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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27104
· 쪽수 : 120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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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해 가을 하늘은 유난히 두텁고 어두웠다. 오존층 위로 수도 없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이 수명을 다한 채 하늘을 빽빽하게 메운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우주 쓰레기들로 가득 찬 하늘은 더는 푸르지 않았다. 뭉게구름과 안개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노이즈가 가득 낀 사진을 보는 것처럼, 한 꺼풀 덧씌운 것처럼 세상은 뿌옇고, 옅게, 그렇게 보였다. 때문에 농작물은 잘 자라지 않았다.
이렇게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태어난 나는, 왜였을까. 불행히도 나는 유화를 사랑했다. 이우환을 이쾌대를 윤형근을 사랑했다. 유화를 사랑했으므로 미대를 나왔다. 미술을 하기 전, 풀을 잔뜩 먹인 빳빳한 하복 교복을 입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양손에는 엄마를 졸라서 산 싸구려 이젤과 팔레트와 붓을 들었다. 붓은 몇 번만 세척제에 담갔다 빼면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 일쑤였다. 캔버스의 호수는 늘 작았다.
미아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신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한동안 말을 섞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말 대신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학교 내부의 아나키스트였다. 강압적인 수업을 거부하기 위해서 테러를 감행한다며 글루건으로 교내 모든 강의실의 열쇠 구멍을 막아버린 사건은 유명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행에도 미아는 살아남았다. 교수들이 그녀의 작품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특히 크리틱 시간은 미아를 위한 찬사의 시간에 불과했다. 모두가 둘러앉아 고해했다. 미아의 작품 아래서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못난지 고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