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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150850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24-09-23
책 소개
목차
서문 | 최수연•5
1부 산촌 명상 수필
쪽판 외다리•12
설악산 토왕성폭포•17
붓다가야 나이란자나강•22
모래불 해돋이•30
전쟁과 암소•38
스승과 제자•45
지리산 천왕봉•51
응고롱고로 크레타와 하마 물탕치는 소리•58
시를 들으러 동쪽으로 간다•67
치악산 명상길•76
팔순 청년•84
마등령 앵초 꽃밭에서 하룻밤•93
소슬한 암자 한 채•101
무소뿔에 기대 홀로 노닐며•110
아내와 손잡고 한라산에 오르던 날•119
다섯 소녀들과의 아주 특별한 만남•128
고비 10년•137
새벽 명상•145
연꽃바다 연꽃향기와 백제금동대향로•154
도토리 우주•163
히말라야 모디콜라강변 그린밸리의 감자 맛•172
폭포와 저녁샛별•182
백두폭포와 쑹화강 은어도루묵•189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199
2부 산악 수필
음력 열사흘 달과 대청봉•212
천지 조응•216
용이 움켜잡고 호랑이가 후려치듯•221
상사암에서 제석대까지•226
해치가 불을 토하듯•230
땅 뚜껑을 열고 불쑥 솟구쳐 올라•235
칠천만 캐럿 금강보석•240
쌍봉낙타 한 마리가 북으로•245
산정에는 겨울 무지개가•250
천년 향나무 존자에 어린 불광•255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261
3부 시가 있는 산문
이슬 같은 시•268
고래 구경•270
시 탄생의 비밀-매봉산 산노인•274
새벽 샛별은 단독자다•279
수선화•284
황혼이 자아내는 장엄 앞에서•288
갈대피리•291
아가위나무가 아가위꽃망울을 터뜨리듯•295
우주에 피릿대를 꽂아 불며•302
반딧불이의 밀월여행•307
시와 산•311
우주일성(宇宙一聲)•315
불청객 익모초•318
가죽 주머니와 쇠 주머니•322
갈바람 스치운 듯•328
사월은 돛단배처럼•335
작가는 하나의 공화국 •338
그리운 속초•341
설악산과 한계산•344
청초호반 시공원•347
빗살연국모란꽃문•350
산의 주인은 없다•353
속초문단의 태동기 시절•356
영랑호와 경포호•360
우수 무렵에 생각나는•364
백 원이면 하룻밤•368
재옥이와 물주전자•372
청산이 좋아서•375
모니터와 석가•379
섬산에서 문득 나를 엿보다•382
길고 긴 여름날의 끝자락•386
시월도 벌써 시들어•390
법수치•394
그림자 없는 나무 •398
선(禪)•402
아버지의 눈물•406
무금선원(無今禪院)•410
점봉산 흘림골•414
명품 설악산•418
속초에서의 첫 하룻밤•422
속초, 2010년•426
열차 타고 한라산으로•430
중도(中道)•434
영금정 파도•438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는 것은•442
한겨울 복판에서•447
16년 만에 전한 사진 한 장•451
언 아기 손•455
백공천장(百孔千瘡)•460
손에 대한 낭만적 사유•465
사랑방 토치카•470
산양•475
늦은 도시락과 나뭇잎 하나•480
축사(만해대상)•491
참외 생각•494
우리 어머니•499
공룡능선•505
공출과 우차 쇠바퀴와•510
처음 비행기를 타고•515
기쁨의 싹•522
매화꽃 보러•526
내 왼쪽 오금팽이의 상처 자국•531
모과의 위대한 모성•535
신수의 깨달음과 혜능의 깨달음•539
소나무 청산•543
방생•548
설악산은 우리와 함께 가는 길손이다•552
돈명헌(頓明軒)•556
꿈속을 헤맨 것 같아 올해도•561
‘마음’이라는 물건•566
어머니의 밥상•571
명창 안숙선과 2월 폭설•575
한국산악박물관•580
4부 시론
시가 도다•586
소슬한 정신의 노래•595
사유의 몸짓•599
시의 돌팍길은 미묘하고도 멀어•603
시는 사유의 향기•625
최명길 시인의 연보•631
후기 | 김영탁•638
저자소개
책속에서
1부 산촌 명상 수필
쪽판 외다리
한 길이 있다.
길은 그로부터 출발해 그에게서 끝난다.
