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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551220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3-02-21
목차
작가의 말 – 4
외동할미 한이불 – 10
탱자나무집 현자 – 50
조운산경도朝雲山景圖 – 82
붙살이집 – 130
때 묻은 손 – 174
나경裸耕 – 204
사위를 찾아서 – 250
아버지 유류품 – 284
눈물을 찾아서 – 328
저자소개
책속에서
외동할미 한이불
외동할미 부음을 받긴 칠월 오후였다. 흐려서 바깥은 어둑했다.
외동할미는 아흔하나로 삶에 소임을 다했다. 그녀는 손끝으로 키운 나를 서러운 아이라 불렀다. 합당한 호칭이라 여겼다. 날 안쓰럽게 품어 길러내느라 노년에 고생깨나 했다. '뿌리 문화를 찾아서'란 주말 연재 기획 기사를 데스크에 넘기고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강원도로 떠나야 했으나 그 일로 지체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하강하는 15인승 엘리베이터에 몸을 밀어 넣었다. 혼자라서 그런지 폐쇄 공간이 오늘따라 유독 널찍해 보였다. 환풍기 기계음이 외동할미 숨결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의지할 곳을 찾듯 주변에서 뭔가 잡고 싶도록 손아귀가 허전했다. 하강하는 숫자가 소멸 지점으로 향하는 카운트 다운으로 느껴졌다. 불현듯 일생에 한번은 경험해 봐야 성숙해진다는 이른바 ‘이별고離別苦’에 부닥쳤음을 인지했고, 이내 내가 감당해 내야 할 몫임을 알았다. 밀폐 공간에서 외동할미와 닿았던 끈의 날실이 터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잇달아 천막 지붕에 괴었다가 물길 찾은 빗물처럼 외동할미와 연관된 일들이 머릿속에서 우르르 쏟아졌다.
정수리에서 한복판으로 갈라 내린 가르마 양쪽, 굵고 센 머리카락에 햇볕이 반사될 때 파르스름한 은백색 말갈기처럼 빛났다. 그 빛은 오랜 세월의 연륜에서 비롯된 눈부심일 터였다. 잔주름보다 세로로 깊게 패는 양쪽 뺨 주름진 얼굴이지만 살결은 새하얄 만큼 고왔다. 그러나 야무진 성격 탓인지 격전지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와 같은 기개는 흐른 세월도 앗아가지 못할 만큼 얼굴에 깊이 박혀 있었다. 주름 갈피에서 경상도 여인네 특유한 강퍅함을 엿볼 수 있었고, 커나가는 검버섯으로 헤쳐 온 삶의 두께도 어렴풋이 감지됐다. 또한 가시어리왕거미 발 같은 마디 긴 손가락은 살이 빠졌어도 외동할미의 근면성을 상징하듯 삶을 억척스럽게 일궈낸 쟁기로 보였다.
그 손끝에서 야무지게 만들어지던 이부자리와 옷가지들. 그런 품목들 가운데 유독 외동할미의 신념과 자긍심 상징인 ‘한이불’이 선연하게 눈앞에 밟혔다. 장롱 안에 반듯하게 접힌 한 벌의 한이불. 흐르는 세월과 무관하게 신줏단지처럼 외갓집 장롱 안에 자릴 잡고 있었다. 대기가 유리알처럼 맑았던 옛 시절, 한겨울은 물독이 얼어 터질 듯 혹독하게 추웠다. 한이불은 엄동설한의 웃풍 냉한을 막아내는 보온 구실을 톡톡히 했다. 비록 두꺼워서 무겁게 보이고 원색에서 오는 차가움은 있지만, 인간에게서 번지는 체온을 차근차근 솜 갈피에 품었다가 바깥 날씨가 꼭짓점을 치닫는 새벽녘이면 지그시 되돌려주곤 했다. 캐시밀론 이불처럼 화학 섬유질 사이로 가볍게 들고나는 온기가 아니라 솜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고 은근히 오래가는 온기였다. 한이불을 덮고 자란 내 몸엔 아직도 그런 묵직한 온기가 감각으로 뚜렷이 남아 있었다.
외동할미는 피륙에 관한 한, 타인 말을 귓등으로 흘릴 만큼 소신이 뚜렷했다. 이불 홑청으로 중국 산동주山東紬는 웬만해선 쓰지 않았다. 딴은 귀하기도 하거니와 산누에 실이라 빛이 누르스름해서 손끝 아프도록 꾸며 놓은들 햇볕에 빛바래진 듯 산뜻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까닭에서였다. 또한 화려한 모본단은 값비싸 이불 홑청 대신 치마 저고릿감에 어울린다는 소신에서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공단은 문양이 없는 게 너무 싱겁도록 밋밋해서 유색 양단이 홑청에 걸맞다면서 이불 소재로 즐겨 선택했다.




















