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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비평/이론
· ISBN : 9791167524157
· 쪽수 : 409쪽
· 출판일 : 2024-01-30
책 소개
목차
Part 1. 왜 필로아트(PhiloArt)인가?
1. 필로아트: 그 조건과 시대
필로아트의 조건
필로아트의 전개는 언제부터였을까?
2. 필로아트의 선구(1):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황혼에 날다: 재현의 종언
경계에 서다: 모더니티의 여명
3. 필로아트의 선구(2): 세잔의 회의
다시점의 정물화
다시점의 풍경화
4. 필로아트의 선구(3): 마네의 금기에서 위반으로
마네의 ‘유발된 저항’
과거에의 저항: 깊이감을 위반하다
당대에의 저항: 도전과 스캔들 사이
새로운 질서 만들기 82
5. ‘진실게임’하는 필로아티스트들
5-1. 키리코의 철학실험
5-2. 마그리트의 ‘부정의 철학’
오브제의 역설과 우상의 발견
트라우마와 회상미학
자기부정의 변증법과 반어법의 미학
‘배반의 미학’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초현실인가, 데페이즈망인가?
Part 2. 철학으로 미술하기
1. 대탈주 시대의 철학: 해체주의와 스키조 필로소피
대탈주 현상
해체와 노마드 현상
노마드에서 디지털 원주민까지
2. 무제, 욕망의 유보일까, 차연일까?
제목이란 무엇인가?
제목은 의미의 메신저일까?
제목은 도발한다
왜 ‘제목 없는 제목’인가?
에필로그
3. 토털아트와 예술적 공리주의
왜 설치미술인가?
왜 공리주의인가?
왜 에코이즘인가?
Part 3. 미술로 철학하기
1. 물상으로 물성을 실험하다: 미술, 철학에의 초대
가공되지 않은 우물
상(1): 박장년의 즉물적 물성실험
물상(2): 박석원의 존재론적 물성실험
물상(3): 송번수의 탈장르적 물성실험
더 높은 곳 대신에
2. 사유의 상징태로서 미술을 철학하다:
권여현의 바쏘 콘티누오
영혼의 바쏘 콘티누오(basso continuo)
관조와 상상의 창작세계
은유의 미학과 신화뮤지엄
숲의 파타피직스
‘내가 사로잡힌 철학자들’
3. 토톨로지의 임계점에 서다: 리암 길릭의 관계미학
이미지 게임하는 필로아티스트
근접의 미학
횡단적 주름공간들
의미복합체로서 토털아트
4. 욕망과 영혼의 변증법적 대화 :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사이의 미학’과 ‘관계의 철학’
결코 끝나지 않을 여행
관계의 철학자와 사이의 미학
허구적 자서전
이중상연하는 메시지의 파종
영혼과 다의적으로 대화하다
5. 메타수묵의 존재론적 반사실험:
우종택의 반(反)형태주의적 필로아트
왜 ‘메타수묵’인가?
자유연상의 반형태주의
즉물성의 미학
질서를 다시 보다
다름의 자유
Part 4. 미술과 철학, 기로에 서다
1. 현대미술, 그 종말과 예후:
프랙토피아의 도래를 예상하며
포스트-해제주의와 종말의 서사논쟁
아름다운 프랙토피아(fractopia)일까?
플러스 울트라 시대의 필로아트는?
AI결정론과 포스트아트
탈출의 비상구는 어디일까?
2. 빅블러(Big-Blur) 시대와 ‘포스트철학’
빅블러와 미증유의 위기
징후에서 예후까지
위기의 역설: 파괴의 방법으로서 결합
교접에서 이접으로
3. 감성 시대에 아르누보의 르네상스를 기대한다
역사는 새로움만을 기록한다
역(逆)발상해라
밖(다른 데)에서 찾아라
철학으로 스타트업하라
저자소개
책속에서
마네는 왜 당시의 관람자들이나 비평가들에게 과거에 저항하는 ‘파괴적인 화가’로 비쳐졌을까? 특히 그가 시대에 반항하는 ‘스캔들 속의 화가’로 평가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네가 말없이 감행한 관습적인 형성규칙의 위반들이 타자에게 그만큼 낯설고 불편한 것으로 반사되었기 때문이다. … 그러면 회화에서도 생략의 문법과 소거의 논리를 통한 ‘희생의 경제학’에 주저 없이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마네가 어긴 위반의 구체적인 사항들은 무엇이었을까?
‘선한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소설가 플로베르의 언명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미 중세의 성상(聖像)회화시대 이래 회화에서 신의 묘수와도 같은 환상적인 ‘깊이감’은 평면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 … 하지만 19세기의 화가 마네에게 회화에서의 깊이감은 더 이상 반드시 따라야 할 금과옥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미술의 본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그의 필로아트적 사유가 그것에 대한 출구로서의 위반을 자극해 온 탓이다.
눈속임하는 미술가이기보다 ‘생각하는 사람’, 즉 코기토(Cogito)를 표방하는 데카르트주의자이고 싶어 했던 마그리트가 평생 생각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푸코가 그에 대하여 사상가라고 부르면서도 그 앞에 ‘시각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그리트의 반정립적이고 반어법적인 사유가 초현실세계를 지향하려는 사상과 이념(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헤테로토피아처럼 낯선 환경을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표상화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마그리트에게는 헤테로토피아에 대한 자신의 형이상학적 의문보다 관람자를 시각적으로 낯설게 하려는 생각이 더 먼저 작용한 게 사실이다. … 기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관계망들을 제멋대로 해체하거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헝클어뜨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관람자가 시공을 막론한 지속적인 ‘환경변화’(depaysement)에서 오는 시각적 생경함으로 인해 심리적 긴장감에서 좀처럼 헤어날 수 없게 한다. 결국 그는 관람자의 긴장감마저 무뎌지기를 바라는 일종의 최면술사와도 같은 화가였다.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그림엽서』(La Carte Postale, 1980)에서 묵시적인 의사의 전달을 위해 유통되는 그림엽서는 너무 크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것이 축소되어 우표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우표로 대신한 도발적인 그림엽서에서 (특정한 편지의 내용에 대한 암시적 표현과 수취인의 부재로 인해) 언어적 메시지가 지금까지 누려 온 독점적 지위를 거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거부와 도발의 감행은 데리다의 그림엽서와 같은 특정한 언어적 의사소통 매체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 기호나 문자의 메시지가 내용과 형식의 다의성을 제한하거나 말(mot)과 사유(pensee) 사이에서 제목과 같은 확언적 서사가 ‘말 없는 사유’를 유폐시킨다고 믿는 많은 추상미술가들이 이미 그와 같은 도발과 반란을 줄기차게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양식의 발작이나 탈정형화와 더불어 해석의 다의성이 요구될수록 그러한 도발의 감행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른바 ‘무제’의 반란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제목으로서 무제란 무엇인가? 거기에는 어떤 심리적 동기가 작용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미술가들은 왜 무제심(無題心)에 이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