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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기호학/언어학 > 한국어/한문
· ISBN : 9791168061064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5-03-16
책 소개
목차
177 성省궁躬기譏계誡. . . . . . . . . . . . . . 9
178 총寵증增항抗극極. . . . . . . . . . . . . 22
179 태殆욕辱근近치恥. . . . . . . . . . . . . 37
180 림林고皐행幸즉卽. . . . . . . . . . . . . 49
181 량兩소疏견見기機. . . . . . . . . . . . . 62
182 해解조組수誰핍逼. . . . . . . . . . . . . 74
183 색索거居한閑처處. . . . . . . . . . . . . 88
184 침沈묵默적寂요寥. . . . . . . . . . . . . 103
185 구求고古심尋논論. . . . . . . . . . . . . 119
186 산散려慮소逍요遙. . . . . . . . . . . . . 133
187 흔欣주奏누累견遣. . . . . . . . . . . . . 145
188 척慼사謝환歡초招. . . . . . . . . . . . . 158
189 거渠하荷적的력歷. . . . . . . . . . . . . 170
190 원園망莽추抽조條. . . . . . . . . . . . . 183
191 비枇파杷만晩취翠. . . . . . . . . . . . . 194
192 오梧동桐조早조凋. . . . . . . . . . . . . 206
193 진陳근根위委예翳. . . . . . . . . . . . . 218
194 낙落엽葉표飄요颻. . . . . . . . . . . . . 230
195 유游곤鵾독獨운運. . . . . . . . . . . . . 242
196 능凌마摩강絳소霄. . . . . . . . . . . . . 254
197 탐眈독讀완翫시市. . . . . . . . . . . . . 267
198 우寓목目낭囊상箱. . . . . . . . . . . . . 280
199 이易유輶유攸외畏. . . . . . . . . . . . . 293
200 속屬이耳원垣장墻. . . . . . . . . . . . . 306
저자소개
책속에서
천자문 들어가는 시_
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끝없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거기에는 아으! 하늘이 있었습니다.
나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끝없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거기에는 아으! 대지가 있었습니다.
하늘이라는 랄라Lala와
대지라는 룰루Lulu가 만나
파릇파릇靑한 마음忄을 섞었는데
그게 정情이었고
거기서 내가 생기고
우리가 생기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고
소중한 벗이 생기고
생명이 마구 생겼습니다.
어느 날 벗이 물어왔습니다.
"스님, 질문이 있습니다."
"네, 뭐가 궁금하신지요?"
"네 스님. 십이연기에 대해섭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라면
다른 말로는 십이인연이지요.
두 가지는 같이 쓰이지만
나는 '십이인연'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내가 되물었습니다.
"십이연기나 십이인연이라면
인터넷 보살에게 물으시면 되는데
어떤 점이 궁금하신지요?"
묻는 자가 답하는 자가 되고
답하는 자가 묻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화對話talk에는
그래서 이른바 갑질이 없습니다.
갑질은 묻는 자는 영원히 묻는 자
답하는 자는 영원히 답하는 자
그 두 상황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묻는 자는 언제나 묻고
답하는 자는 늘 답하는 자이지요.
보고하는 자는 늘 보고만 하고
보고 받는 자는 늘 받기만 합니다.
그러나 대화에는 그런 갑질이 없습니다.
한자의 대화對話라는 말은
상대가 있어 주고 받는 것입니다.
주고 받음 속에는 주는 행위자와 받는 행위자가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주는 자가 곧 받는 자고
받는 자가 곧 주는 자입니다.
영어 토크Talk 속에
일방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컨버세이션Conversation에도
컨Con이라는 '함께'의 뜻이 있고
다이얼로그Dialogue에도
다이얼Dial이라는 '둘 이상'이 있습니다.
여기 혼자는 없습니다.
혼자 지껄이는 것은 독백獨白입니다.
곧 혼자獨 중얼거림白이지요.
혼자獨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키우는 촛불燭에서
촛불火은 사라지고 그 촛불을 밝힐 자리에
애완견犭이 자리한 것입니다.
게다가 중얼거림白이 무엇입니까?
말曰이 수평으로 오가지 못하고
수증기丶처럼 위로만 오르니
모놀로그Monologue는 되겠으나
다이얼로그는 아예 되지 못합니다.
얘기가 옆길로 새고 있습니다.
질문한 벗이 답했습니다.
"글쎄요. 십이연기의 주체가 ㅡ
십이연기의 주체가 무엇일까요?"
"십이연기의 주체요?"
"네. 스님 그게 식識일까요?
무명無明에서 행行이 행에서 식이~
식에서 명색名色이 명색에서~"
십이연기는 곧 생명의 법칙입니다.
생명이 순환하는 법칙이요
한 생명이 그 생명의 윤회 속에서
끊임없이 갈마드는 법칙이고
이 생명이 저 생명으로
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의 세계로
바뀌고, 바뀌고, 바뀌어가는
이종교류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십이연기에 대해서는
초기불교의 뿌리 줄기根幹이기에
아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십이연기를 알면
그는 온전한 불교신자이고
십이연기를 모르면
그는 아직 문밖에서 서성이는 자
곧 문외한門外漢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게 궁금했던 점들을 물은
그 벗의 생각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절집에 들어온 지 만 44년을 맞이하지만
나는 아직 십이연기를 모릅니다.
설명이야 얼마든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내면의 세계에서는
아직은 '모름'이란 불이 깜빡거립니다.
그러나 내가 통째로 이해하는 십이연기는
생명 순환의 법칙 중에
이보다 완벽한 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십이연기를 제대로 안다면
이 속에 생명의 질긴 역사와
생명과 생명들의 관계성과
생명과 환경의 세계와
환경이란 공간과 시간의 역사가
술술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분명히 얘기합니다만 십이연기는
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나
식을 떠나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분명 무명에서 비롯되었지만
무명 저 혼자 만들어낸 작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