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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68366466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3-01-05
책 소개
목차
글을 시작하며
1장 철학이 있는 삶
철학이 그리운 시절
나 돌아갈래!
방생
어부와 그물질
자존심
귀의
졸혼
2장 나를 아는 삶
삼위일체(三位一體)
마음잡이
허상의 나
마음공부
진짜 나
나 없음의 진리
진면목(眞面目)
3장 목적이 있는 삶
왜 목적인가?
목적과 목표
왜 또 그래!
목적을 인식하는 것
목적의 품격
거둔 것의 크기
주인의 자격
4장 어른이 되는 삶
금강경
재벌 회장의 질문
행복
불행
종교 유감
유감 출입금지
99% 같다는 데도
5장 자연임을 아는 삶
물광 피부
대나무 숲
자연역행 재해
재이용수 단상
저작
단비
얼음이 트는 소리
6장 지금 여기의 삶
모르는 게 약
전화로 상실한 기능
노후 준비
마스크와 화이자
화엄이
알레르기 비염
목욕재계
7장 지혜로운 순리의 삶
독생자(천상천하 유아독존)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예지능력(豫知能力)
폐가에서 만난 불심
기도(祈禱)와 궤도(祈禱)
철부지와 해탈
성찰의 시간
글을 마치며
저자소개
책속에서
두 분이 안 계셨을 상황을 대비하여 파묘를 해서 화장한 후 산골을 하고 산소를 정리하겠다는 의견이시다.
마을의 다른 집들도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처리하는 방법이 이동식 가스버너를 이용하는 보기 흉한 것이라서 후손 된 도리로 선뜻 호응하기가 어렵다.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사위지만 요즘이야 당연히 친자식과 다르지 않은 시절이니 의견을 냈다. “봉분을 없애고 기념식수로 동백이나 편백을 심으면 어떻겠는지요? 산소가 있는 곳은 해상국립공원 지역이니, 개발의 여지도 없을뿐더러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지 않을까 합니다.
자연으로 되돌린 것을 굳이 파헤치고 불태우고 하는 것은 어쩌면 조상님들에 대한 불효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나무가 잘 자라게 제초도 하고 거름도 주면 자연스럽게 수목장이 되지 않겠는지요?” 생소한 제안이 어디 한 번에 결정이 되랴만, 괜찮다는 의견이 개진도 되면서 좀 더 숙고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봉분을 없애고 기념식수를 하자는 안은 종친회의 총무로서 오랜 시간 ‘선산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한 결과다. 종친회 선산 관리도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이다. 추모공원으로 옮기고 선산을 처분한다, 선산에 납골시설을 만든다, 자그마하게 묘역을 재조성한다 등 여러 안건이 나왔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내놓아진 안들은 모두가 우리들의 편리함과 합리성을 내세운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의견을 주실 리는 없다.
귀신 꼴로 붉으락푸르락하는 그놈이 문제라는 걸 안다. 귀신은 물리치면 그만이다. 물리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귀신은 허깨비라서 착각에서 벗어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내 마음에 품은 것이 귀신임이 드러났다. 나는 없고 귀신만이 귀신놀음을 한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마음인가? 상대방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이러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 과거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임이 드러난다. 그 일을 해결해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자기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렸다. 배가 산으로 가버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부모가 아이와 벌이는 신경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상황이 다. 질풍노도의 아이들이다. 비포장도로를 마구 달리는 달구지가 포장도로를 달리는 고급승용차이길 바라면 곤란하다. 이런 마음은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렵다. 내 아이는 달구지가 아니라는 걸 전제했으니 아이의 돌출행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금이야 옥이야 뒷바라지한 것이 억울하고 분하기가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문제인 것 같지만 진짜로 문제에 직면한 당사자는 자기 자신이다. 화가 나 있는 것도 자기 자신이고, 억울하고 분한 것도 자기 자신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판단하고 달래고 대화한들 둘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멀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이 지혜로운 어른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더더욱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움켜쥔 주먹에 기력이 다하는 순간, 그것들은 헐렁해진 손가락 사이를 비웃듯이 빠져나간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도적질을 당하는 고통만을 남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결말은 우려가 아니라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이런 결말을 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온 것인가? 삶에 있어서 거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60년을 살아온 지금, 나의 결과물은 무엇이며, 과연 그 결과물은 만족할 만한 것인가? 나는 무엇을 거두기 위해서 이렇게나 허둥대며 달려온 것일까?
나도 그렇지만 앞섰던 이들과 지금을 사는 모든 이들은 무엇을 거두려 했던 것이며, 거둔 것에 뜻과 의미는 찾은 것인지도 자못 궁금한 요즘이다.
곰곰이 더듬어 보면 살면서 거두는 것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지 싶다. 하나는 물질과 위치(자리, 명예 등)이고, 또 하나는 자기의 마음 덩어리다.
어쩔 수 없는 속물인지라 평가, 과시, 체면을 세우는 것에 매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삶이었다. 대이동을 하는 누 떼처럼 나 또한 한 마리 누와 같이 살았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펴보기만 해도 벼랑으로 떨어져 강물에 처박힌다는 것을 알았을 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