그게 유심,
입하를 넘어서자 산빛이 갑자기 달라졌다. 드믄드믄 박혀 있던 연노랑이 연초록으로 바뀌는가 싶었는데 연두 일색이다. 연두가 주조색을 이루었다. 나뭇잎들이 애티를 벗어나 제법 제 모습을 갖추었고 빳빳하던 나뭇가지가 유연해졌다. 물을 먹은 탓이다. 유연한 가지에 바람이 와 살랑댄다. 잎을 엽서처럼 매단 가지가 바람에 실려 파도타기를 한다. 파도타기를 하며 논다. 한 나무에 바람이 실리면 곧장 이웃 나무로 옮아간다.
바람 소리도 달라졌다. 알몸에 부딪혀 그대로 튕겨 나가는 쇳소리가 아니라 젖먹이가 엄마 젖을 빠는듯한 소리를 낸다.
산빛뿐 아니다. 물빛도 바뀌었다. 연두 이파리 그림자가 담겨 지은 물빛에 생기가 돈다. 메말라 까칠했던 물이 후덕해지고 풍만해졌다. 계곡을 치밀고 올라가는 버들치에게도 속도가 붙고 산천어가 수심을 낮추며 물아래서 어른댄다. 물빛이 바뀌자 물소리도 달라졌다. 카랑카랑한 소리가 아니라 청아하다. 계곡에는 겨울 동안 쌓여있던 나뭇잎들이 썩으면서 뱉어내던 특유의 냄새가 가시고 싱그러움이 코끝에서 맴돈다. 이른바 생동 기운으로 충만하다. 이 기운은 어디서 오는 걸까?
보이지 않는 길이 그들의 길이다. 천지자연은 보이지 않는 이 길을 타고 오고 간다. 연두도 초록도 그 길을 타고 온다. 빳빳함도 유연함도 그 길을 타고 오고 가고 천둥 번개도 그 길을 타고 오르내린다. 나는 그것을 산과 물을 보며 느낀다. 우주의 조그만 별 이 지구에서 제법 큰소리를 치고 사는 사람들 세계에서는 먹고 먹히는 싸움박질이 그칠 새 없고 인간이 인간을 발가벗겨 농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천지자연이 만들어 놓은 길은 조금도 허물어지거나 막히지 않고 순하게 온다. 가고 온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은 충격과 비탄을 안겨주기도 하고 가끔은 비애와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사범 1학년 때였다. 학교와 우리 집은 5㎞ 남짓, 왕복 10㎞의 이 길을 나는 매일 걸어 다녔다. 우리 집은 외곽 농촌이어서 도회 중심을 거쳐 용강동 변두리에 있던 학교까지는 꽤 멀었다. 우선 집을 나서면 도둑고개에 이르게 되고 거기서부터 조금 넓은 도로인 소나무숲 사이 신작로를 구불구불 걸어 나와 앞고개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남쪽을 잇는 강릉의 남북간선도로와 잠시 만나 일제 강점기에 철길 공사를 하다가 만 철길을 따라 한참을 가고, 다시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노암터널을 빠져나와 앤땔길에 들어선다. 노암터널은 6·25 때 폭격을 맞아 구멍이 숭숭했고 떨어져 나간 시멘트 쪼가리가 여기저기 뒹굴었다. 앤땔은 다랑이논들이 꽉 차 있었는데 논이 끝나는 곳에 남대천변이 가로놓여 있었다.
남대천변은 해마다 음력 오월이면 단오제로 원근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 내 기억 속의 그곳은 하얗다. 단오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 옷이 하앴고 알모래가 하앴다. 여기저기 머리를 쳐들고 있는 자갈들이 하앴고 자갈돌을 좌우로 비켜 세워 낸 오밀조밀한 모랫길이 마치 옥양목 댄님처럼 하얗게 풀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노라면 백두대간 능경봉과 대관령에서 발원하는 남대천 물이 사시사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 흐름 위에는 통나무 쪽판 외다리가 놓여 있었다. 길이 30여 미터가 될까 하는.
