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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65125028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4-12-3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시와 그림 경계를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길 5
제1장 철광산이 있던 자리
철의 동네 장승리··12 | 철광산이 있던 자리··16
기억이 절벽을 오를 때··20 | 한 마리 연어가 되어··24
열한 살의 일기··28 | 종점을 기억하는 방식··34
꼬꼬댁 접시꽃이 피었습니다··39 | 내 생의 특별한 옷··43
굳세어라 의기양양··48 | 직녀에게··54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62
제2장 너를 보면 가슴에 비가 내린다
한 그루 모란, 한 포기 작약처럼··66 | 한계령을 넘어갈 때··70
엘리제를 위하여 ··75 | 책 읽는 다락방 소녀··80
너를 보면 가슴에 비가 내린다··84 | 설송, 언제나 그 자리에 푸른··88
하얀 눈사람··93 | 낙산상회··98 | 은하미장원··102
울기 좋은 나무··106 | 장가계 아리랑··109
제3장 기차는 00시 30분에 떠나고
광차를 아시나요··114 | 설산, 태백··117 | 꼭대기라는 말··120
기차는 00시 30분에 떠나고··123 | 묵호··127 | 남애(南涯)··131
귀래의 꿈··135 | 문막, 흐르는 강물을 막아··140
신림을 지나며··144 | 울고 싶을 때는 용소막성당··147
당신 잘되기를 바라요, 흥업··150 | 만종역과 코스모스··154
세상의 모든 봄은 반곡역에 내린다··158 | 먼나무와 동백의 땅··162
제4장 바다로 걸어간 이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168 | 바다로 걸어간 이젤··171 | 선물··176
니 시방 뭐하고 있노?··180 | 아직 쓰지 못한 시··185
코로나 불꽃으로··190 | 문화의 거리··195 | 벚꽃잎이 난분분할 때··199
노을은 하루를 살다 가지만 강물은 천 년을 흐른다··203 | 마스크의 봄··206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찌감치 가장이 되어 식구들 이끌고 광산에 와서 3교대 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철이 빨리 들었던 걸까. 당시의 아버지들, 광산에 뼈를 묻거나 떠났어도 한때 대한민국에서 철이 가장 많이 나서 빛나는 철광산업을 이끌었던 역군들이었다. 또한 철의 원산지로서의 광산도 굳건히 존재한다. 마을은 사라졌어도 기억은 흩어졌어도 광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푸르게 살아 있다.
나는 양양 장승리에 있던 철광산이 역사 속에서 혹은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두렵다. 번영은 쇠락을 전제로 할지라도 분명 존재하던 역사였기에 그 생생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내 존재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까닭이다.
아버지는 노동자로, 가장으로 살면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라는 철보다 더 무거웠을 것이다. 아무리 몸이 고되도 아버지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변덕 심한 어머니와 야위어가는 아내와 동생들까지 데리고 살면서 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 수가 없었다. 철인 아버지 그늘 아래 철없는 내가 해맑았다. 태어나 열한 살까지 살았던 광산이 있던 산골은 근심 걱정 없는 내 자유로운 놀이터였다.
― 「철광산이 있던 자리」 중에서
한번도 강원도를 떠나 살아본 적 없지만 영동과 영서를 오가며 살았다. 강원도의 동쪽과 서쪽을 가르는 기준은 대관령 혹은 한계령, 구룡령 등 이름을 가진 고개들이다. 영동고속도로가 왕복 이차선이던 시절 길이 막히면 한계령이나 구룡령 쪽으로 우회했다. 태어난 양양보다 대학을 다닌 춘천, 이후에 살게 된 원주는 서울과 가까운 탓인지 말씨가 보드랍고 뭔가 세련되었다. 확실히 고개 좌우로 말씨도 다르고 정서나 생각도 다르다는 것을 양쪽을 오가며 터득했다.
가족도 모르는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여고 2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터미널에서 춘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수련회 때 사임당교육원서 만난 춘천에 사는 친구 이름과 전화번호만 믿고 용감하게 버스를 탔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일탈의 봄날이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갈 때, 내 눈에 비친 한계령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옆으로 누운 비탈의 나무들과 절벽들이 호위병처럼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춘천에 도착해 친구를 만났다. 다행히 내가 가출한 걸 모르는 친구의 가족은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말씨는 서울말처럼 부드러웠다. 친구는 내가 북한 사투리를 쓴다며 웃었다. 춘천은 강원도여도 확실히 말의 온도가 달랐다. 그때 친구 언니가 안내해준 공지천과 춘천의 풍경들, 거센 동해의 파도만 보다가 잔잔한 호수가 던지는 파문이 제법 컸다. 그 때문인지 국립대만 보내준다는 부모님께 나는 망설임 없이 춘천으로 가겠노라고 말씀드렸다. 한계령을 넘어 세 시간 넘게 걸리는 춘천이었지만 한계령의 절경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 「한계령을 넘어갈 때」 중에서
바다낚시는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였다. 놀래기며 우럭, 섭, 미역 등 밥상머리엔 항상 아버지가 끌어올린 바다로 출렁거렸다. 아버지는 시간 날 때마다 바다를 찾았다. 바다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학업도 포기하고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채 광산에서 주야 교대근무를 하면서 달려온 삶을, 그 푸른 빛이 주는 안식으로 잠시나마 내려놓고 싶으셨을까. 정작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바다를 그리려 바다에 와서는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었다. 생각을 몰고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닷가에 이젤을 세워놓으니 그 두 다리가 가슴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이젤이 건네는 말들을 시로 받아적었다. 마지막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는 이제 좀 편안해지셨을까. 너무 일찍 철들어 무겁기만 했던 가장의 무게를 지게처럼 짊어지고 그 너머 푸른 통로를 걸어가는 아버지. 그 순간 파도가 와서 모래톱을 적신다.
“우리 딸, 이제 왔구나. 오래 기다렸어. ”
― 「바다로 걸어간 이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