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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01876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3-08-16
책 소개
목차
서문: 백석 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시집 『사슴』 이전 발표 작품
정주성定州城
산지山地
늙은 갈대의 독백
나와 지렁이
시집 『사슴』 수록 작품
가즈랑집
여우난골족族
고방
모닥불
고야古夜
오리 망아지 토끼
초동일初冬日
하답夏畓
주막酒幕
적경寂境
미명계未明界
성외城外
추일산조秋日山朝
광원曠原
흰 밤
청시靑柿
산비
쓸쓸한 길
석류
머루 밤
여승女僧
수라修羅
비
노루
절간의 소 이야기
통영
오금덩이라는 곳
가키사키柿崎의 바다
정주성定州城
창의문외彰義門外
정문촌旌門村
여우난골
삼방三防
시집 『사슴』 이후 발표 작품
통영
오리
연자간
황일黃日
탕약湯藥
이즈노쿠니미나토 가도伊豆國湊街道
남행시초南行詩抄 1: 창원도昌原道
남행시초 2: 통영
남행시초 3: 고성가도固城街道
남행시초 4: 삼천포
북관北關
노루
고사古寺
선우사膳友辭
산곡山谷
바다
단풍
추야일경秋夜一景
산숙山宿
향악饗樂
야반夜半
백화白樺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석양
고향
절망
개
외갓집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삼호三湖
물계리物界里
대산동大山洞
남향南鄕
야우소회夜雨小懷
꼴뚜기
가무라기의 낙樂
멧새 소리
박각시 오는 저녁
너먼집 범 같은 노큰마니
동뇨부童尿賦
안동安東
함남 도안咸南道安
서행시초西行詩抄 1: 구장로球場路
서행시초 2: 북신北新
서행시초 3: 팔원八院
서행시초 4: 월림月林장
목구木具
수박씨, 호박씨
북방에서
허준許俊
『호박꽃초롱』 서시
귀농歸農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촌에서 온 아이
조당澡塘에서
두보나 이백같이
산山
적막강산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칠월 백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시 이해를 위한 참고문헌
백석 연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러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아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두 던져 버린다
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커다란 소리로
―매지야 오너라
―매지야 오너라
새하러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 굴을 아배와 내가 막아서면 언제나 토끼 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 오리치: 오리 잡는 올가미. 「여우난골족」에도 나온 시어다.
• 동비탈: 동둑(크게 쌓은 둑)의 비탈.
• 동말랭이: 동둑 마루. ‘말랭이’는 ‘마루’의 방언.
• 시악恃惡: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리는 심술.
• 버선목: ‘버선목’은 원래 버선이 발목에 닿는 부분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냥 ‘버선’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 대님오리: 대님끈. 한복 바지의 발목을 졸라매는 끈을 ‘대님’이라고 하는데 거기 다시 ‘오리’(올)라는 말을 붙였다.
• 행길: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란 뜻으로 구어적으로 쓰이는 말. ‘한길’과는 다르다.
• 엄지: 짐승의 어미. 「주막」, 「황일」에도 나오는 시어다.
• 매지: 매애지. ‘망아지’의 방언(평북, 함경).
• 새하러: ‘나무하러’(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거나 주워 모으다)의 방언.
• 치워: 지워져. 얹혀.
***
어린아이에게 아버지는 집안의 든든한 지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 놓고 응석을 부릴 수 있는 다정한 벗이 되기도 한다. 이 시의 아버지는 화자인 아들과 재미있게 장난을 벌이고 아들을 놀리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정겨운 사랑을 베푸는 자애로운 존재다. 아들의 심술은 아버지가 그렇게 너그럽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장난기 어린 재롱이다. 제목이 뜻하는 대로 이 시는 오리, 망아지, 토끼에 얽힌 아버지와의 이야기다. 원본 『사슴』의 표기를 보면 이 시의 제목이 「오리 망아지 토끼」라고 분명히 띄어쓰기가 되어 있다. 시인은 세 단락의 얘기를 통해 아버지의 정 많고 어진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1연은 오리 잡는 이야기다. 한쪽에 무논이 있고 반대쪽에는 개울이 있으며 그 사이에 동둑이 있다. 오리는 개울과 무논을 오가며 먹이를 찾는다. 아버지는 오리 잡는 덫을 놓으러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되었는데 소식이 없고, 그새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뜨리며 개울 쪽으로 도망가 버린다. 동마루에서 이것을 목격한 나는 오리 달아난다고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지만 소용이 없다.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라는 말은 아버지를 부르며 안타까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공연히 심술이 난 나는 오리를 놓친 것이 아버지 탓이라는 듯 아버지의 신발과 버선과 대님을 개울물 쪽으로 던져 버린다.