다릿발은 예닐곱 해쯤 묵은 소나무를 베어 가운 말뚝을 쪽판 이음새마다 네 개씩 기둥처럼 박아 만들었다. 그 다리를 건너서면 천변둑이 있고 둑을 넘어서면 바로 시가지다. 그리고 이 시가지를 한참 또 가면 강릉에서 유일하던 네거리와 연결되고 임영관이라 쓴 제액을 높다랗게 매단 객사문을 오른쪽으로 끼고 다시 급하게 경사를 치고 올라가면 방송국이 나타난다. 그 곁 황토 흙밭에 갓 지어 하얀 분칠을 한 학교가 넓은 운동장을 안고 북녘에서 남녘을 향해 그 무슨 거대한 알처럼 놓여 있었다.
알이라 했지만 그건 정말 알 같았다. 사범학교는 남녀공학이라 겨울이면 남학생은 까만 교복을 여학생은 하얀 카라가 나풀거리는 역시 까만 교복을 착용했는데 들락거리는 모양이 꼭 알문을 열고 들락거리는 제비나비 애벌레들 같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오고 가던 그 길 쪽판 외다리에서였다. 나는 학교가 파해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한 여학생이 나를 향해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었다. 외나무다리라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리 한 중간쯤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몹시 부끄럼을 타던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핏 보니 그 여학생은 내 국민학교 때 같은 교실에서 같이 공부하던 얼굴이 곱스라한 그 애였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그 애는 내가 마음에 두고 가끔씩 그려보던 바로 그 애였기 때문이었다. 그 애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멈칫거렸다. 그 애는 이웃 여고에 다녀 국민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꼴이었는데 하필 쪽판 외나무다리에서였다.
길은 가야 했기에 외나무다리라고 하지만 나는 계속 걸었다. 그 애도 계속 걸어왔다. 둘은 다리 거의 가운데서 만났다. 우리는 다리 이음새를 골라 겨우 비키며 서로의 몸이 닿을 듯 마주했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밀착하기에는 주먹 하나 들어갈 사이였는데도 나는 그녀의 몸기운이 확 풍겨 당황했다.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는 했으나, 다리를 막 벗어날 때쯤 문득 내가 돌아섰다. 그 애도 돌아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웃는 듯 놀란 듯, 그러나 그뿐이었다.
시간은 질주하듯 흘렀다. 몇 년 전 59회 동기생 모임이 있었다. 59회란 59년도에 졸업한 강상고 강농고 강여고 강릉사범 등 네 개 학교 졸업생 모임인데 나는 그 모임에서 축시를 하게 되었었고 무엇보다 그 애가 궁금했다.
시를 읽은 다음 나는 반백이 다된, 그러나 내 눈에는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중년 부인들이 둘러앉은 한 테이블로 찾아가 슬쩍 물었다. 그분 혹시 아시나요. 아, 그 애, 그 애는 다른 길로 떠난 지 오래인걸요.
어떤 사람이 도의 집을 지었다.
생나뭇가지를 구불어뜨려
그래 어디까지 가야 그곳인가
오름길이 숲속으로 숨는다. 오솔길은 겨울에는 환히 밝아 있다가 초여름에 접어들면 숲으로 가리어진다. 잎가지가 뻗치어 빈자리를 채운다. 앞사람이 금방 지나갔는데도 흔적이 없다. 이파리만 잠시 팔랑거리다 만다.
산 너머 산은 연두가 아니라 청산으로 불쑥 솟구쳐 있는데.
『정신과표현』, 2004년 7·8월호.
설악산 토왕성폭포
설악산에는 토왕성폭포가 살고 있다. 높이가 자그마치 320m. 앞에 서면 아찔하다. 설악산 화채능선 칠성봉에 걸려있다. 내가 이 폭포와 사귄 지도 꽤 여러 해가 지났다. 산세가 험준해 만나러 가는 길이 만만치 않지만, 나는 이 폭포를 아주 좋아해 올해에만도 열대여섯 차례나 다녀왔다. 갈 때마다 모습이 달라 가슴을 뛰게 한다. 한겨울 토왕성폭포는 얼음기둥이 벽공을 찌른다. 글씨에 미친 어떤 자가 있어 장목붓을 꽉 잡고 일필휘지로 내리갈긴 것 같다.
흔히 이 땅의 3대 폭포로 설악산 대승폭포, 개성 박연폭포, 금강산 구룡폭포를 들어 토왕성폭포는 그 축에 끼이지도 못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누군가가 3대 폭포를 정할 때 토왕성폭포를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그만치 깊고 은밀한 곳에 몰래 숨어있다. 아니면 다른 폭포 보기 미안스러워 토왕성폭포가 일부러 빠져 주었거나.
