을 끝내지 않고 이리 도망쳤느냐 하늘의 법도를 어긴 대역죄로 초열지옥으로 떨어지리라 산사람이 어찌 지옥에 가느냐며 꽃밭을 구르는데 대지가 갈라지며 솟구치는 화염들 활활 타오르는 몸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지 나는 아니오 나는 아니오 비명을 지르다 일어나 돌아보니 뜨거운 온돌방 바닥이네 불 꺼진 열기 가득한 어린 날 익숙한 좁은 방안 무슨 꿈인가 싶어 다시 돌아보자 사십 년 젊은 어머니가 무슨 땀을 그리 쏟아냈냐며 연신 이마를 닦아내고 있었지 하 꿈인지 환상인지 이리도 지독하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데 사내자식이 이까짓 독감 하나 이기지 못한다며 타박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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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산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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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 가는 돌담
집터만 남은 자리
희미해진 올레
여전히 너는 서 있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사람들
돌아오지 못하고
그냥 너만 살았다
너만 마을터를 지키고 있다
빌레못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
출구 없는 어둠 속을 헤매다
육신이 녹아 사라지면
산을 내려온 바람을 타고
돌아오는 사람들
홀로 살아 터를 지키는
너만 살았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아
그냥 오래된 이야기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고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입구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팔을 들어 흔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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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월읍 어음리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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