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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67375032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4-12-05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1장 『계암일록』에 나타난 17세기 초반 별역 문제
머리말 | 광해군 연간 재정 부담 증가와 별역 발생 | 인조 연간 별역 징수 지속과 변화 양상 | 맺음말
2장 김종의 『임진일록』을 통해 본 피란 생활과 의병 활동 김경태
머리말 | 피란의 시작 | 강화도에서의 활동 | 새로운 의병진의 모색 | 맺음말
3장 17세기 전쟁과 혼인과 거주 방식의 변화 김정운
전쟁과 일상의 변화 | 성행하는 혼인 | 간략해진 절차 | 친족 조직의 등장 | 변화의 의미
4장 1593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과 일본군 공세 논의
머리말 | 평양 수복 이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 노력 | 경략 송응창의 조선 조정 인식과 기본 책략 | 맺음말
5장 『임진일록』을 통해 본 전쟁 중 민간의 정보 수집과 교류 양상
머리말 | 전쟁 발생 초기 피난 과정 속의 정보 전달 | 민간의 전쟁 상황 파악과 명군 관련 정보의 전달 | 맺음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조 25년(1592, 임진) 발발한 왜란倭亂은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7년여 간의 전쟁은 조선에 회복하기 힘든 인적·물적 피해를 주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커다란 후유증이 남았다. 조선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왜란을 전후로 하여 성장한 여진의 누르하치[奴兒哈赤] 세력이 어느새 명明을 위협할 정도로까지 성장하였고, 조선은 국가 재건에도 힘에 부치던 상황에서 북방 여진의 위협까지 방비해야만 하였다. 정유재란을 끝으로 물러난 일본의 재침 우려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17세기 초반 동북아시아의 국제적 혼란 속에 조선은 계속된 위기를 겪었고, 그만큼 군사·외교 비용의 부담을 안아야 했다. 외부 세력의 위협에 맞서서 국방비 지출이 늘어났으며, 중국 사신의 잦은 방문은 조선의 재정이 회복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여기에 내부적으로는 왜란으로 파괴된 국가 기반 시설의 재건이라는 막대한 재정 수요도 있었다. 결국 정해진 세액 범위에서는 이 비용을 모두 감당하기가 어려웠으며, 정규세가 아닌 일종의 ‘임시세’ 형태의 비정규세를 만들어 재정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1 이러한 비정규세 문제는 일반적인 부세 운영에 위반이 되는 요인이었으므로 상례적으로 받는 세목인 ‘상세常稅’에 대비되어, 명분이 없는 추가 부세라는 의미와 함께 ‘별역別役’이라고 불렸다.
임진왜란 발발 후 강화에는 피란민뿐 아니라 관군과 의병들도 가득 모여 있었다. 이곳은 해로를 통해 비교적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지역이었고, 행재소와 다른 지역을 이어 주는 핵심적인 위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의병의 창의 과정도 특징적이었다. 다른 지역의 의병장들이 여성과 노약자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킨 후에 장정 위주로 구성되고, 유격전 위주로 활동했던 데 반해, 강화에서는 의병을 결성하는 장소가 비교적 안전했고 모인 이들이 많았기에 의병의 규모도 비교적 컸다. 그리고 이들 다수의 병력이 선박을 이용해 이동하여 군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종의 기록을 통해 강화에 주둔한 의병진의 특징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유학은 군주의 덕으로 감화시키는 정치를 이상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군주의 덕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궁중 속에서 아무리 덕이 있는 군주가 있다고 한들 이것이 어떤 유위有爲한 정치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그 군주가 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범연의』에서는 군주의 덕은 제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위하여 왕후, 세자, 직관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먼저 천자뿐만 아니라 왕후 또한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