하지만 후일 토왕성폭포를 동양 제일의 폭포로 꼽아두었으니 폭포 쪽에서도 서운하지는 않을 것이다. 토왕성폭포야 이렇건 저렇건 상관할 바 없겠으나 그만한 위용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은 폭포이고 보면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물아 물아, 폭포야. 너는 하루 종일 내리뛰기만 하느냐! 뼈산 바위 벼랑을 가파르게 가파르게 소리치며. 황홀한 몸 폭포로. 가파를수록 더욱 청아한 목청, 고요히 번지는 아우성으로.
나는 토왕성폭포를 유달리 자주 찾는다. 그것은 순전히 폭포가 내뿜는 알 수 없는 기운과 쏟아지는 물과 산세가 어울려 자아내는 중중무진의 아득한 미감 때문이다. 폭포가 가까워지면 송글거리던 땀방울이 스러지고 어떤 신성한 기운이 몸뚱어리를 휘감아 치기 시작한다. 바위벽에 부딪혀 흩어지고 고꾸라지면서 우산처럼 펴지는 물방울들이 사방에 가득하고 안개로 자욱한 벼랑에 나 또한 하나의 물방울이 되거나 안개가 되거나 하여 내가 폭포인지 폭포가 나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가 얼떨떨해지기도 한다.
그때쯤 벼락 치듯 폭포 소리가 확 밀어닥친다. 나는 마음을 고정하고 숨을 고른다. 폭포가 내 숨을 타고 들어섰다 나섰다 한다. 가끔씩 쇠딱따구리 소리도 날카롭게 폭포 소리를 뚫고 들어오는데, 폭포 소리 속의 그 여린 소리가 또렷하고 깨끗하게 들려오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폭포 소리는 잠시 밀쳐두고 깨끗한 그 여린 소리를 따라 잠시 한 마리 쇠딱따구리로 변한다. 죽은 나무토막을 쪼으며 생존을 위해서는 미처 생명이 끊어지지 않는 나무토막도 내리찍어본다. 산천을 훨훨 날아올랐다가 조그만 둥지 속에 들어앉아 알을 품어도 보다가 눈을 부릅뜬 어미 쇠딱따구리에 쫓기어 얼른 내 자리로 돌아온다.
폭포가 내뿜는 물안개는 구름이 되어 벼랑 중허리에 걸리고 그건 가끔 오색빛깔을 내며 한참씩 발광하다가 사라진다. 나는 더욱 안으로 들어가고 폭포가 내 곁에 있는지 없는지 어떤 경계에 걸려들어 저쪽으로 넘어섰다 이쪽으로 넘어섰다 한다. 희열이 온몸을 휩싸 돌고 겁이 나 펄쩍 정신을 가다듬어 현실 밖으로 뛰쳐나오면 거기 천야한 절벽이 나를 떠받들고 있다. 나는 아슬한 그 위에서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고.
한번은 폭포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폭포를 마주한 동녘 봉우리를 골라 종일 폭포만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그냥 큰 폭포 하나가 걸려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토왕성폭포를 대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걸려있는 게가 아니라 폭포의 조화로 주위의 여러 바위봉우리들이 일그러졌다 볼록해졌다 혹은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모가지를 빼내 흔들다 하는 것이었다.
실은 정오까지만 해도 폭포는 그냥 무심히 거기 있어 나와는 무관한 듯했다. 정오를 넘어서자 상황은 달라졌다. 한가롭게 이쪽을 보았다 저쪽을 보았다 하던 해가 서녘 봉우리로 기울기 시작하고 때맞추어 그때까지 정말 바위처럼 떡 버티고 있던 바위봉우리들이 용을 써대며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저 두서너 봉우리만 삐쭉이 솟구쳐 올라 있던 바위봉우리 틈에서 수많은 다른 바위봉우리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늘 어슴푸레한 물방울 그늘 장막 속에 가려 감추어져 있던 봉우리들이 떨어지면서 내뱉는 해의 그 그윽하고도 예리한 빛살을 받아 머리부터 조금씩 드러났던 것이었다. 그건 마치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 새벽을 맞는 시각, 비늘을 털며 여명을 안고 솟아오르는 수많은 산봉우리 같았다.
불침번을 섰던 날 새벽 잡목 우거진 산자락에서 조금씩 조금씩 치밀고 오르던 병사들의 투구가 저렇던가.