2연은 장날 아침의 장면이다. 장꾼들의 행렬이 지나갈 때 어미 말을 따라가는 망아지가 보이자 나는 아버지에게 망아지를 갖게 해 달라고 떼를 쓴다. 이것은 물론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야단치지 않고 망아지가 지나가는 길을 향해 “매지야 오너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런다고 해서 망아지가 올 리가 없다. 다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망아지를 불러 주려는 듯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이고, 그것이 소용없음을 아는 아들은 더욱 심술이 나서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아이의 행동이 제시되지 않고 연이 끝났지만 우리는 다음 장면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도 아버지의 너그럽고 유머러스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3연은 산에 가서 토끼를 잡는 이야기다. 아들은 나무하러 산에 가는 아버지의 지게에 올라앉아 함께 산으로 간다. 아들은 나무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토끼를 잡을 생각뿐이다. 아들의 청에 못 이겨 아버지도 토끼 사냥에 나선다. 토끼는 맞구멍을 뚫고 사는 습성이 있어서 굴 한쪽에서 몰면 반대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토끼도 약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토끼가 ‘언제나’ 내 다리 아래로 달아났다는 말이 재미있다. 동작이 굼떠서 언제나 토끼를 놓치는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앞의 「고야古夜」처럼 과거의 회상인데 마치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현재형으로 서술했다. 「고야」의 경우는 외딴 산골이라는 특정한 상황과 특이한 시어가 나오기 때문에 과거의 일이라는 느낌이 드는 데 비해, 이 시는 바로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을 준다. 그것은 이야기가 주는 친밀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은 누구든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화자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즐거움의 반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어떤 성과를 얻지 못한 놀이일지라도 놀이 자체가 무한히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이 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천진한 행동으로 일깨워 준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여성』 3권 3호, 1938. 3.
***
• 출출이: 뱁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입춘」(『조선일보』, 1939. 2. 14)에도 나온다.
• 마가리: 오막살이.
• 고조곤히: 고요하게, 조용하게.
***
우선 이 시의 첫 행에 나오는 “가난한 내가”라는 구절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가난한”이란 어휘를 시의 맨 앞에 자신을 소개하는 수식어로 제시한 것일까? 문맥으로 볼 때 이 말은 그다음 행에 나오는 “아름다운 나타샤”와 대응된다. 즉 “가난한 나”와 “아름다운 나타샤”의 이항 대립이 성립한다. 세속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풍족한 생활 조건이 필요한데, 화자는 가난한 처지이기 때문에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는 것은 세속의 논리로 볼 때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고, 그 때문에 슬픔을 자아내는 일이다. 그러한 비극적 정황에 호응하는 것이 “푹푹” 눈이 내리는 정경이다. 화자는 마치 가난한 자신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에 호응하여 눈이 내리는 것처럼 서술했다. 세상을 완전히 덮어 버릴 듯 내리는 눈은 가난한 화자가 처한 비극적 정황의 참담함과 가난 속에 유지되는 마음의 순결성을 동시에 암시한다.
나타샤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사랑의 성취를 기약할 수 없는 화자는 푹푹 내리는 눈에 마음을 달래며 소주를 마신다. 소주에 점점 취해 가며,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서 마가리(오두막집)에 살자고 독백한다. 여기 나오는 당나귀는 그 동물이 지닌 유순한 성질 때문에 백석이 여러 지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로 지칭했는데, 굳이 “흰 당나귀”라고 한 것은 푹푹 내리는 눈과 호응하여 내면의 순결성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일 것이다. 가난한 화자의 처지에서 아름다운 나타샤와 살 수 있는 길은 산골로 숨어들어 가 산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선택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은 부분은 3연이다. 이렇게 푹푹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며 나타샤를 생각하자 어느새 화자의 내면에 나타샤가 찾아와 무어라고 고조곤히(조용히) 이야기를 한다. 나타샤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나타샤의 속삭임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산골로 가는 것이 세상에 져서 쫓겨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더러워서 능동적으로 버린다는 말을, 화자가 하지 않고 나타샤가 이야기한다는 데 이 대목의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나타샤가 산골로 가자는 화자의 요청을 수락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 행위가 지닌 의미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내가 나타샤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타샤도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런 까닭에 4연에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라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 이렇게 사랑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축복하는 듯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운다고 표현했다.
화합과 축복의 장면으로 시가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랑의 화합은 현실의 지평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몽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언제까지나 눈이 푹푹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혼자 소주를 마시며 꿈에 젖어드는 일도 일정한 시한이 있는 법이다. 눈이 그치고 술이 깨면 여전히 ‘나는 가난하고 나타샤는 아름다운’ 상태에 그대로 있다. 현실의 국면 위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선명한 윤곽으로 노출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로 세상을 버리고 산골로 숨어들 수도 없는 일이다. 시의 문맥은 몽상의 아름다움을 펼쳐냈지만 현실의 국면에는 여전히 갈등과 고뇌가 현존한다. 여기에 시인 백석의 괴로움이 놓여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만주행은 그가 이 시에서 기획했던 ‘깊은 산골로 가서 마가리에 사는’ 일의 현실적 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