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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551008
· 쪽수 : 168쪽
· 출판일 : 2022-12-01
목차
5 시인의 말
1부 한여름 밤의 꿈
10 스토킹의 순간
11 노랑별꽃
12 춘몽
14 한여름 낮의 꿈
16 신의 눈물
17 단풍나무
18 몽유
20 기적이 생생하다
21 신기루 마을
22 청산별곡
23 멀미
24 돼지 저금통
25 우화등선
26 열대야
27 유월의 뻐꾸기
28 다운증후군 주의보
30 언젠가 푸르던 혹성의 비망록
32 샐러드 한 조각을 위한 경배
33 한여름 밤의 꿈
34 매미가 우는 이유
35 꽃의 비린내를 잡다
36 첫눈 내린 날 아침
38 신전
40 귀로
41 내 마음의 불시착
2부 절반의 얼굴
44 전지(剪枝)
46 신년
48 덜컹거리는 새해
50 아인쉬타인
51 안녕, 가을
52 몰래한 사랑
53 변절된 세상
54 꿈
55 벌새
56 세상의 모든 화장실은 닫혀있다
57 삶
58 화재출동
60 가면
62 잃어버린 노래
63 낯별, 코로나19
64 바바리맨
65 대리운전
66 고드름
67 은행을 털다
68 절반의 얼굴
70 목숨
71 떠도는 병
72 코로나 전성시대
73 인력시장
74 더위를 먹다
3부 지금, 우리는
76 지켜볼 일이다
78 허공장례
79 서투른 치매
80 길
82 불편한 똥구멍과의 화해
84 곰팡이
85 불륜과 로맨스
86 마른 장마
87 하루살이
88 거울
89 제비
90 춘설
92 12월
93 인생
94 노인
95 귀향
96 환상
98 불륜과 로맨스 2
100 희망
101 꽈배기
102 두 개의 우문
104 개표소
105 거울 2
106 붉은머리오목눈이의 투신
108 제비 2
110 플라스틱
4부 기억의 저편
114 아버지의 지게
116 아내를 읽다
118 눌러쓴 아버지
120 봄, 밤
121 이별
122 칸나
123 나비길
124 이(蝨)
126 연(鳶)
128 똥파리
131 자화상
132 뿌리
134 어머니의 강
135 형상기억합금
136 고려장
138 나를 위한 변명
140 자화상 2
142 퇴임사
143 진공청소기
144 추석
145 엄마의 양말
146 월식
147 너무 늦은 안부
148 왜 그랬을까
149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150 비상구
151 혹성의 비망록과 자아를 위한 처절한 몸짓 _손희락(시인·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스토킹의 순간
풀잎들, 아침부터 땀 흘리며
골짜기를 내달리는 바윗등에
한사코 매달리는 이끼들
나포되지 않는 오래된 바람의 속살과
나무뿌리에 새긴 문신으로만
동편 산맥들의 갈기를 쫓아 휘둘렸을
새들이 날개를 편다
빗살무늬 돌도끼를 추억하는
갑골문자 새긴 동굴 속
쇠북소리 점점 다가오고
세로로 접힌 여름의 등 뒤에서
휘파람새의 하염없는 한숨 소리 아뜩하고
다시는 불만 없을 아이들의 숨바꼭질 뒤로
떳떳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의 발바닥 같은
민낯의 주름만이
역사의 경계를 무너뜨릴 것이다
**신의 눈물
그것은 올 것이다
마침내 올 것이다
음습한 뒤란의 장독대를 넘어
무성한 소문 같은 황구렁이 허물을 지나
절룩이는 어둠 속에서도
줄을 세우는 병정 같은 대숲을 지나
도적처럼 올 것이다
그것은
밝고 환한 것의 등 뒤에서 올라오는 통증 같은 것
밤새도록 끈적끈적한 구들장을 들추고
부풀어 오르는 음모 같은 것
주저앉을 듯 내려앉은 먹구름 속에서
날카로운 쇳소리로 솟구쳐 오르는
천둥소리 같은 것
해거름 녘, 집 나간 아들
까치발로 기다리는 홀어머니
저벅저벅 다가오는 어둠을 향해
크엉크엉 짖어 대는 누렁이의
쉰 목소리로 기어이 올 것이다
**언젠가 푸르던 혹성의 비망록
느티나무에 걸려있던 피아노 한 대가
파열음을 내며 떨어진다
나팔을 불던 아이가 동굴 속으로 사라지고
깨진 거울 속으로 들어간 두꺼비가
파리 떼에 쫓겨 줄행랑친다
문턱을 넘던 파도가 미끄러져 물고기의 밥이 되고
널브러진 마천루 빌딩 사이로 총구를 내민
가면들이 설사를 한다
두 개의 검은 태양이 졸리운 듯 하품을 하고
쿨럭이는 애비 곁에서 발 없는 계집아이가 기도를 한다
뿌연 흙먼지 속을 뚫고 온 들개 무리들이
섬뜩한 눈빛으로 째려본다
테크노 벨리에 처박힌 비행선에서 신음처럼 노란 불빛을 토해내고
가슴에 구멍 뚫린 로봇이 풀린 태엽 같은 눈망울을 굴리고 있다
어린아이 울음소리 가느다랗게 늘어진
동굴 속 모닥불 사이로
검은 피를 흘리며 산모가 출산을 한다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서있는 어둠을 밀치고 들어서면
부러진 진열대 사이로
보존기간 표시 없는 고등어 통조림들과 함께
휴대용 산소캔 몇 개, 생수병 몇 개가 나뒹굴고 있다
언젠가 까마득히 먼 기적소리가 이명처럼 들리고
기적이라 쓰인 피난구가 빨갛게 깜박거리고
나는 허수아비처럼 비틀거리며
충혈된 눈으로 허공을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