한데 그건 집선봉과 노적봉이 굽어져 움푹 들어간 사이로 해가 깊이 빠지는 순간 절정을 이루었다. 저항령에서 내어 쏘는 빛살이 안락암 무학송 솔이파리를 거쳐 이미 낮아진 허공 한 자락을 물고 이쪽 능선 가까이 와서는 냅다 예의 그 바위봉우리군들을 들이치는 것이었다. 바위들은 그 빛살을 되받아치면서 청자색으로 변했다 황금색으로 변했다가 반달 테를 두른 반달곰빛깔로 변했다가 마침내 깡말라 형해로만 웅크려 앉아 말할 수 없는 측은함을 불러일으켰다. 알몸뚱어리를 몽땅 드러내 보여주고 또 어쩌려고 그러는지.
바위와 바위 사이는 몇천 년일까, 억센 세월의 갈고리가 훑고 또 훑어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저 도저한 깊이, 그 깊이를 따라 파동치는 폭포 소리. 그러고 보니 산은 수많은 바위울림판과 바위봉우리종젖을 매달고 거대한 종이 되어 미묘하고도 독특한 소리를 연신 퍼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폭포가 토해놓는 생명의 소리였던 것이다.
어떤 이가 물방울회초리를 치켜들자
천지만물이 벌떡 일어나 뻐들껑거리고
무지개 아가씨가 싱글벙글
나 가랑잎 노 저으며 폭포 타고 노네.
아니다, 아니다. 저건 바위가 아니라 연잎이야. 연잎이 끌어안아 보듬은 폭포야. 내가 중얼거리는데, 어스름이 동해에서 막 건져 올린 문어발처럼 기어나와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랜턴을 켜려 몸을 굽히고.
『정신과표현』, 2004년 9·10월호.
*서문
월기망(月幾望)
밤하늘을 보니 거의 보름달이다. 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 최명길 시인(1940년~2014년)이 떠나가신 지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나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아이인 채로 멈춰 있었다. 최명길 시인은 시를 쓰다 말고 어디를 가셨는지 오시지 않는다.
만해·님 시인상(2014년 4월 17일) 수상소감에서 최명길 시인은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시의 탑 하나를 짓지 못했다. 이제라도 마음을 사리고 앉아 ‘황금의 꽃’ 같은 언어의 잎사귀로 작은 시의 오두막 한 채를 지어야겠다. 그게 하늘이 귀엣말로 속삭이는 마지막 당부가 아닐까 한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시인은 한 달도 안 되어 그 마지막 당부를 가슴에 안고 영원히 가셨다. 대자연의 순환 속으로 흘러가셨다. 나는 시의 오두막을 완성하러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오실 것만 같아 서재의 불을 끄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시인을 그리워하는 문인들과 유족이 뜻을 모아 유고 시집을 하나씩 내면서 시인을 살아서 오게 하였다. 모두 5권의 유고 시집과 타계 전후의 시집 각각 7권과 5권에서 발췌한 시선집 1권을 출간하였다.
113편의 이번 산문집은 우리에게 들려주는 최명길 시인의 이야기이다. 시 이야기, 삶 이야기, 산 이야기이다. 시인의 삶, 양어깨에 시와 산이 있었다.
년도 별로 정리하고 보니 최명길 시인의 전 생애가 펼쳐졌다. 산문에도 시가 있었다. 시인은 다름 아닌 시였다. 시를 엄중히 받들며 한 편의 깨달음의 시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산을 걸으며, 온몸의 언어와 육신과 정신을 남김없이 시에 바쳤고, 뼈를 불살랐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시를 쓰셨고 그 자세는 맑았다.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를 직접 놓고 오르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시의 바구니에 최후의 한 방울로 떨어뜨렸다.
시인은 “돌아보니 이 세상은 모두 설산 같은 감동이었다(시 「감동」)”고 하였다. 하지만 만월(滿月)의 아름다운 모습을 훤히 드러내지는 않고,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모습(月幾望)으로 살아온 시인이, 설산에 맑게 노닐다가(淸遊) 남긴 새 발자국이야말로 더한 감동으로 남는다.
후산 최명길 시인이 세상에 남기고 간 시와 삶 이야기가 최명길 시인을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새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라, 최명길 시인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출간을 위해 애써주신 황금알출판사의 김영탁 주필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보름달이 떠오른다.
2024년 8월
딸 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