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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03276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25-01-31
책 소개
목차
서문 - 윤동주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1부 성장기 1934~1937
초 한 대
삶과 죽음
거리에서
공상
창공
꿈은 깨어지고
조개껍질
병아리
기왓장 내외
비둘기
오줌싸개 지도
식권
모란봉에서
황혼
종달새
닭
산상山上
오후의 구장(球場)
이런 날
양지쪽
산림
곡간(谷間)
빨래
빗자루
햇비
비행기
굴뚝
무얼 먹고 사나
봄
아침
편지
버선본
눈
겨울
황혼이 바다가 되어
거짓부리
둘 다
반딧불
밤
만돌이
개
나무
장(場)
달밤
풍경
한란계
그 여자
소낙비
비애
명상
바다
비로봉
산협(山峽)의 오후
창(窓)
유언
2부 연희전문학교 입학기 1938~1939
새로운 길
산울림
햇빛·바람
해바라기 얼굴
애기의 새벽
귀뚜라미와 나와
어머니
비 오는 밤
사랑의 전당
이적(異蹟)
아우의 인상화
코스모스
슬픈 족속
고추밭
달같이
장미 병들어
투르게네프의 언덕
산골 물
자화상
소년
3부 번민과 갈등의 시기 1940~1942
위로
병원
팔복(八福)
간판 없는 거리
무서운 시간
눈 오는 지도
새벽이 올 때까지
십자가
눈 감고 간다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바람이 불어
못 자는 밤
돌아와 보는 밤
또 다른 고향
길
별 헤는 밤
서시(序詩)
간(肝)
참회록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
봄
쉽게 씌어진 시
부록 - 윤동주 산문
달을 쏘다
별똥 떨어진 데
화원에 꽃이 핀다
종시(終始)
윤동주 시 이해를 위한 참고문헌
윤동주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랑의 전당
순아 너는 내 전(殿)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고풍(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 눈을 내려 감아라.
난 사자처럼 엉클린 머리를 고르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청춘!
성스런 촛대에 열(熱)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
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험(峻險)한 산맥이 있다.
―
이 시가 1938년 6월 19일에 완성된 것이라면 이 시기에 쓰인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순’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자신의 감정과 사랑의 순수성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험난한 미래에 대한 각오까지 의연하게 표현했다. 21세 젊은 대학생의 순정한 내면을 시적인 화법으로 표현했기에 이 시기의 대표작이고 윤동주 일생의 걸작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사전 학습도 없이 이러한 걸작이 불시에 도출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창작의 순연한 불길은 예기치 못한 순간 뜨겁게 타오를 수 있으니 그의 창작 원고에 기록된 이 작품의 순도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 순이와 내가 사랑의 전당에 함께 들어온 것은 맞지만, 너는 삼림 속 아늑한 호수로 남아 있어야 할 존재이고 나는 준험한 산맥을 넘어서야 할 사람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동행할 수는 없다. 너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나는 시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 있다. 윤동주는 자신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운명적으로 직감한 것 같다. 그러한 처지에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여 상대를 시련의 길로 동참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홀로의 사랑을 지키며 상대를 삼림 속 아늑한 호수의 상태에 두고자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연희전문학교 1학년에 다니는 21세의 청년 윤동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의 기념비적인 서시가 탄생했다.
소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이 시를 읽으면 윤동주가 얼마나 해맑은 감성을 지닌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일제 말에 옥사한 시인이라는 선입견에 가려 보지 못했던 윤동주의 온화한 내면과 유연한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맑은 마음과 순정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는 어두운 현실에 그토록 괴로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했으며 결국 시대의 질곡 속에서 죽음의 길로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순수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순결한 자아의 존재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