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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미술 > 미술가
· ISBN : 9791167521811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2-08-1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서론
제1부 욕망의 논리와 현상
1. 욕망의 진화
1 ) 몸의 진화: 닫힌 진화론과 진화의 딜레마
- 메타증후군
- 가위의 결정력과 부메랑 현상
2 ) 욕망의 진화: 열린 진화론과 마음작용
- 진화란 무엇인가?
- 열린 진화론과 욕망의 진화
- 통섭(統攝)은 마음을 통섭(通攝)할 수 없다
2. 욕망의 논리: 단념과 승화
1 ) 단념의 논리
- 욕망의 본성: 접착성과 지향성
- 단념수행의 가학성과 피학성
2 ) 승화의 논리
- 승화의 중층성(重層性)
- 승화물의 양면성
- 승화물로서 영혼의 지도
3. 욕망의 현상: 승화된 욕망의 플랫폼들
1) 고갱의 조형욕망과 그 플랫폼들
2) 고갱과 이접(離接) 신드롬
-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
- 이접의 모범과 신드롬
제2부 욕망에서 영혼으로
1. 욕망의 변이
1 ) 지금, 왜 고갱인가?
2 ) 고갱효과와 격세유전
- 흥분된 상전이: 스마트 월드
- 초연결의 선구로서 고갱
3 ) 스마트: 상상 속의 위안
4 ) 고갱을 보라: ‘기술적 대감금의 시대’에 대한 잠언
- 인위적/자연적 초연결
- 새로운 ‘사슬 원리’와 ‘토털 이클립스’ 현상
- 인위(人爲)는 쓰레기다
- 비상구가 없다(No Exit)
- ‘더 이상은’(Never More)
2.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인가?
1 ) 디지털 타임스와 고갱 다시 보기
2 ) 딥 러닝의 최면술
3.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 ) 편리함의 배신: ‘고갱효과’를 기대하며
- 스마트 신화에 대한 저항
- 고갱효과를 기대하며
2 ) 닫힌 세상과 미래의 적들
- 질서에의 의지(will-to-order)
- 자유의지와 그 적들
- 영혼의 감지와 가치의 전환
- 마음혁명: 압박에서 열망으로
4. 너의 영혼을 보살펴라
1 ) 인륜부터 배워라
- 노동의 해방은 없다
- 심판받은 모세의 지팡이
- 유토피아는 없다
2 ) ‘영혼의 노스탤지어’를 즐겨라
- ‘생각하는 기계’와 알파고 현상
- 소우스탤지어(soustalgia)를 즐겨라
3 ) 영혼을 보충해라
- 베르그송의 잠언
- 고갱을 기억하라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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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노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유니버스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더구나 AI와 같은 인력 대체의 도전에 대해 응전할 수 있는 보완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심화된 노동의 상실은 오랜 세월 동안 일(노동)이라는 아편에 중독되어 온 인간에게 삶의 목적과 의미마저도 잃어버리게 하는 정신적 대공황을 맞이할 것이다. 이미 영혼을 상실한 지 오래된 디지털 대중은 머지않아 일자리마저 빼앗긴 뒤 한때 고갱의 뇌리를 지배했던 ‘우리는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와 같은 인생에 대한 철학적 의문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욕구(몸채우기)에 대한 억제나 지배와 같은 자학성(자발적 마음비우기)을 교의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종교와는 달리, 예술 활동은 욕구의 단념과는 반대로 참을 수 있는 욕망(마음채우기)일지라도 그것의 적극적 발산을 ‘영혼의 유희’로 승화시키는 대표적인 승화행위이다. 저자가 줄곧 지성이하의 감정승화물인 초인공지능의 물상적 시스템에 비해 지성이상의 욕망에서 비롯된 예술적 승화물인 고갱의 <집합체>(Summa)를 줄곧 강조하고 주목하도록, 즉 ‘고갱을 보라’고 요구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성의 부식이 심화되고 있던 고도의 기술문명 사회보다 원시에서 소크라테스의 주문대로 ‘영혼의 보살핌’을 추구하고자 했던 고갱의 욕망은 오늘날의 볼셰비키(빅 나인)가 선동하는 영혼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욕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Summa〉에서 보듯이 그는 디오니소스적 정념을 ‘승화열’로 삼아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영혼의 자유로운 유희에 대한 감지를 환상적인 파노라마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고갱이 스마트한 첨단기술로 포장되고 있는 현장(표면), 다시 말해 영적 신화를 잃어버리고 있는 도시를 대신하여 새로운 신화가 될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속살(내부)을 찾아 나선 까닭과도 다르지 않다. 그는 그 원시의 땅이야말로 흔하지 않게 ‘지금, 여기에’(hic et nunc) 현전(現前)하는 환유공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곳이야말로 ‘욕망에서 영혼에로의’ 승화를 산출해 낼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순결한 파라다이스였다. 소크라테스의 주문대로 당시의 소피스트들이나 다름없는 유럽의 물상주의자들에게 ‘나(고갱)를 보라’는 듯이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영혼의 둥지와도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